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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현 | 23/03/25 23:18 | 추천 20 | 조회 16

말딸, 괴문서) "돈 많은 얼짱 남자친구 상시 모집중" +16 [7]

루리웹 원문링크 https://m.ruliweb.com/best/board/300143/read/60868642

고등학교 시절.

지망했던 학교가 집과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던 탓에

어쩔 수 없이 갑작스레 자취를 한 적이 있었다.


당연하게도 자취방과 학교는 매우 가까운 거리에 있었고

다른 애들이 버스나 지하철로 하교하는 시간 동안

나는 학교 근처를 이곳저곳 쏘다니고 다녔다.


처음으로 부모님의 손길을 벗어나

낯선 장소를 아는 장소로 바꾸어 나가는 것이

너무나도 설렜기에 평범하게 아이들이 놀고 있는 놀이터에서

유령이 나온다는 소문이 있는 으스스한 폐 건물까지 안 가본 곳이 없었다.


근처 상점가도 제 집 드나들듯 돌아다닌 덕에

다음 날 먹을 도시락의 반찬거리는 걸어가면서

이미 머릿속으로 떠올릴 수 있을 정도였다.


딱 하나 들어가보지 못했던 건물이 있다면 상가에 있던 바.

당시의 나는 미성년자였으니 당연한 일이었지만.


그렇게 원래 부모님과 같이 살던 지역보다

고등학교 근처의 지역을 더 잘 알게 되었을 때 즈음.

상가에서 요상한 여자아이 하나를 보게 되었다.

머리카락은 적갈색에 귀는 사람 귀가 아니라 뾰족뾰족한 동물의 귀.


우마무스메인가.


학교에도 우마무스메가 몇몇 있지만

대다수의 우마무스메는 본능적으로 달리기를 원해서

중앙이든 지방이든 트레센을 지망하는 경우가 많다.

그 말은 고등학교 시점에 일반 학교를 다니고 있는 우마무스메란

달리기를 포기하거나 다른 것에 푹 빠진 녀석일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기도 했다.


전자는 그럭저럭 있지만 후자의 경우는 조금 위험한 녀석들이 많다.

내가 아는 녀석만 해도 인간 귀에 환장을 하니.


"트레센에 가면 우마무스메밖에 없으니

둥그런 귓바퀴나 말랑말랑한 귓불은 못 보잖아!!"


입만 닫으면 참 예쁘장한 녀석인데.

실제로 달리기 실력이 아깝다고 여긴 부모님이

트레센 입학 시험에 강제로 응시시켰고

우수한 성적으로 무사히 합격..할 뻔했지만


면접에서 어떤 말을 했는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겠지.

저 말을 하면서도 내 귓불을 만지고 있던 녀석이니.


부디 트레센에는 이 녀석 같은 광인이 없기를 바란다.


다시 적갈색 머리 우마무스메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그 아이는 마치 상가가 제 집인 것마냥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처음 이 지역에 와서 쏘다니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흐뭇하게 바라보던 도중, 그 아이가 향하는 장소를 보며

나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바.


어른들의 영역.


뭐 사실은 그냥 일 끝나고 난 다음

모여서 술이나 마시는 곳이지만.


하여튼 당시의 나는 어떤 생각이었는지

어린아이가 바에 함부러 들어가는건 위험하다고 생각해서

그 아이가 들어간 것과 동시에 따라 들어가버렸다.


생각해보면 기껏해야 술마시던 어른들이 잠시 바라보다

애들은 이런 곳 오는거 아니라며 슬슬 내보내는게 다일텐데 말이지.


아무튼 바에 들어간 직후 내 눈에 보인 건

적갈색 머리의 여자아이가 똑같은 머리색에

땋은 머리를 한 여성 분에게 혼나고 있는 모습이었다.


"아하하..."


순전히 내 착각이었나.

급속도로 뻘쭘해진 분위기 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문을 열려고 했으나


"잠깐, 거기 변태 오빠!"


뭐.

뭐시라.


...


"""와하하하!"""


덕분에 조용히 빠져나가려던 나는 확 눈에 띄어버렸고

혼나는 여자아이를 그땐 그랬지 싶은 눈빛으로 바라보던 손님들은

여자아이의 한 마디에 개그 프로라도 보는 듯한 태도로 변모해있었다.


"얘는! 네이처!"


졸지에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어버려

바의 입구에서 여자아이가 혼나는 걸 끝까지 봐버라고 말았다.


---


"미안하구나, 우리 애가..."


"아, 아니에요!

제가 멋대로 착각해버린 거라서.."


만인에게 기나긴 잔소리 시간이 끝나고

여자아이의 어머니께서 나에게 사과를 하셨지만

나도 먼저 착각했으니 사과할 필요는 없다.

이제 오해도 다 풀렸으니 자취방에 돌아가려는 찰나.


꼬르륵ㅡ


배가,

고파졌다.


"어머, 벌써 시간이 이렇게..

아줌마가 뭐라도 좀 해줄까?."


"나는 나폴리탄!"


"저도 그럼 그걸로."


바로 직전까지 혼나지 않았었니?

거참 회복이 빠른 애구나.


아주머니께서 주방으로 들어가시자

적갈색 머리의 여자아이는 내 바로 옆 자리에 앉더니

마치 스캔이라도 하듯 나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어본 뒤

이내 소악마적인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오빠는 돈이 많아 보이진 않네?

거기에 얼굴은..음..."


뭐라는 거야,

이 꼬맹이.


설마 우마무스메라는게

다 이 모양인건 아니겠지.


