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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n&Cool.. | 20/05/30 04:34 | 추천 7 | 조회 442

(스압)2차대전 당시의 우주방어선 gif +442 [18]

루리웹 원문링크 https://m.ruliweb.com/best/board/300143/read/47361137

 

 


 


 

 

 

 

 2차대전 당시 프랑스의 자랑 마지노선은 두꺼운 콘크리트로 적의 포격도 견디는 지하 시설과 떡장갑으로 보호되는 고정포대 등 방어에 최적화된 시설이었고

 

 내부에는 병사들의 거주공간과 군수품 창고, 물자와 병력을 이동하는 철로와 엘리베이터 등의 시설도 갖추고 있었음

 

 

 

 

 

 

남북으로 약 750km에 걸쳐 이런 방어선을 구축하는데 당시 160억 프랑(현재 가치 약 20조원)이라는 엄청난 자금과

 

1927년부터 1936년까지 9년의 긴 건설 시간이 소요되었지만

 

 

 

 

 

 

 

 

독일군은 여기에 꼴박하지 않고 아르덴 지역을 뚫고 들어갔고

 

 

 

 


GIF

 

 

분단되어 프랑스 북부에 고립된 프랑스와 영국군은 덩케르크에서 후퇴하며 전멸만 겨우 면했고

 

 

 

 

 

 

 

 

 

 

 남은 병력으로 독일을 막을 수 없었던 프랑스가 결국 '엘랑'을 하게되면서 마지노선은 독일의 공격방향을 북쪽으로 한정 시킨다는 목표만 달성한채 무용지물이 되어버림 

 

 

 

 

 

 

 

 

 

 

 

 

 

 

 

시간이 흘러 동부전선

 

 

 

 

 

 


GIF

 

 

스탈린그라드에서 쌈싸먹히기 참패를 당해 유전지대 확보에 실패하고 서쪽으로 후퇴하던 독일군은  

 

 

 

 

 


GIF

 

 

 

 공세종말점에 달한 소련군에게 반격을 가하는데 성공해서 하르코프(kharkov)를 다시 탈환했고 이 과정에서 소련군 50개 사단을 궤멸시키며 급한 불을 끄게되었음 

 

 양측 모두 소모가 극심하여 전선 정리와 부대 재편에 들어갔고 몇달간 동부전선은 큰 변동이 없이 이 상태로 교착상태에 빠짐

 

 

 

 

 

 

 이 과정에서 전선에 위와 같이 쿠르스크(kursk) 지역을 중심으로 독일쪽으로 튀어나온 거대한 돌출부가 형성되었고 

 

 쿠르스크는 철도망이 거미줄처럼 교차하는 전략요충지였음

 

 

 일반적으로 전선에서 이런 돌출부는 적과의 접촉면이 많기 때문에 방어측이 불리했고 

 

 히틀러는 여기를 남북으로 협공해 한타 싸움에서 이기고 전세를 다시 역전시킬 생각을 하게됨

 

 만슈타인과 구데리안 등의 장성들은 도박같은 공세보다는 방어에 집중하며 소련의 병력 소모를 유도하고 싶었지만 

 

 

 

 

 


GIF

 

 

 

 히틀러의 공세의지는 꺾을 수 없었고

 

 만슈타인은 공세를 굳이 펼쳐야 한다면 소련이 대비하기 전 최대한 빠른 시기에 해야한다고 주장했으나

 

 히총통께서는 한타 병력에 완벽을 기한다면서 공세준비에 몇달의 시간을 낭비하게됨

 

 

 

 

 

 

 

 결국 페르디난트 구축전차 같은 각종 신병기의 투입과 함께

 

 

 

 

 

 

 50여개 사단 병력 약80만과 전차 3000여대를 투입 할 준비를 마치고 나서야 공세 요건을 갖추었다고 판단하였고

 

 

 


 

 

 

 

1943년 7월 5일, 드디어 '성채(시타델) 작전'이라는 히틀러의 영혼의 한타가 시작됨



 

 

 

 

 

 

 

 

비록 스탈린그라드 같이 포격으로 파괴된 건물 잔해 등으로 기갑부대 사용이 제한된 전장에서 점령에 시간을 끌다 역공을 당해 패배하긴 했지만 

 

