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뷔페니즘.. | 20/02/16 18:50 | 추천 42 | 조회 7143

식민지 조선에 온 러시아인들의 짧은 이야기 +344 [8]

에펨코리아 원문링크 https://m.fmkorea.com/best/2717491757

82642619d1be0668886a872ec6d9cbd7.jpg 식민지 조선에 온 러시아인들의 짧은 이야기


1922년 겨울, 원산항에는 러시아 시베리아 함대 소속의 군함들이 입항했다. 배 안에는 군인, 민간인들을 비롯한 러시아 피난민 약 7000여명이 타고 있었다. 이들은 적백내전을 피해 포시에트항을 떠나 온 백군파 소속 러시아인들이었다.(주:이하 백계 러시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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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함대의 사령관 유리 스타크 제독은 일본 정부에 정치적 망명을 요청했다. 조선총독부는 러시아 적군과의 마찰을 우려하여 이들을 별로 반가워하지 않았지만, 일단 식수와 보급품등을 제공하였으며 영흥만 인근의 부지에 수용소를 만들어 겨울을 날 수 있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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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난민들의 수용소 생활은 안락하지는 않았지만 기본적인 의식주가 제공되었고 무엇보다도 안전이 보장되었다.

모든 것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난민들은 규칙적인 식사를 통해 건강을 유지하고 종교의식을 통해 다소나마 정신적 위안을 찾을 수 있었다.

난민들이 스스로 빵을 만들 수 있는 시설이 수용소 안에 마련되었고, 방안에는 차를 마실 수 있도록 항상 사모바르가 제공되었다.

난민들은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그나마 끼니를 거르지 않고 먹을 수 있었다. 보통 식사 전에는 홍차가 그리고 주식으로는 자신들이 만든 검은 빵 그리고 부식으로 고기와 채소가 제공되었다.

그리고 콩기름과 동물성 기름 등을 사용해 만든 반찬도 제공되었다.?1922년 크리스마스에는 조선총독 부인이 크리스마스트리를 기증하고 애국부인회가 1393개의 위문품 등을 이들에게 기증하기도 했다.

어른들은 파티를 열고 춤을 추며 연극을 공연하고 학생들은 악대를 조직해 행진하기도 했다. 부활절에는 엄숙하게 제사를 거행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매달 적어도 1,2 차례의 종교적인 기념일이 있어 이런 날에는 만사를 제치고 특별한 음식을 만들어 같이 기도하고 식사하며 동질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원산에서의 피난 생활 약 9개월 동안 221명의 백계러시아인들이 사망했다.

