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게 실시간 커뮤니티 인기글
종합 (1849694)  썸네일on
순화군 | 20/01/15 13:24 | 추천 57 | 조회 8503

고구려 분열의 기록들 +341 [46]

에펨코리아 원문링크 https://m.fmkorea.com/best/2604929206

1.
璉有罪(금련유죄) : "지금 연은 죄를 지어?
國自魚肉(국자어육) : 나라가 스스로 남에게 잡아 먹히게 되었고,?
大臣彊族(대신강족) : 대신과 호족들의?
戮殺無已(륙살무이) : 살육 행위가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罪盈惡積(죄영악적) : 그들의 죄악은 넘쳐나서
民庶崩離(민서붕리) : 백성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있으니,?
是滅亡之期(시멸망지기) : 지금이야말로 그들이 멸망할 시기로서?
假手之秋也(가수지추야) : 폐하의 힘을 빌릴 때입니다.?

삼국사기 25권 개로왕 기록?
개로왕이 고구려를 공격하기위해 북위로 보낸 편지중 일부
여기서 '연'은 20대왕 장수왕?

2.
이 달에 고려(高麗)는 그 왕 안(安)을 죽였다.?또한 일본의 덴노와 태자(太子), 황자(皇子)가 함께 죽었다고 들었다."라 하였다. 이에 따라 말한다면 신해년(辛亥年)은 25년에 해당한다. 뒤에 교감(校勘)하는 자는 알라】.<일본서기>

일본사?안칸 덴노 25년(531년) 12월조

여기서 안은? 제22대 안장왕으로 고구려전성기를이끈 마지막왕



3.
이 해에 고려(高麗)에 대란(大亂)이 있었다. 많은 사람이 살해당하였다.【『백제본기』에는 “12월 갑오(20일)에 고려국의 세군(細群)과 추군(?群)이 궁문에서 싸웠다. 북을 치면서 전투를 벌였다. 세군이 패하였으나 사흘 동안 군사를 해산하지 않았다. 세군의 자손을 모두 사로잡아 죽였다. 무술(戊戌, 24일)에 코마노쿠니(?國, 박국)[의 누타노스오리코케(鵠香岡上王, 곡향상강왕)가 죽었다(薨).”고 한다.】
일본서기》 권38 긴메이 덴노 6년(545년) 고구려에서의 대란(大亂)

제23대안원왕이죽고 그의후궁들의 왕의자리를 두고 내전을벌인기록?


4.
“옛날 유학할 때 법사님의 은혜를 입어 목숨을 보전하였는데, 지금 뜻밖에 만나게 되니 어떻게 보답하여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법사가 대답하였다.
“지금 우리나라는 정사가 어지러워 멸망할 날이 머지않았으니, 귀국으로 데려가 주기를 바라오.”

이에 거칠부가 같이 수레에 타고 돌아와서 왕에게 배알시켰다. 왕이 그를 승통(, 승려의 가장 높은 지위)으로 삼고 처음으로 백좌강회()와 팔관법회()를 열었다.<삼국사기 거칠부 열전>
이 해 백제 성명왕(聖明王)이 몸소 군사 및 두 나라의 병사를 거느리고[두 나라는 신라·임나를 말한다] 고려를 정벌하여 한성(漢城)의 땅을 차지하였다. 또 진군하여 평양(平壤)을 토벌하였는데, 무릇 옛 땅 6군을 회복하였다.<일본서기>

혜량이라는 명망높은 승려가 신라로 귀순할때 한말?



5.
간주리의난
557년(양원왕 13) 고구려의 귀족 간주리(干朱里)가 환도성(丸都城)에서 일으킨 반란.
간주리는 고구려의 두 번째 수도였으며, 평양천도 이후에도 고구려 3경(三京)의 하나로 정치·군사면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던 환도성을 기반으로 557년 10월에 반란을 일으켰다가 죽임을 당하였다.

간주리로 대표되는 국내성의 귀족세력은 적어도 당시 양원왕을 즉위 시킨 추군세력은 아니었을 것이며, 양원왕 즉위에 반대 입장이었던 세군세력이거나 혹은 세군세력을 지지하고 그들과 정치적 입장을 같이한 세력으로 보기도 한다.



*
일본서기의기록이많으은데 백제본기(백제역사서)와 자신들이 섬기던 백제의정보로
많이 기록되어있으므로 고대한반도국가의 중요정보들이 많은책입니다
무조건적으로 신뢰하지않지만? 중국역사서와 우리역사서와 교차검증을할수있는
상당히 중요한 일본정사로 상당히 중요한책이기도합니다
일본서기의 신뢰여부는 개인의판단이 중요할것같습니다?
[신고하기]

댓글(46)

1 2 3 4

이전글 목록 다음글

12 3 4 5
    
제목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