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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노동.. | 20/09/17 12:52 | 추천 57 | 조회 8153

오늘내일 하는데 대충 살아보려고는 하는.SSul +405 [18]

오늘의유머 원문링크 https://m.todayhumor.co.kr/view.php?table=bestofbest&no=431600

1.

xx의 검 이라는 모바일 게임 광고가 자꾸 눈에 밟혔다.

막 으마으마하게 뭐 아이템도 주고 레벨업도 빠르고 한다길래, 그래 어차피 현재까지는

대충 망한인생 게임에서라도 잘살아보자고 깔...깔아봤는데...

게임 설치용량이 100메가도 안되길래

뭔놈의 게임이 20년전 게임보다 용량이 적냐며 헛웃음지었다. 근데 웃긴 포인트는

여기가 아니고, 시작화면 보자마자 진짜 미친인간처럼 웃었다.

사용가능한 클래스는 둘 뿐이고 그나마도 접속하니까 뭔놈의 고등학생 동아리에서도 안만들것

같은 퀄리티의 굉장히 조잡한 게임이 눈에 들어왔다. 이런걸 돈주고 하는 인간이 있단 말이지.

그래도 날 끌어들인 그 광고. 그래 그 자본주의에 탄복해 첫충전 금액 관계없이 뭐 선물을

막 준다는 말에 천이백원짜리 보석을 한묶음 샀는데,

주긴 뭐 많이 주더라.

문제는 충전 기념으로 산 상자들을 또 보석을 사서 풀어야 한다는 것 뿐.

상자를 여는데 필요한 보석양을 현금으로 환산하니 20만원이 넘는 금액이 나왔다.

이건 양심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였다. 여기에 돈을 쓰는 사람이 진짜 있긴 한건가?

그래도 여캐 가슴이 커서 한 이십분 낄낄거리다 잘 나왔으니 천이백원어치는 잘 한것 같다.

뭘해도 되는게 없어.

2.

저녁에 집에 돌아와 괜히 팔짱끼고 컴퓨터 화면 쳐다보면서 지나간 드라마 보고있는데

비루한 몸땡이 배는 고프고 밥이라도 좀 쳐먹어야겠다 싶어 대충 부얶으로 기어나갔다.

그곳에는 가지를 삶다가 '어 너 왜나옴?' 하고 쳐다보는 엄마가 있었다.

밥을 쳐먹더래도, 그냥 먹기는 싫고 대충 냉장고에서 두부 한 모 야채조금 뭐 이거저거 꺼내

대강 마파두부 비슷한거 만들어서 소주 한병과 함께 방으로 가지고 들어갔다.

배가 덜고파. 그러니까 이상황에서도 소주를 찾지.

보던 드라마 앞에 소주 한잔 따라 마파두부밥 대충 한수저 뜨는데 퇴근하신 아버지가 문열고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쟤 언제부터 들어왔어?"

"아까 오후에."

"어이고. 어이고."

문닫고 방안에서만 생활하다가 대충 기어나와 일하러 가거나 그마저도 없는 날이면

방문닫고 부모님 나갈때까지 기다렸다가 대충 나가서 밥먹고.

어. 부모님이 안나가면 어떡하냐면. 그냥 목마르거나 배고파도 방 밖으로는 한발자국도 안나감.

근데 오늘은 술을 한잔 하고 싶어서 내 서른XX평생 대단한 결심을 하고 나갔음.

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서인지 집에서는 날 거의 미친인간 취급하기 시작했음.

생각해보면 당연한거지. 이건 부모님 탓은 아니야.

아. 유쾌하네. 그런데 잠깐만 오늘 내가 하려고 했던 이야기는 이게 아니고.

아무튼 그래놓고 나서 술병이랑 좀 치우려고 나왔어.

술도 마셨고, 정말 그럴 생각 없었는데 안방에서 TV를 보고 있는 엄마에게, 멀찍이

소주병 치우다 말고

"엄마 나 힘들어."

