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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GREQIW | 19/03/15 22:10 | 추천 46

레전드아이돌에서 평범한 주부로 '야마구치 모모에'를 알아보자 +1025 [20]

일간베스트 원문링크 www.ilbe.com/11068486197

(내용 수정해서 다시 올린다)


매번 정보글 일베 보내줘서 고맙다

저번에는 아이돌 작곡 프로듀싱과 관련된 얘기를 해봤는데

이번에는 아이돌 인물에 대한 정보를 적어보려 한다


요즘 연예계에 추접스러운 일들이 많은데

모든 아이돌 혹은 스타들이 같은 문제가 있는건 아니고

당대 최고 위치의 아이돌 스타였으면서도

동시에 평범한 가장이자 주부로 모범적인 생활을 해냈던 이들도 분명 있다

이번 정보글에 등장하는 인물은 딱 여기에 어울리는 사람이다

일본은 아시아 대중음악계에서 처음 아이돌이란 개념을 확립했고

이 과정에서 가장 인지도가 높은 80년대 여자아이돌 투톱인

마츠다 세이코와’ ‘나카모리 아키나는 많이들 알고 있을거다



그런데 이 두 여자 아이돌 투톱이 등장하기 전에 이미 70년대 아이돌계를 평정한,

사실 상 아이돌의 개념을 처음 확립한 전설적 존재가 있으니

바로 야마구치 모모에’(山口 百?)

아시아 아이돌의 역사를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알아야할 인물이라 소개해본다



(약간 트와이스 정연 느낌?)



야마구치 모모에19591월 일본 도쿄 시부야 출생으로 현재 만 60세다

1973년 데뷔했을 때 그녀는 중학생

1980년 갑자기 은퇴를 선언했을 때 그녀는 이제 갓 20

야마구치 모모에는 단 7년간만 활동했고

이 기간 동안 그녀가 일본 대중문화계에 끼친 영향과 충격은 막대했다

그 내용은 아래에 이어 기술하겠다


(오디션 참여 때 모모에의 모습)


야마구치 모모에는 도쿄 시부야에서 태어났지만

초등학교 2학년 때 가나가와 현 요코스카 시로 이사해 그 곳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이후 1972년 유명 TV 스타 등용 프로그램인 스타 탄생!’에 출연

준우승을 하며 데뷔했다

그런데 야마구치 모모에를 누르고 우승을 차지한 대단한 인물은 또 누구였을까?

우승자는 모모에보다 1살 위였던 사쿠라다 준코’(?田 淳子)로 그녀 또한 유명 아이돌로 그 시초에 위치해있는 존재다


(활동 당시 사쿠라다 준코의 모습, 아이돌 그 자체였다)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모모에와는 달리 생기 넘치고 건강한 아이돌 이미지 그 자체다

당시 준코가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받은 점수는 역대 최고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준코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다시 소개하겠지만 이분은 종교가 통일교로

우리나라와 인연이 꽤 깊은 편이다



(복귀 후 최근 사쿠라다 준코의 모습, 여전히 곱다)


완전 은퇴를 선언하고 매스컴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모모에와 달리

준코는 최근 복귀를 선언하고 다시 활발히 활동 중이다

다시 포커스를 모모에로 돌려보자

비록 준우승에 그쳤지만 모모에의 스타 잠재성은 매우 높게 평가받았고

당시 그녀와 계약을 하기 위해 동시에 달려든 기획사만 20개 였다고 한다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통상적 아이돌이라기엔 뭔가 중성적이면서 동시에 미소녀적인 느낌도 있고

고혹적이고 퇴폐적인 분위기도 있는 등 팔색조라는 표현이 모모에 에게는 딱 맞았다

모모에가 센세이셔널한 인기를 얻게 된 계기는

1974년 발표한 곡 어느 여름날의 경험(ひと??)’ 때문인데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지만 이건 여성의 첫 성관계 및 처녀성 상실에 대한

당시 기준으로 매우 노골적인 가사가 특징이다

문제는 이걸 불렀을 때 모모에의 나이가 불과 15살 이었다는 것이다

일본 연예계는 성진국이라는 별명과 달리 미성년자 아이돌에 대한 보수성이 매우 높은데

그것도 1970년대에 이런 모모에의 퍼포먼스는 파격 또는 충격으로 정의내릴 만 하다

나중에 모모에 본인도 해당 노래에 대한 거부감이 심해 활동 시 심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고 토로한 바 있다

