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시절 수학에 나름대로 자신이 있었다.
어느 시험이 끝난 다음 날 수학 선생님의 방에 호출되었다.
'몇점일거라 생각해?' 라고 묻길래 속으로 '또 만점 받아버렸나?' 라는 생각을 하면서 조금 낮춰서 '95정도...?' 라고 물었는데
선생님이 내민 답안용지에 적힌 점수는 30점.
눈 앞이 새하얘진 나에게 '너는 이해는 잘 하고있어. 다만, 여기 이 부분을 뭔가 크게 착각하고 있는 거야.
이대로 이 답안지를 주면 충격을 받아서 수학을 싫어할 것 같았어. 그래서 먼저 부른거야' 라고 하시는 선생님.
너는 잘하고 있다며 몇번이고 말씀하시며 내 실수를 꼼꼼하게 짚어주셨다.
그 덕분에 수학이 특기 과목인 채로 입시까지 끝낼 수 있었다.
그 날, 선생님이 그렇게 해주시지 않았다면.
그냥 답안지만 건네받아버렸다면 분명히 나는 수학을 포기했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의 내가 있는 건 그 선생님 덕분이라 생각하면서 언젠가 그 일에 대한 감사를 하고싶다고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
동창회 소식을 듣고 분명히 거기서 만날 수 있을거라 생각하던 와중에 선생님의 부보가 들어왔다.
너무나 유감스러웠다. 끝내 전하지 못했던 일들이 후회되었다.
그로부터 몇 년 뒤, 초진 환자 진료부 중에 선생님과 똑같은 성씨가 있었다.
이 부근에선 드문 성씨였다. 심박수가 올라갔다. 혹시!? 가족일까?
그런데 완전히 관계없는 사람이면? 아니야, 맞다고 쳐도 사이가 안좋은 관계라면? (트위터 너무 봄)
그런 걸 생각하다보니 선생님에 대해 결국 물어볼 수 없었다.
평상심으로 돌아와 진료를 시작했다.
그런데 마치고 돌아가려던 그 분이
'혹시, ㅇㅇ씨(내 옛날 성) 인가요?' 라고.
'남편이 당신에 대해 항상 자랑했었어요.
제자 중에서 수학으로는 제일이었다고. 분명히 좋은 의사가 될 거라며 말했거든요'
도중부터 흘러나오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계속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던 것, 선생님이 안계셨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지도 모른다는 것.
그런 말들을 전할 수 있었다.
딱히 나를 알고 온 건 아니라고 하셨다.
우연한 만남이었겠지만 역시나 왠지모르게 선생님이 만나게 해준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감사의 말이나 전하고 싶은 마음은
뒤로 미루지 말고 전할 수 있을 때 꼭 말로 전하도록 합시다.
내 선생님은 어째서..
은사님이시네..
학생의 심리를 미리 읽어냈다는 걸 생각하면 선생으로서의 능력이 정말 초월적이었다는 거네
아마 평소에 그 과목에 자신 있고 잘 하던 학생이 갑자기 낮은 점수 받으면 스스로 충격 먹을지도 모른다는 예상은 하셨겠지. 그러니까 직접 불러서 틀린 부분도 알려주신거고.
나는 북관(北關)에 혼자 앓아 누워서
어느 아침 의원(醫員)을 뵈이었다.
의원은 여래(如來) 같은 상을 하고 관공(關公)의 수염을 드리워서
먼 옛적 어느 나라 신선 같은데
새끼손톱 길게 돋은 손을 내어
묵묵하니 한참 맥을 짚더니
문득 물어 고향이 어데냐 한다.
평안도 정주라는 곳이라 한즉
그러면 아무개 씨 고향이란다.
그러면 아무개 씨 아느냐 한즉
의원은 빙긋이 웃음을 띠고
막역지간이라며 수염을 쓸는다.
나는 아버지로 섬기는 이라 한즉
의원은 또다시 넌지시 웃고
말없이 팔을 잡아 맥을 보는데
손길은 따스하고 부드러워
고향도 아버지도 아버지의 친구도 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