라고 말했어.

내쪽으로는 시선도 돌리지 않는 엄마는 "니가 노력을 하면 안힘들어" 라고 했어.

"엄마. 밤새가면서 며칠을 넘게 잠도 못자고 사고날뻔 하면서 일했어.

마시지도 못하는 양주 내돈으로 사서 먹이면서 거래처 비위 맞춰주고 다녔어.

원청한테 맨날 줘터지고 쌍욕먹고 집에와서 자다말고 전화와서 욕먹고 불려나가서

술마시고 일요일도 없이 일했어. 2년이야. 2년. 그렇게 2년을 일했어. 그런데 바뀌는게

없어서 죽을것 같았어. 그래서 그만둔거야."

"니가 2년이 아니라 20년을 똑같이 노력했으면 안힘들었을거야."

"20년동안 매일같이 내가 한 잘못도 아닌걸로 욕먹고, 직원 월급 주고 유지비용 나가고

내손에 들어오는건 이백만원이고. 마시고 싶지도 않은 술 매일 먹고,

그렇게 살면 20년뒤에는 내가 뭔가라도 얻어?"

"우는소리를 자꾸 하니까 니 아빠가 널 싫어하는거야."

나는 종종 동생과 비교당하곤 했어.

그런데 동생은 내가봐도 참 올바르게 살았어.

공부를 열심히 해서 공립유치원 교사가 되었고 좋은 친구를 만나 결혼했어.

차근차근 모은 돈으로 열심히 공부하고 예쁘게 잘 살았어. 그리고 난 그렇게 잘 산

동생이 앞으로도 더 잘살았으면 좋겠어. 그런데.

그 대척점에 있는게 굳이 나라는걸 말하지는 않았으면 한거지.

버는동안에는 가족을 위한다는 생각때문에 이십만원 사십만원 백만원씩도 아낌없이

가족에게 내줬어. 한두번도 아니고. 그게.. 나는 비록 힘들게 돈을 벌지만,

나도 열심히 살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싶었어.

그런데 이젠 다 망했으니 가족들은 더이상 동생과 날 비교하는 것 조차 하지 않네.

이쯤되면 가족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

아무튼 이야기로 돌아와서 나는 그자리에서 이야기하기를 그만뒀어.

알게뭐야. 좋을땐 가족이고 나쁠땐 서른넘게먹은 객식구인데.

3.

돈이 없기 시작한뒤로 나는, 싸구려지만 낚싯대를 샀어. 나에게 낚시를 권했던 형이

스피닝 릴이라고 하는 입문용 릴을 선물해줬지. 처음에는 릴과 낚싯대를 빌려 다녔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그냥 캐스팅이라고 하는, 낚싯대를 던지는 시간만큼은 내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아도 괜찮더라고. 그래서 원래는 세트로 사려고 했는데 낚시를 권했던 형이

손사레를 치며 그러지 말라고 한거야.

내친김에 베이트라고 하는 상급자용 캐스팅 방법도 배웠지.

낚시란 참 재미있어.

캐스팅을 할 때 핑 하고 초릿대 끝이 찌릿 하면서 줄이 날아가는 그 순간이 찰나처럼 생생해.

거기에는 대출이자도 못난 나와 데면해진 가족들도, 지금은 어디서 뭘 하는지 알지도

못하는 예전에 친했던 사람들도 불확실한 내 미래를 포함해 아무것도 없어.

그냥 던지고, 당기고 그러다 목마르면 물한잔 담배한대 태우면 되는거야.

정말로 아무것도 없는 세계 그래서 진짜 온전한 시간. 해가 슬렁슬렁 뜨고 대충 하늘위에

고깔모양 하늘 끝까지 올랐다가 뉘엿뉘엿 질 때까지 던지고 당기고 하다보면 하루종일 뭘

한마리도 못낚아도 괜찮아.

