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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 18/05/22 17:00 | 추천 107 | 조회 1936

[이영미 人터뷰] 한화 팬들의 호잉 사랑, 부모의 무한 감동 +225 [21]

디시인사이드 원문링크 m.dcinside.com/view.php?id=superidea&no=146722

| 호잉의 한국행을 두고 지인들이 만류했던 사연
| 한화 팬들의 야구 열정에 흠뻑 빠진 호잉 부부
야구선수의 부모로 산다는 건, 인내와 기다림이 중요
아들을 사랑하고 존중한다는 제러드 호잉의 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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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러드 호잉의 부모 빌 호잉과 수 여사. 2주간의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 대전과 서울을 오가며 다양한 경험을 했다. 수 여사는 아들이 한화 팬들로부터 뜨거운 사랑을받는 얘기를 전할 때 눈물을 글썽였다. 미국 오하이오 주에서 한국까지 멀고 먼 여정 끝에 두 부부가 마주한 한국 야구 문화는 열정과 사랑이었다.(사진=이영미)>

“제러드가 한국에서 야구하게 됐다고 하니까 지인들이 한국가면 폭탄 맞을 거라며 말리더라고요. 그들은 남한과 북한을 구별하지 못했던 거죠. 한국에 가면 전쟁이 나는 줄 알았으니까요. 이번에 남편과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는데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나라였어요. 한국이 얼마나 살기 좋은 나라인지, 제러드가 얼마나 행복한 팀에서 야구하고 있는지 제 SNS를 통해 열심히 사진을 올리며 자랑했습니다(웃음).”
 
한화 이글스 제러드 호잉의 어머니 수 여사의 설명이다. 제러드 호잉의 부모는 최근 2주간의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미국 오하이오 주의 집에서 20시간이 넘는 여정 끝에 한국에 도착, 아들이 출전하는 야구를 관전하며 한국 야구 문화를 직접 체험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 소감을 묻자 호잉 부부의 목소리가 커졌다.

먼저 아버지 빌 호잉 씨의 얘기다.

“야구장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이 친절했어요. 제 얼굴만 봐도 제러드 아버지라는 걸 알고 인사를 건네더라고요(아들이 아버지의 외모를 닮은 게 당연했지만 두 부자는 닮아도 많이 닮았다). 같이 사진 찍자고 해서 사진도 찍고 악수도 나눴습니다. 한화 이글스의 홈구장인 대전에서만 그럴 줄 알았지만 잠실구장에서도 절 알아보는 분들이 많았어요. 이건 상상도 못했던 일이에요(웃음).”

어머니 수 여사도 “대전도, 서울도 멋진 도시인 것 같다. 사람들도 정말 친절하다”며 따뜻한 미소를 담아 답을 건넸다.

“하루하루 시간가는 게 아까울 정도예요. 아들이 한국 팬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걸 보니 눈물이 날 것 같더라고요. 아들이 야구하면서 이토록 뜨거운 관심과 사랑을 받은 적은 없었거든요. 경기 때마다 놀라움을 금치 못할 정도입니다.”

호잉 부모는 대전구장에 이어 지난 5월 18일부터 잠실구장에서 펼쳐지는 한화와 LG전을 관전했다.

“대전보다는 잠실구장이 메이저리그 구장을 보는 듯 했어요. 놀랐던 건 응원단이었어요. 한화 응원단이 잠실까지 왔더라고요. 그분들이 모두 대전에서 오신 분들인가요? (대전은 물론 서울, 전국 각지의 팬들이 모였을 것이라는 기자의 설명이 이어지자) 대단하네요. 그 함성과 응원은 굉장히 경이로웠어요. 치어리더까지 동원해서 응원을 하더라고요.”

수 여사의 계속된 감탄에 빌 씨도 얘기를 보탰다.

“미국의 지인들이 제러드의 응원가를 듣고 계속 따라 해요(빌 씨도 제러드 호잉의 응원가를 흥얼거렸다). 입가에서 맴돈다면서요. 제러드가 팬들이 준 액자를 받아오는 걸 보고 깜짝 놀랐어요. 한국 팬들의 정성이 담긴 선물이더라고요. 손녀 딸 칼리도 예뻐해 주시고요. 며느리 티파티가 열심히 야구장을 찾는 이유를 알았어요. 이렇게 사랑을 받으니 안 갈 수가 없겠죠. 정말 잊지 못할 팀이자 팬들입니다.”