연령별로는 5세 미만의 어린이가 160명으로 가장 많았고 주된 사망원인은 주로 폐렴이었다.?
이들에 대한 장례식도 러시아 정교회 의식에 따라 성직자들에 의해 거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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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총독부는 군인들이나 농업에 종사했던 러시아 성인 남성들을 철로 보수공사, 제방 공사등에 투입해 보았다. 그들이 보기엔 러시아인들은 체격이 좋아 육체노동에 적합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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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실적은 의외로 저조했다. 조선인과 중국인들은 하루 12시간씩 비가 오던 눈이 오던 쉬지 않고 일했던 반면, 러시아인들은 하루에 6시간 정도만 일하고 미사, 예배등의 종교적 이유등으로 일을 하지 않아 노동생산성이 떨어졌다. 그리고 동양인들의 말을 들어야 하는 것과 미래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노역을 피하고 현장에서 도망가는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겨울이 지나 봄이 오자, 조선 총독부는 러시아인들에게 더 이상 지원을 해줄수 없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하였다. 수천명의 러시아인들은 점차적으로 상하이, 요코하마, 하얼빈, 샌프란시스코 등지에 있는 러시아 디아스포라를 찾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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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약 100여명의 러시아인들이 조선에 남았다. 고등교육을 받은 자들은 경성에 있는 러시아 영사관의 직원이나 함흥, 평양 등지에서 러시아어 교사로 채용되었다. 그 밖에 운산금광의 감독관으로 취업하거나, 개마고원에서 별장을 운영하거나 사냥꾼이 된 사람도 있었다. 1930~40년대 어린 시절을 보낸 노인들의 증언으로는 일본인들이나 부유한 친일파들에게 우유나 버터, 화장품등을 팔러 다니는 백계 러시아인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 밖에도 자신은 중국에 거주하면서 아내와 자식들은 경성으로 '유학' 보내는 사람들도 꽤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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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여성들도 있었다. 운이 좋은 사람은 경성에 사는 일본인에게 시집을 가기도 하였으나, 대부분의 러시아 여성들은 자신들의 외모를 팔아 생계를 이어가야했다. 흰 피부와 금발벽안의 그들은 서구 문화를 동경하던 동양인들에게 경외의 대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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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성진의 유곽에서는 최초로 러시아 여성 33명을 고용했다.(동아일보 1922년 12월 30일자). 서울의 신정 유곽에도 러시아 성매매 여성 등 외국인 6명이 성매매를 했다. 금발부인의 아름다운 자태를 이용하려고 경상북도 대구의 요정 樂天, 一力亭, 芳千閣에서는 각각 한명의 젊은 금발부인을 데려다가 오는 손님의 소매를 끌고자 하였다. 경성 남대문 근처에는 러시아인 매춘업소도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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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근대 식민지 지식인들은?그들에게서 이상향을 찾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김광균, 백석, 이광수 등 당대 문인들은 쏘냐, 나타샤, 카츄사 등과 같은 여성의 이름을 시나 에세이를 통해 전시하거나 목 놓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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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러시아인들에게서 친밀감이나 동병상련을 느꼈다. 나라 잃은 가냘픈 존재라는 점에서 백계러시아인 여성은 ?갖출 건 다 갖춘 존재였다. 귀족의 딸인지도 모르겠고, 교양도 있어 보이고, 문화적인 우수함과 지적인 수준은 갖췄지만 남자에 순종적이었다. 우리말로 하자면 '현모양처'였던 것이다. 이러한 요소가 당시 조선인 남성들의 이국적이면서도 모던한,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 같은 러시아 작가들의 문학에 자주 등장하는 ‘내조자로서의 강인한 여성상’이라는 로망을 만족시켜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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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식민당국 입장에서 그들은 그저 불법노동자였을 뿐이었다. “시내 본정 경찰서에서 관내에 있는 각 카페에서 외국인 여급을 고용하는 것을 금지하라고 재차 영업주에게 주의를 시킨 일이 있었다. 그럼에도 서사헌정에 있는 <살론 아리랑>에서는 독일 여자 릴테애(29, 일명 대경성자)를, 시내 본정 이정목에 있는 본미인좌에서는 로서아 여자 마리아 니나(28)를 여급으로 고용한 사실로 6일 본정 경찰서에서는 두 주인을 호출하여 각각 과태료 십 원을 부과하고 동시에 앞으로는 고용을 절대로 금지시켰다 한다.” 일을 해도 돈을 받지 못하는 여성도 있었다. 이제 겨우 17살인 이리에 스타로니젠코는 박도병이라는 사람이 조직한 가무단에 소속되었지만,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여 “박도병을 경성지방법원에 고소”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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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 거주하던 백계 러시아인들에 대한 통계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만주, 일본, 미국등지에는 그들만의 디아스포라가 존재했었으나, 유독 조선에서는 러시아인들의 공동체가 없었다. 그들에게 있어 조선은 다른 대륙으로 건너가기 위해 잠시 머물던 건널목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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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조선 이곳저곳에 퍼져 살던 극소수의 백계 러시아인들 역시 1945년 광복을 기점으로 대부분 사라졌다. 북한지역에 살던 이들은 초기 그곳에 진주한 소련군에게 협력하였으나, 결국 일본에 협조했다는 간첩죄로 체포되어 시베리아로 보내졌다.(북한에 존재하던 소수의 정교회 성당들은 북한군에게 파괴됐다.)?남한에 살던 백계 러시아인들도?한국전쟁을 계기로 미국이나 유럽으로 이주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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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부터 1943년까지?서울에서 살다 죽은 전 러시아 외교관?세르게이 시르킨의 묘지를 참배하러 온 알렉산드르 티모닌 주한 러시아 대사?(2015년.)




출처:https://www.dogdrip.net/246064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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