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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 | 20/08/15 18:02 | 추천 51 | 조회 182

단 1일의 논란도없는 호국용사.JPG +182 [7]

루리웹 원문링크 https://m.ruliweb.com/best/board/300143/read/48369556

 

김홍일 장군(1898년 9월 23일 - 1980년 8월 8일)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전 군인, 정치인이다. 초명은 홍일(弘日)이며, 호는 일서(逸曙), 산남(山南)이다. 

 

중국어 이름으로는 왕웅(王雄)·왕일서(王逸曙)·왕부고(王復高) 등을 썼다. 

 

본관은 김해(金海) 1898년 평안북도 용천군 양하면 오송동에서 김진건(金振健)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만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하였다. 

 

8.15 광복 이후 대한민국 육군 창군에 참가했는데 광복 당시 국부군, 일본군, 광복군을 통틀어 유일하게 

 

집단군 참모장, 사단장을 역임하며 대부대를 지휘하여 전투를 경험한 장성급 장교였으며, 중국육군대학에서 군사학을 학습한 인물이었고,

 

대한민국 국군 역사상 최초의 장군 임관자로 기록되어 있다.  이와 비견할 수 있는 인물은 일본육군대학출신이고 여단장 지휘경험이 있는 홍사익 중장 정도이며, 

 

그나마 단순히 군사지휘경험만으로 따진다면 김석원 대령(연대장 경험)를 예로 들 수 있다.  

 

또한 6.25 전쟁 초기의 절망적인 상황에서 6사단과 8사단이 만들어준 기회를 이용하여 병력을 수습하고, 지연작전을 통해 낙동강 방어선 구축에 기여했다. 

 

이러한 '기적'적인 업적은 건군 당시 사실상의 유일한 장성급 지휘 경험자로서 김홍일의 탁월한 능력에 힘입은 것이었고, 이후의 방어, 반격을 위한 준비를 가능토록 만들었다.

 

 

 

 

6.25 발발직후 5개사단이 채 후퇴하기도전에 한강철교,인도교 박살내는 바람에

 

와해가 되버렸는데(당시 국군은 총 8개사단) 혼자서 그걸 수습해서 3개사단으로 재편하고

 

한강방어선 구축해서 무려 일주일을 버팀

 

이 일이 국군 재편성 및 미군 참전시간을 벌어주는 역할을 하게 됨

 

전투기간은 1950년 6월 28일 부터 7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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