<이날 제러드 호잉은 점심만 먹고 서둘러 야구장으로 향했다. 호잉 부모와 제러드 아내 티파니, 딸 칼리의 모습.(사진=이영미)>
 
호잉 부부는 아들이 KBO리그에서 뛰기 전까지 한국 야구를 잘 몰랐다. 일본에 프로 리그가 시행되고 있다는 걸 알았지만 KBO리그 관련 정보는 전혀 없었다는 것.

“제러드가 한화 이글스와 계약한다고 했을 때 한국이 전쟁 위험이 높은 나라라는 인식이 있었지만 우리가 인터넷이나 유튜브를 통해 찾아본 한국은 지극히 안전한 나라였어요. 한국 관련 자료들을 찾으면서 우리도 많은 걸 배울 수 있었습니다. 제러드가 현실적인 선택을 했다고 생각했고 아들의 미래를 응원했습니다. 그런데 이 정도로 뜨거운 사랑을 받을 줄 몰랐어요. 이건 어느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입니다.”

호잉의 아버지 빌 호잉 씨는 독일인이다. 빌 씨의 설명에 의하면 150년 전 미국으로 건너온 호잉의 조상들이 오하이오 주에 뿌리를 내렸고, 7대 째 호잉 패밀리가 어울려 살고 있다는 것.

제러드 호잉이 야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를 물었다. 수 여사의 설명이 이어진다.

“제러드가 두 살 때였을 거예요. 아들은 왼손잡이였는데 집 뒷마당에서 공놀이를 하며 노는 걸 좋아했어요. 우린 맞벌이 부부라 시간이 날 때마다 제러드와 함께 캐치볼을 하며 놀았고 배팅케이지에 가서 운동을 같이 했었죠. 유전적인 요인도 있어요. 삼촌이 야구를 잘했고, 그 윗세대도 야구를 좋아했거든요. 유치원에 들어가서는 티볼을 했어요. 많은 게임을 하진 않았어도 뒷마당에 만들어 놓은 미니 훈련장이 제러드의 야구에 도움이 됐다고 생각해요. 우리 부부는 제러드에게 야구를 해라, 하지 마라는 말을 해본 적이 없어요. 공놀이로 시작했던 야구가 제러드의 취미가 됐고 일하러 집을 비운 부모의 빈자리가 느껴질 때마다 제러드는 뒷마당에서 공을 던지고 방망이를 휘둘렀어요. 그러다 리틀리그의 어느 대회에 나갔다가 야구 관계자들의 눈에 띄어 본격적으로 야구를 시작하게 된 겁니다.”

인구 1478명의 미국 오하이오 주 포트 로라미란 작은 도시에서 태어난 제러드 호잉은 포트 로라미 고등학교를 다니다 차로 3시간 거리의 털리도 대학교에 입학했다. 대학 3학년 때 호잉은 드래프트 10라운드 전체 316순위로 텍사스 레인저스에 입단했다. 제러드 아버지 빌 호잉 씨는 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기억했다.

