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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유동.. | 19/12/14 01:28 | 추천 24 | 조회 631

KIA의 에이스 윤석민의 쓸쓸한 은퇴 +282 [7]

에펨코리아 원문링크 https://m.fmkorea.com/best/2489148054

i14568116405.jpg KIA의 에이스 윤석민의 쓸쓸한 은퇴

한국 프로야구의 전성기가 시작된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낭만야구의 시대였으며 김성근과 김경문등 각종 감동님들의 리즈시절이기도 했던 2008~2011 한국 프로야구에서 3명의 젊은 에이스 투수들이 나타났다.


약체팀 한화의 자존심 류현진, SK 왕조의 젊은 에이스 김광현, 그리고 불운을 이겨내고 KIA의 우완 에이스로 발돋움 했던 윤석민.


이 3명을 묶어 사람들은 류윤김이라 불렀고, 류윤김은 향후 10년간 한국야구를 이끌 것이라고 모두가 믿어 의심치 않았다.


2019121301001026400064945.jpg KIA의 에이스 윤석민의 쓸쓸한 은퇴

하지만 2019년 12월 13일 대한민국의 10년을 책임질 줄 알았던 토종 우완 에이스 윤석민은 은퇴를 선언하고 만다.


같은 류윤김으로 묶이던 류현진이 FA 1억불을 노리고 있고, 김광현이 메이저리그 진출을 노릴때 윤석민은 쓸쓸하게 야구공을 놓게 되었다.


어쩌다 그가 이렇게 되었단 말인가? 윤석민은 이리 떠날 투수가 아니였다.


2011110708214159.jpg KIA의 에이스 윤석민의 쓸쓸한 은퇴

2007년 엄청난 불운을 이겨내고 2010년 홍성흔과 조성환을 차례대로 보내며 공황장애까지 오던 윤석민은 2011년 화려하게 날갯짓 하였다.


다승 1위, 평균자책점 1위, 탈삼진 1위, 승률 1위, 왠만한 투수 지표에서 죄다 상위권에 오르며 그는 당당하게 MVP를 거머쥐었다. 이떄만 해도 윤석민은 한국의 최정상급 우완 투수였다.



이때만 해도 윤석민은 150Km의 포심 패스트볼을 뿌리는 강속구 핏챠였다. 최고구속은 155KM까지 나왔으며 당시 한국프로야구에선 도저히 칠 수 없는 구속이였다.



윤석민의 슬라이더는 당시엔 마구수준이였다.


저 꺾이는 각도만 봐도 이미 11윤석민의 압도적인 포스가 느껴진다.?


저 시절 슬라이더는 충분히 메이저급이였다.?


이렇게 모든걸 다 거머쥔 윤석민은 포스팅으로 메이저리그 진출을 노렸지만...


20120411101000146.jpg KIA의 에이스 윤석민의 쓸쓸한 은퇴

당시 새롭게 부임한 선동열 감독의 만류로 인해 2년뒤 FA때 미국으로 진출하기로 하고 KIA에 잔류하게 되었고 그것이 재앙의 시작이였다.


하지만 본인 입장에선 이 선택으로 4년 90억을 받게 되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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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민은 이후 2년간 대차게 망하고 만다.


뭐 굳이 따지자면 2012년까지만 해도 운이 심각하게 없는 정상급 우완이였지만, 2013년 선발과 마무리를 넘나드며 그의 폼은 완전히 추락하고 만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윤석민의 미국 진출은 안타깝기만 하다. 2011년 시즌이 끝나고 바로 갔으면 우리는 류현진이 아니라 윤석민의 FA 계약 소식을 듣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야구에 만약이란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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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민의 2014년은 완전한 실패였다.


볼티모어와 3년 575만불의 계약을 맺고 야심차게 미국으로 건너간 그에게 2011년의 폼과 구위는 없어진지 오래였고 오히려 마이너 거부권으로 인해 메이저리그 승격이 더 어려워지는 악순환, 끊임없이 이어지는 피홈런 러시에 윤석민은 5점대 평자와 초라한 마이너리거라는 신분만을 안게 되었다.


