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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릴라의.. | 18/02/22 12:07 | 추천 26 | 조회 8444

추성훈이 일본으로 귀화한 이유.jpg +858 [24]

보배드림 원문링크 https://m.bobaedream.co.kr/board/bbs_view/best/153925

 

다음은 추성훈 선수가 일본으로 가기 전에 했던 인터뷰입니다 


재일교포 유도선수 추성훈은 지난해 말 일본으로 돌아가 현재 오사 카에 있는 부모님의 집에서 지내고 있다. 완전하지 않은 한국어 실력 이지만 그는 1월 8일 기자와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고민을 소상히 털어놓았다. 그는 “귀화할지 말지를 고민 중”이라며 “늦어 도 한 달 안에 마음을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뷰 도중 그는 한 국에서의 선수생활에 여전히 미련이 남아 있다는 인상을 풍겼다. 

▶정말 귀화할 생각인가요. 

“고민 중입니다. 아직 결정은 안 내렸는데 점점 그렇게 해야 되겠다 는 생각이 듭니다. 일본에서 운동하는 것이 어쩌면 편하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주위에 계신 여러분들에게 물어보고 최종 결정할 생각 입니다.” 

▶이유는 뭡니까. 

“교포로서 한국에서 운동하면 실력에서 지는 것이 아니고…. 시합해 도 용인대 힘이 워낙 세서 제가 이겨도 심판들이 졌다고 한 적이 많았습니다. 실력으로 지면 그냥 열심히 하면 되는데 열심히 운동해도 저보다 약한 선수가 우승하고…. 몇 번 그런 일이 벌어져도 다음에는 그런 식으로 안 되겠지라고 믿었는데 계속 그러니 한국에서는 운동 하기 싫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부모님은 귀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부모님도 제가 왜 귀화를 하려는지 잘 알고 계십니다. 제가 결정할 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그렇게 맘을 먹으면 (귀화)하라고 하 실 겁니다. 부모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리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픕니 다(추 선수의 부모님은 귀화하지 않고 재일교포로 살아가고 있다).” 

▶귀화하면 일본에서 차별은 받지 않습니까. 

“재일교포 선수로 일본에서 경기를 할 때 한 번도 차별받는다고 생 각한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한국에 가니까 일본보다 심하다는 생각 이 들었습니다. 귀화를 안 해도 일본 실업팀에서는 뛸 수 있는데 대 표 선발전에는 못 나갑니다. 저는 꼭 세계대회에서 우승하고 싶습니 다.” 

▶동생도 함께 귀화할 건가요. 

“한국에서 있었던 일로 동생이 상당히 충격을 받았습니다. 동생은 3 월에 후쿠오카대학교에 입학할 예정인데 제가 귀화한다면 함께하게 될 겁니다.” 

▶일본 국가대표가 될 자신이 있나요. 

“50 대 50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체급에는 한국보다 일본에 뛰어난 선수가 많습니다. 그래도 일본에서는 공정하게 경기를 할 테고 열심 히만 하면 대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뷰를 마칠 즈음 그에게 올해 소망이 뭐냐고 묻자 그는 “(한국)국가대표 2차 선발전에서 이겨 동아시아대회와 세계선수권대회에 나가는 것”이라고 말했다가, “귀화하면 더 이상 한국에서 시합을 못하지 않느냐”고 반문하자 “일본 대표가 되어서 한국 선수와 당당하게 시합을 해보고 싶다”고 대답을 바꿨다. 26살의 청년 추성훈은 이처럼 아직도 마음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세 살 때 유도를 시작한 재일교포 4세 추성훈. 그는 한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아 일본대표로 국제대회에 출전할 수가 없었다. 세계 최고가 되고 싶었던 그가 그 때 선택한 것은 할아버지의 나라 한국이었다. 그의 여동생 정화도 같이 부산에 와 유도를 하기 시작했다. 1998년 스물넷 나이에 생전 처음 찾은 할아버지의 나라에서 그는 한국말과 문화를 배우면서 일취월장 유도 81kg급의 최고수로 성장했다. 문제는 국제경기에선 연이은 한판승으로 우승하는데 유독 국내대회, 특히 가장 국대 선발전에서 항상 판정시비 끝에 고배를 들어야 했다는 점이다. 간단히 말해 추성훈에게는 '좋은 대회' 출전권은 줄 수 없다는 '그 분들'의 심보 때문이었다.


추성훈의 쓰디쓴 '일본 귀화'…"일본보다 한국의 차별이 더 가슴 아파" 

2001년 결국 그는 '(국적을) 바꿔야지. 말을 해도 안 됩니다. 여기는'이라는 쓰디쓴 독백과 함께 일본으로 가 귀화한다. 당시 같이 부산 어느 대학에서 유도를 하던 여동생도 역시 한국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돌아가 오빠와 함께 귀화한다. 가족도 말리지 못했다고 한다. 바로 다음 해 일본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아시안게임에서 그는 한국의 안동진을 누르고 금메달을 목에 건다. 그 때 할 말은 한다는 어느 신문사는 '조국을 메쳤다'는 기가 찬 제목을 뽑아 다시 한번 씁쓸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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