“퇴근 후 집에 도착했더니 3개의 음성 메시지가 남겨져 있었어요. 3개의 내용 모두가 제러드는 뛰어난 선수이고 10라운드에서 뽑힐 가능성이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포트 로라미란 마을에서 메이저리그 드래프트에 뽑히는 선수가 나온다는 건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제러드가 그걸 해낸 것이죠. 지역 신문에서는 제러드 관련 기사로 도배가 됐고 매주 제러드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업데이트해서 보도했어요. 제러드 호잉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마이너리그에서 7시즌을 보냈던 제러드 호잉. 그는 2016년 5월, 추신수의 부상 대체자로 빅리그 데뷔를 이룬다. 호잉 부모도 아들의 메이저리그 경기를 관전하기 위해 오하이오 주에서 텍사스 알링턴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데뷔전은 직접 보지 못했어요.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렸다는 얘기를 듣고 컴퓨터 두 대로 호텔과 비행기 티켓을 구하려 노력했지만 실패했었거든요. 데뷔전은 친인척들이 모인 가운데 집에서 TV로 맥주를 마시며 지켜봤습니다. 이후 예약해둔 비행기를 타고 텍사스로 날아갔던 날, 그 경기에서 제러드가 메이저리그 데뷔 첫 안타를 쳤어요. 저랑 남편이랑 서로 끌어안고 울고 웃고,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이후 추신수가 부상에서 복귀하며 제러드 호잉은 다시 마이너리그로 내려가야만 했다. 호잉 부부는 아들이 이후 마이너리그와 빅리그를 오락가락했던 상황이 마음 아프진 않았다고 말한다. 빌 호잉 씨는 “그것도 야구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했다. 제러드만 괜찮다면 우린 동요 없이 아들의 야구를 응원하고 지켜볼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인형 같은 딸 칼리. 그런 손녀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수 여사.(사진=이영미)>

수 여사는 한화 이글스 유니폼을 입은 제러드 호잉의 활약을 어떤 시각으로 지켜보고 있을까. ‘쿨’한 대답이 나왔다.

“한 마디로 운이 좋은 것 같아요. 야구는 굉장히 흥미로운 스포츠이거든요. 업 앤 다운이 분명한 종목입니다. 제러드는 한국에서 좋은 출발을 했고 기대 이상의 성적을 보이고 있지만 언젠가 다시 내려갈 수도 있어요. 지금은 뒤에서 묵묵히 박수만 보낼 뿐입니다. 우리는 1년에 한두 번 만나는 사이지만 지금 제러드한테는 아내 티파니의 존재가 엄청나요. 굉장히 큰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이죠. ‘해피 와이프, 해피 라이프(Happy wife, happy life), 아내가 행복해야 인생이 행복한 겁니다(웃음). 낯선 땅에서 서로 의지하며 잘 지내는 아들 부부를 보니 한결 마음이 놓이네요.” 

아버지 빌 씨는 아들이 한국 야구에 잘 적응하고 있는 부분을 다른 관점으로 설명했다.

“야구는 정말 어려운 게임입니다. 오늘 잘했다가 내일 사라지는 선수들도 많죠. 제러드는 한국에서 매일 경기에 출전하는 걸 행복해 하고 있어요. 보장된 연봉을 받고 야구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제러드를 가장 편안하게 만들어준 것 같아요. 바람이라면 타석에서 조금 더 여유를 갖고 자신의 스윙을 해나갔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좀 더 안정감 있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야구선수의 부모로 살아간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그 질문을 건네자 부부는 잔잔한 여운이 담긴 메시지를 전했다.

“어렸을 때 제러드에게 자신보다 팀원을 먼저 생각하라고 얘기했어요. 경기에서 일어난 모든 일들은 경기장에 두고 왔고 집에서 전 맛있는 음식을 준비했을 뿐입니다. 만약 코치가 소리를 지르고 어려운 미션을 준다면 반드시 감당하고 해결해 나가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래야 선수로서 뿐만 아니라 인격적인 성장도 이룰 수 있을 테니까요.”(어머니 수 여사)

“저도 어렸을 때 운동을 했는데 아버지는 집에서 경기 내용에 대해 절대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한테 배운 대로 제러드에게 했을 뿐입니다. 주변에서는 아들이 야구선수라고 많이들 부러워합니다. 제러드가 선수 이전에 훌륭한 사람으로 성장해준 게 정말 고마워요.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에게 각자의 재능을 부여하는데 제러드는 받은 재능을 잘 사용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 그런 아들을 사랑하고 존중합니다.”(아버지 빌 호잉)

<제러드 호잉 가족들은 원정 경기 차 서울에 왔을 때 가장 먼저 찾은 곳이 용산 전쟁기념관이었다. 아버지와 아들이 한국 역사에 관심이 많은 터라 일부러 시간을 내 방문했다고. 외국인 선수들 중 용산 전쟁기념관에 가본 선수가 몇 명이나 될까.(사진=제러드 호잉 제공)>

<이영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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