개활지 야전에서는 개전 초기부터 기갑부대의 빠른 돌파에 이은 포위 쌈싸먹기 전격전으로 연전연승해왔고


얼마전 하르코프에서는 소련군 50여개 사단을 녹이며 대승한 경험이 있던 독일군은 작전 성공에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있었고 

 

소련군을 분단시켜 쌈싸먹기 위해 쿠르스크를 향해  남북에서 동시에 전진하기 시작함

 

 

 

 

 

 

 

 

하지만 이들이 곧 마주치게 되는건

 

 

  

 

 

 

 

 

  

팍프론트라는 참호와 대전차포, 철조망과 지뢰원 등을 효율적으로 배치해서 만든 소련의 방어선이었는데 


1차 대전 시절 탱크의 돌파에 털리던 참호와 달리 대전차포의 집중 운용과 전차호, 지뢰원 등의 활용으로 적의 기갑병력에 뛰어난 저지력을 발휘했음

 

 

 

 

 

이 팍프론트라는 방어전술은 본디 소련 기갑부대를 상대하던 독일 장교가 대전차포 1~2문으로 기갑병력을 상대하다가 별다른 저지력 발휘도 못하고 쉽게 제압 당하자 

 

많은 수의 대전차포를 지휘소의 통제를 받아 적 지휘차량이나 중장갑 차량에 집중 사격하는 식으로 운용해 봤는데 기갑병력 저지에 효과적이었고 

 

이후 소련군도 독일의 전술을 모방해서 발전시키며 적극 사용하던 방어 전술임 



 

 

 

 

 

히틀러가 한타를 준비하던 수개월동안 소련은 이런 방어선을 주변의 민간인 수십만명을 강제 동원해 갈아넣어서 쿠르스크 주변에 겹겹이 만들어놓았고 (위짤의 요철무늬)


추가로 소련 전체 기갑병력의 3/4에 달하는 전차와 1~2만문에 달하는 야포와 로켓포를 이곳에 배치함

 

이제 독일이 공세목표였던 남북 공세병력의 중앙 합류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이런 대병력을 상대하면서 팍프론트 방어선 5겹을 뚫어야했음

 

 

 

 

 

 

 

 독일 기갑부대는 이런 토나오는 방어를 뚫기위해 팬저케일(panzer keil)이라는 기동전술을 사용했는데

 

중장갑인 티거 중전차나 페르디난트 구축전차를 앞열에 세워 탱킹을 하고 경장갑 차량이 따라오며 돌파를 하는 전술이었음 

 

하지만 이런 전술로도 각종 대전차 장애물과 대전차포의 집중사격, 대전차 지뢰 제거 장비의 부족으로 돌파는 생각대로 풀리지 않았고

 

 

 

 

탁월한 공방능력으로 소련군 전차를 상대로 1:10 수준의 교환비를 기록하며 소련군에 깊은 인상을 줬던 신병기 페르디난트 구축전차도 구동부의 문제로 퍼지는 등   

 

소련군의 팍프론트 방어선을 힘겹게 1겹씩 돌파할때마다 독일군의 피해는 점점 누적되었음

 

 

 

 

 

 

결국 위짤과 같이 쿠르스크 돌출부의 분단은 커녕 겨우 수십키로를 찔끔 전진하는데 그쳤고

 

7월 10일에 이탈리아에 서방 연합군이 상륙하면서 히틀러의 거창한 한타 계획은 일주일만에 초라하게 막을 내렸음

 

이 전투에서  독일은 약 25만의 병력과 1000 여대의 전차,  소련은 약 86만의 병력과 6000 여대의 전차를 손실했고 

 


 

 

 


GIF

 

 독일은 병력이나 장비의 교환비에서는 비록 우위를 차지했지만 전투에서 잃은 피해를 복구할 여력이 없었고 

 

 소련은 더 큰 피해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복구할 여력이 남아있었기 때문에

 

 이 전투 이후로 동부전선의 전력 균형은 완전히 기울어 베를린까지 죽죽 밀리게 되었고 나치 독일의 패망을 앞당기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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