아니.

필시 아닐테다.

얘는 아직 어려서 그런거고

학교의 그 녀석은 그냥 훼까닥 한거겠지.


"저기, 그거 무슨 말이니?"

"응응. 나, 돈 많은 얼짱 남자친구 상시 모집중이거든!"


얼짱이라니,

요새 잘 안 쓰는 말 아니던가.

거기다 내용은 또..

어디 이상한 막장 드라마라도 본 모양이지.


음음.

대충 이해했어.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나폴리탄을 보며

얌전히 밥 먹고 후딱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혹시 네이처를 맡아줄 수 없을까?"


"네?"


주린 배를 빨갛지만 맵지 않은 나폴리탄으로 채우며

아주머니에 대한 이야기나 적갈색 머리의 여자아이..

아니, 나이스 네이처지. 네이처에 대한 얘기를 듣고

고등학교 때문에 자취를 해서 이 근처에 산다는 내 사정도

이것저것 풀다 보니 나온 결론은 아까의 생각과 정 반대의 것이었다.


아주머니의 사연은 심플하게 바를 운영해야 해서

네이처를 봐줄 시간이 없지만 그냥 놔두면

이곳 저곳 쏘다니니 걱정이 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침 그때 나타난 것이 바로 상가 근처에 살고, 한가한 나.

오늘 처음 본 사이인데 어떻게 나를 믿냐고 했더니만

아주머니께선 웃으시며 바로 들어가는 네이처가 걱정돼서 따라온 애가 나쁜 애일리 없다고 하셨다.

게다가 상가에선 이곳 저곳 쏘다녔던 내 이야기도 자주 오고 갔던 모양이다.


결국은..

뭐 어째.


그렇게 나는

나이스 네이처의 오빠가 되었다.


---


"네이처, 이 오라버니께선 이제 고등학교를 졸업하시고

대학교로 가신단다. 중앙 트레이너를 노리고 있으니

만약 네가 트레센에 간다면 만날지도 모르겠는걸?"


"네네, 오라버니는 무슨 오라버니. 잘 가셔요 오빠.

게다가 난 돈 많은 얼짱 남자친구 상시 모집중이니까!"


"...너 아직도 그거 밀고 다니냐..?"


"후후..만약 진짜 오빠가 트레센에 온다면

얼굴 정도는 비쳐줄게?"


"네네, 알겠수다.

그래, 진짜 만난다면 그때 보자!"


3년이라는 짧다면 짧으면서도

길다면 긴 인연은 그렇게 마무리 되었고


그 이후 나는 대학에서 열심히 공부하여 무사히

중앙 트레이너 자격 시험을 한 번에 통과! 하지는..못했고

두 번 낙방한 다음 세 번째 응시한 시험에서

마침내 중앙 트레이너 자격을 얻을 수 있었다.


봄.


새 생명이 태어나는 것을 알리기라도 하는 듯이

분홍색의 벚꽃들이 화려하게 피어나는 계절.

그리고 입학과 신입들이 들어가는 시기이도 하다.


가슴팍에 단 트레이너 배지에서 나는 광을 보며

나도 이제 트레이너라는 실감을 서서히 느끼고 있었다.


바람에 벚꽃이 휘날리며 마치 눈이라도 내리는 듯한 광경이 만들어졌다.

속으로 이럴 때 영화나 드라마에선 의외의 만남이 시작되는데 라며 생각하던 도중


어디선가 달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선발 레이스라고 했던가.

이제 나도 담당을 찾아야 하는구나.

선발 레이스 장소로 향하는 발이 묘하게 가벼웠다.


""헉..허억..헉..""


나름 빨리 간다고 했지만

내가 도착했을 때 선발 레이스는 이미 끝나있었다.


아차차.


아쉬운 나머지 착순이라도 보기 위해

터프에 시선을 향하자 익숙한 인영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적갈색 머리에..트윈 테일.


설마.


우연이겠지.

적갈색 머리 우마무스메가 한둘도 아니고.

하지만 귀를 감싸고 있는 멘코는 붉은 색에 초록 리본.


...


정말?


진짜 그렇다면


너는 왜 고개를 숙이고 있는거야?


멘코를 보자 불확실했던 생각은 확신으로 변했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너를 보자 욱한 마음이 올라왔다.


나랑 있을 때는.

그 때는.

세상 그 어떤 것이라도

가볍게 이길 수 있다는 듯이 말했으면서.

너는 왜 좌절해서 무너져 있는거야?


오해일지도 모른다.


그냥 먼지가 들어가서 그런거였거나.


아니면 애초에 네이처가 아닐수도 있다.


잘못 말했다간 신입 때부터 찍힐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지만.


내 안의 너는 그런 녀석이 아니었잖아.


"돈 많은 얼짱 남자친구 상시 모집중!!"


아아.

근처에서 숨을 고르던 우마무스메들도

레이스를 분석하던 트레이너들도 전부 나를 쳐다보고 있다.


아무래도 첫 단추부터 날아간 기분이 들지만

아직 네가 나를 보지 않았어.


이렇게 큰 소리를 내도 못 들을 정도로 힘든거냐.

그럼 들릴 때까지 몇 번이고 말해주지.


"돈 많은!! 얼짱 남자친구! 상시 모집중!!!"


"오...빠?"


땅을 바라보던 갈색의 눈동자가 이쪽을 향한다.


그래.


드디어 나를 보는구나.


아무래도 내 담당 우마무스메는..


이미 예전부터 진작 정해졌던 모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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