참고로 이때 윤석민의 나비효과가 꽤 많았는데 윤석민이 메이저리그에 올라오지 못하고 두들겨 맞음으로써 한 볼티모어 투수가 트레이드 되지 않고 메이저에 남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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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투수는 2014년 불펜 전향하고 37세이브를 거두는 대 활약을 했으며 이후 지속적으로 좋은 활약을 보이다가 양키스로 이적한 잭 브리튼이다.


그리고 윤석민이 마이너리그에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자 볼티모어는 AA에서 한 유망주 투수를 콜업하여 기회를 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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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투수는 결국 볼티모어에선 성공하지 못했지만 2018년 한국의 LG 트윈스에 입단한, 지금은 당당한 19LG의 1선발이 된 타일러 윌슨이다.


아무튼 윤석민은 미국에서 단단히 실패하고, 친정팀 KIA로 돌아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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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민은 무려 4년 90억이란 초 거액을 받고 돌아왔지만, 그에게 더 이상 전성기의 구위는 남아있지 않았다.


하지만 김기태 감독은 그를 마무리 투수로 쓰는 악수를 두었고, 석센시오라는 오명을 얻어가며 마무리 투수로 나와 30세이브, 70이닝을 돌파한 윤석민은 결국 어깨와 팔꿈치가 팩발하고 만다.


비록 15기아의 불펜이 답이 없었다고 해도. 90억 투수를 마무리로 돌리고 중후반에 중무리로 굴려서 결국 은퇴까지 하게 되었다.?


솔직히 윤석민이 드러누은건 다 이때 마무리로 굴려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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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윤석민은 2016년 단 16경기만 등판한다. 그를 좀먹은 어깨부상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2017년도 어깨 웃자란뼈 제거 수술에 들어가며 좀 처럼 모습을 보이지 못했고, 어깨 부상은 계속되기만 했다.


2018년 드디어 복귀하였지만 오히려 윤석민의 복귀는 독이 되었다. 윤석민이 억지로 선발 로테에 끼며 임기영과 한승혁이 망했고 임창용과 김기태의 트러블이 발생하고 결국 선발에서 털리던 윤석민이 마무리로 가서 또 털리고 부진하던 팻 딘을 미리 교체하지 못하는 참사가 터지며 KIA 타이거즈는 우승 한지 단 1년만에 망하고 만다.


그리고 2019년, 윤석민은 어깨 웃자란뼈 제거 수술을 받은지 2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통증을 호소하던 도중 은퇴를 결심하게 된다.


ae5f86f98acbb351bd02b6c63678f217_11219629733.png KIA의 에이스 윤석민의 쓸쓸한 은퇴

2019년 12월 13일, 크보의 한 시대를 풍미하고, 류현진, 김광현과 어깨를 나란히 했으며,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우승의 한 주역으로 활약하고, 2011년 트리플 크라운과 MVP를 차지하였으며, 2014년 시작은 장대했지만 끝은 초라했던, 그리고 KIA의 든든했던 우완 에이스 윤석민은 은퇴했다.


류현진이 미국에서 자리잡고 FA가 되고 김광현이 포스팅으로 미국 진출을 노리는 와중, 그들과 동급으로 불렸던 우완 에이스는 쓸쓸하게 먹튀라는 소리를 들어가며 야구계를 떠났다.


참으로 안타깝다. 비록 꼴데팬 입장에선 조성환과 홍성흔을 맞춰서 보낸 안좋은 기억이 있는 투수긴 하지만. 윤석민이 KBO 내에선 탑급 우완 투수였다는것도 부정 할 수 없는 사실이다.


윤석민이 이리 쓸쓸하게 은퇴할 줄 몰랐다. 양현종과 함께 기아의 우승을 이끌고 마운드 위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줄 알았다. 하지만 기아의 2017년 우승 순간 마운드에 있던건 9회 등판을 자청한 양현종이였고 윤석민의 모습은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다.


한때 KIA의 에이스였으며, 국대의 에이스였으며, 류윤김 트로이카로 불렸던 투수치곤 너무나도 초라한 마무리였다.


비록 기아팬들은 먹튀라고 욕할지도, 그래도 우리 에이스였다고 한탄 할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나에겐 윤석민이란 투수는 분명 전성기 KBO 리그를 이끈 한 주역으로 마음속에 영원히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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