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우라라의 혈통은 꽤나 좋았으나, 400kg도 안되는 체격에 겁도많고, 예민하고, 까탈스러워서 조교가 힘든 경주마였다. 그래서 원래라면 그대로 인생이 끝날 거 같았으나, 다행히 경기장에만 가면 컨디션이 회복되고 달릴 수 있었다. 그래서, 우승은 커녕 달려나 보자는 심정으로 그 당시 가장 싼 고치 경마에 출전하게 되었다. 역시나 우승은 못했으나, 한 회당 6만엔이라는 출연료에 경마장 예탁비가 130만엔이라 1년동안 20회이상 출연해야 겨우 적자를 메꿀 수 있고, 하루 우라라가 살 수 있는 방법이라 죽는거 대신 죽을 만큼 힘들게 뛰었다.
원래, 경주마들은 태생적으로 지구력이 약하게 설계되어 연 20회 이상 출전은 상당히 부담이 가나 하루 우라라는 경주마 답지 않은 튼튼한 내구성, 1200m 이하 단거리 위주 출전 및 훈련 강도 조절로 버텨 나간거다. (의외로 이런식으로 빡세게 굴리는건 경마계에서 흔하다)
그러다가 2000년대 초, 일본은 잃어버린 10년을 맞이하고 지방 경마장들이 차례차례 폐업한다. 고치 역시 이 마수를 피할수 없어 2003년 적자를 메꾸지 않으면 폐업할 위기에 쳐했다. 이때, 하루 우라라의 경기를 데뷔부터 지켜본 고치 경마 장내 아나운서는 그의 연패 횟수를 모두 기억하고 있었고, 88연패가 되자 고치 지방 신문에 보도자료를 전달한다. 그리고 이 기사는 일본 전국에 보도되고, 잃어버린 10년에서 전국민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주는 스타로 등극하게 된다. 당시 총리인 고이즈미 준이치로까지 찾아올 정도였다.
왜인가 하니, 우라라는 경기 뛰는 내내 패착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노력하기 때문이다. 참고로 우라라는 2착~3착까지 든 적이 있으나, 모든 경기에서 1착을 한 적이 없어 유명한것이다.
이러한 인기 속, 고치 경마장과 마주, 목장은 여러 굿즈와 마권을 팔아 큰 벌이를 얻게 되었다. 그렇게 하루 우라라는 자신은 물론, 망하기 직전인 경마장과 전국민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댓글(2)
거기에 저 시기가 버블 붕괴로 나라 개판이던 시기라, 살아남기 위해 가축처럼 일해야 하고 그럼에도 언제 뎅겅 하고 일자리에서 잘릴 줄 모르던 시절이었음.
그런 와중에 저 스토리텔링이 먹혀들어가면서 인기를 얻게 된 거.
다만 인기와는 별개로 마주들부터 시작해서 관계자들의 이야기는 지저분하다 못해 개판임. 저런 인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우라라는 팬들이 아니었으면 쥐도 새도 모르게 도축되었을지도 모르는 신세가 되었고, 정작 고치 경마장에는 우라라 동상 하나 없고.
열심히 뛰었으나 1등 못했다고 경마장 부속 말고기집에서 회쳐진 말딸들의 저주와 절규를 비웃으면서 하루우라라는 오늘도 달린다.
"인기가 없는 니들 잘못이지 왜 나한테 억하심정이야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