어쨌든 이 곡의 대히트는 모모에를 당대 최고의 아이돌로 발 돋음 시키는데 결정적 계기가 된다

모모에는 이후 내는 곡마다 대히트를 기록하며 아이돌을 넘어 70년 대 넘버원 가희라는 영광스러운 칭호를 얻게 된다

의문스러운 건 그토록 보수적인 시대에 이런 노골적인 노래를 부르는 미성년자 아이돌에 대한 환호가 일본 사회에서 어떻게 가능했는지다

그건 모모에만이 가지고 있는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독특한 아우라 때문이다


(믿기 어렵겠지만 이때 모모에는 미성년자)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모모에는 10대의 나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고혹적이고 마성적인 매력이 넘쳤다

목소리도 40대 가수를 방불케 할 만큼 굵고 무게가 넘쳤고

눈빛과 제스처도 웬만한 기성가수들은 명함도 못 내밀만큼 프로페셔널 했다

모모에는 그야말로 타고난 스타였던 것이다



모모에의 히트곡 중 하나인 曼珠沙華(만주사화) 영상이다


누가 그녀를 아직 10대라고 볼 수 있을까?

저 처연한 눈빛 그리고 고혹적인 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고화질 모모에 라이브 영상 하나 더



모모에의 전설적 활동 모습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놓은 영상

패널들이 입 벌리고 감탄하는 걸 볼 수 있다


이렇게 모모에는 대중문화계의 대스타로 활동을 하며

무대를 넘어 연기에도 도전하게 된다

그리고 여기서 한 남자를 만나게 되니

그는 바로 지금 남편인 미우라 토모카즈(모모에보다 7살 연상)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지 않은가?

일드 좋아하는 사람들은 잘 알걸?

최근에는 아웃레이지에 출연하셨다

그런데 모모에는 왜 토모카즈에게 빠져들었을까?

그냥 아래 사진을 보자


꽃미남이셨네! 이상윤 닮은 것 같지 않냐?

미우라 토모카즈는 지금의 중후한 중년 배우이기 이전 70년대 청춘스타로 유명했다

키도 178cm로 그 시대 일본 평균 신장과 비교해보면 장신이었고

얼굴도 미남이었으니...



아무튼 모모에는 연기활동을 하면서 자주 토모카즈와 호흡을 맞췄고

당대 미남미녀이자 스타였던 두 사람이 눈이 맞는 건 시간문제 였을 것이다

뒷얘기를 들어보면

당시 최고 아이돌이었던 모모에 에게 추파를 던진 당대 남자 톱스타들이 많았지만

모모에는 철벽 그 자체로 일관한 걸로 유명하다


그 당시 모모에에게 빠져 추근거렸던 남자 스타 중에는

아이돌 전설인 '고 히로미'도 있었다


나중에 히로미는 '모모에에게 그토록 물었지만 단 한번도 연락처를 받아본 적이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참고로 히로미는 이후 80년대 톱 여아이돌 마츠다 세이코와 사귀게되지만 정말 처절하게 통수를 맞는 비극이...)

이렇게 철저한 철벽이었던 모모에의 마음을 훔친 토모카즈가 새삼 대단해 보이네


참고로

모모에가 토모카즈에게 마음을 연 계기는


촬영이 계속 강행군으로 진행되다보니 정신적으로 지친 모모에가 잠깐 잠이 들었는데

마침 모모에의 다음 씬 촬영이 바로 잡혀 스태프가 와 깨우려고 하는 걸

옆에 있던 토모카즈가 "모모에가 많이 피곤한 것 같으니 그냥 자게 두고 다른 촬영 먼저 하자"고 말했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이때 모모에는 잠이 깬 상태였지만 눈을 감은 채로 이 대화를 듣고 있었고

신사적이고 배려심 깊은 토모카즈에 대한 애정이 생겼다고 하는데...


(토모카즈는 과연 모모에가 자고 있다고 생각했을까? 뭔가 엄청난 선수의 기운이... 아무튼 결론은 해피엔딩)



이건 연기자 활동 할 때 모모에의 모습, 약간 설리 느낌도?