다음에 다시 돈을 벌게 되면 괜찮은 릴과 낚싯대 그리고 예쁜 루어를 사야지.

4.

서러운 꿈을 꾸었어.

2 에서 이야기했던, 엄마와의 대화가 오고간 후 잠들었는데 꿈에서 가족들이 마침내

날 버렸어. 친한 사람들에게 찾아갔지만 문을 닫거나 조롱했어. 인터넷에 글을 올렸는데

내 게시물이 온갖 악플로 도배되고 심지어 어떤사람은 내가 있는곳에 찾아와 놀려댔어.

너무 서러워서 울다 깼어.

방구석에 앉아 만들다 만 건담을 품에 안고 한참을 멍하니 있었어.

어쩌다가 이렇게 된걸까.

난 그냥 열심히 살려고 했던 것 뿐인데.

헬스장 회원권, 아직 포장도 뜯지 않은 건담, 저녁에 먹다만 소주. 일주일전에 먹고 한구석에

쳐박아둔 곰표 오리지널 팝콘, 나름 괜찮았던 시절에 나를 위한거라며 산 아주 좋은 컴퓨터와

힘들때 내 손가락을 더 힘들게 했던 기타. 내 방 천장 한켠에 매달려계시는 예수님은 힘드셔서 그런가

꿈이라도 좋은거 꾸게 해달라고 했던 기도도 들어주시질 않네. 이럴거면 거기 왜 계세요.

그냥 내려오셔서 한잔 하세요 저랑.

내가 힘들때 선뜻 술사주며 힘내라고 말해주는 좋은 동네형들. 최형 내가 힘들때

술사주고 힘들면 언제든 연락하라고 해줘서 고마워.

그래도 돈있으면 나름 관계 괜찮은 가족들. 아빠가 날 위해 큰 돈을 들여 내 손을 잡고

서울랜드에 놀러갔던 그 정성만큼은 아직도 너무 고마워요.

지랄염병맞긴 해도 나와 꽤 잘노는 동생과 매제. 그리고 걔네집 어린 리트리버.

20년째 아직도 연락하고 지내는 소설카페 회원들.

내 소중한 독일친구와 미국친구, 그리고 독일친구와 날 친구로 만들어준 예쁜친구.

마토이류코, 찰리채플린, 아스카, 레이, 백스트리트걸즈의 마리, 건버스터 노리코, 월드오브워크래프트의 흑마법사.

내 소설에 나오는 레인과 쯔바이쉴츠, 트리거 수잔, 엘리스와 도로시.

그리고 내가 아는 모든 건담들. 그랑죠.

어드벤쳐 타임 핀과 제이크, 레몬그랩, 프린세스 버블검, 캔디왕국 가디언들,

호머심슨, 아이언맨, 로보캅, 미친포텐 제대로 보여준 식신과 희극지왕의 주성치.

뎁, 페퍼톤스, 강허달림, 이진아, 여자친구, 김윤아, H ZETTORIO, PASSPO,

RAMP, 양방언, 김광민, 그리고 다이시댄스 이새끼 너 너는 그러면 안됐어. 내가 널 얼마나 좋아했는데.

어디보자 또 뭐가 있더라.

내가 아주 잘 되어서, 내가 결혼할 사람은 나와 함께 나란히 앉아 맥주를 마시며 건버스터를

봐줬으면 했어. 축퇴로에 손을 집어넣는 그 순간에 함께 울어줄만한 감성을 가진 그런...

괜찮다면 로보캅 시리즈도 좋고. 80년대 매운맛 폴 버호벤이 뭔지 보여주고 싶었어.

욕심이 아주 하늘을 찔러 그냥.

다 끝났구먼. 내 언젠가 이렇게 될 줄은 알았지만 그게 올해일줄은 몰랐지.

요새 자꾸만 내가 좋아했던 것들 좋아하고 있는것들만 떠올리는걸까.

그게 좀 더 내 마음이 편해지는 순간이라 그런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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