노래할 때와는 달리 풋풋한 매력이 돋보인다

미소에 빠져들 것 같네




그렇게 모모에는 토모카즈와 만 20세일 때 결혼을 발표하고 충격적인 은퇴선언을 한다



모모에가 마지막 콘서트 후 마이크를 두고 무대를 떠나는 모습

이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아쉬움과 감동을 주었고

야마구치 모모에의 팬이었던 장국영은 생전 본인 공연에서 이 행위를 오마주 한 바 있다



모모에는 토모카즈와 결혼한 뒤

남편 성을 따라 미우라 모모에로 이름을 바꿨고

가정생활과 내조에 충실하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공식 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

마이크를 놓으며 완전한 은퇴를 선언했던 그녀의 마음이 진실이었음을 증명하는 것

모모에의 갑작스러운 은퇴 이유는 공식적으로 밝혀지지 않았으나

사생아로 태어난 복잡한 가정환경 때문에 유년시절 기억이 좋지 않았던 모모에가

얼른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고 싶었다는 설

지저분한 연예계와 집요한 언론이 관심이 부담스러워 은퇴했다는 설 등이 있다


참고로 모모에의 가정사는 참 기구한데

아버지가 가정이 있는 상황에서 이를 속이고 모모에 어머니와 만나 또 결혼을 했다

결국 중혼이라는 말인데 이는 법적으로 혼인이 인정될수없었고

모모에는 사생아로 호적에도 못 올라간 채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낼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어릴 때 모모에와 아버지의 사이는 비교적 좋았다고 하는데

나중에 모모에가 아이돌로 데뷔하고 유명세가 커지자

갑자기 아버지가 양육권을 되찾아오려고 모모에의 어머니를 지속적으로 괴롭혔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모모에는 더러운 현실에 절망하게됐고

그 순간에도 자신을 위해 헌신한 어머니를 극도로 챙겼다고 한다


아마 모모에는 이런 경험을 통해 보다 빨리 안정된 가정을 꾸리고 싶었을 수도 있다

모모에 스스로도 이른 결혼에 대한 질문에 이렇게만 답했다

그저 가정에 제일 충실하고 싶었다...

모모에는 미성년자 때 데뷔해 딱 성인이 되기까지 단 7년 간만 활동했으며

이 기간 동안 그녀가 해낸 경제적 가치는 현 기준으로 700억엔! 한화 7000억이 넘는 수준이다

야마구치 모모에의 등장은 이후 80년 대 마츠다 세이코, 나카모리 아키나가 등장하는 중요한 분수령이 됐고

이는 다시 현재 아이돌 시스템까지 영향을 줬다

야마구치 모모에는 당대 최고 톱스타였지만 사생활은 전혀 잡음이 없었고

결혼생활도 현재까지 단 한 번도 문제없이 잘 이어지고 있다



(최근 포착된 토모카즈-모모에 부부, 모모에도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중년 여성이...)


모모에와 토모카즈 부부는 외도와 이혼이 판을 치는 일본 연예계에서도

유독 돋보일 정도로 금술이 좋은 편인데

많은 일본인 남녀들이 아직까지 이들 부부처럼 결혼생활을 하고 싶다는 롤모델로 꼽을 정도다

특히 토모카즈는 이렇게 예쁘고 헌신적인 아내가 있는데 혹시 내가 가정에 충실하지 않거나 외도를 한다면 나는 사람도 아니다라며 말한 바 있다

모모에는 아들만 두 명 있는데 둘 다 연예계 생활을 하고 있다

최근 같은 시대 활동했던 사쿠라다 준코와 모리 마사코가 다시 활동을 시작하면서

가장 파급력이 컸던 야마구치 모모에도 컴백하지 않을까 하는 예측이 있었다

모모에 아들의 말에 따르면,

가족끼리 노래방을 가면 모모에도 가끔 마이크 잡고 본인 노래를 부르기는 한다는데

제대로 활동을 재개할 움직임은 아직 없는 듯


번외로

야마구치 모모에에게는 여러 루머가 있는데

한 가지는 그녀가 양귀비의 후손이라는 것

또 한 가지는 모모에가 한국계라는 것이다

양귀비의 후손이라는 건 모모에 본인이 직접 언급한 적이 있지만

한국계라는 건 본인이 직접 인정한 적이 없다

야마구치 모모에의 뒤를 이었다고 볼 수 있는 80년대 톱 여자 아이돌 두 명


마츠다 세이코와 나카모리 아키나는

각각 지저분한 스캔들 메이커, 자살미수라는 불명예가 있지만


정작 모모에는 스타로써의 명성은 물론 훌륭한 가정주부로써의 행복한 인생까지 모두 이뤄낸

여러 모로 비범하고 귀감이 되는 인물이다

한번쯤은 그녀가 남긴 흔적을 짚어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 같아

나름 정성들여 정보 글을 작성해봤다

재밌게 봤으면 다행일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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