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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rkms | 23/03/26 10:41 | 추천 6 | 조회 8

말딸, 괴문서) 트레이너의 출장이 싫은 에이신 플래시 +8 [1]

루리웹 원문링크 https://m.ruliweb.com/best/board/300143/read/60872272


 

 

 


 금요일 오후의 정례 회의가 끝난 뒤, 에이신 플래시의 담당 트레이너는 저녁 식사도 거른 채 노트북을 들고 자신의 기숙사로 허겁지겁 돌아갔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 18시 정각에 그가 기대하던 일의 참가인원을 발표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이날만을 위해 살아…온 것까진 아니지만, 그래도 제법 기대하고 있는 일이다.



 기숙사로 거의 뛰어들다시피 한 그는, 대충 현관문을 닫고 재빨리 노트북을 열었다. 그리고 중앙 트레센 공식 홈페이지로 들어가, 트레이너 전용 계정으로 로그인했다.



 눈앞에 보이는 담당 우마무스메의 정보와 출주 가능 레이스 등의 정보 그런 거 대충 어딘가로 치워버리고, 공지 사항 부분으로 들어갔다.



 “어딨더라…아, 여깄다.”



 공지 사항의 [신입 및 일반 트레이너 해외 연수 지원 합격자 발표]라는 게시물을 클릭한다.



 여기에 거는 기대가 조금 크다. 중견 트레이너와 일반 트레이너 사이에 애매하게 걸쳐 있는 에이신 플래시의 담당 트레이너에게, 이 해외 연수 기회는 달콤한 과실과도 같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공지를 확인하자마자 곧바로 시험에 지원했고, 약 2주가 지난 오늘이 결과 발표일이다.



 물론 쉬운 것은 아니라 생각한다. 중앙 트레센 전체에서 일곱 명만 뽑기 때문에, 경쟁률이 장난 아닌 것은 기정사실이기 때문이다.



 중견 트레이너 선배들은 그렇다 치고, 업계에서 고이고 고인 베테랑, 그리고 엘리트 트레이너 아저씨들이 지원하지 못하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다른 경쟁자들 역시 중앙 트레센의 트레이너들이다. 어디 나가면 거의 다 엘리트 소리 듣는 사람들이다.



 그래, 신인 트레이너 할지라도 중앙 트레센에 들어온 이상, 실력은 검증된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방심하는 사람이 나락 가는 시험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이를 악물고 공부했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결과를 보는 것이다.



 “아, 이게 뭐라고 떨리니.”



 그렇게 말은 하면서도 마우스 스크롤을 내려 합격자 명단을 확인한다.



 “어디 보자…다이와 스칼렛네, 에어 그루브네, 나리타 브라이언네, 골드 시티네, 세이운 스카이네, 라이스 샤워네, 그리고…아, 있다!”



 합격자 명단에 에이신 플래시의 담당 트레이너 본인의 이름이 적혀 있는 것을 보고 나서야 가슴을 쓸어내리며 몸에서 힘을 쭈욱 뺄 수 있었다.



 그 와중에 신인 트레이너는 한 명도 없었다. 역시, 제아무리 난다 긴다 하는 트레이너들이지만, 여기 중앙 트레센은 그런 트레이너들만이 모인 곳. 고일 대로 고인 트레이너들 뿐이기에, 실무 경험이 적은 신인 트레이너들이 일반 트레이너들을 상대로 이기는 것은 굉장히 어려웠으리라.



 뭐 그런 신인 트레이너들도 2~3년 뒤에는 다른 신인 트레이너들을 압살하고 있겠지.



 아무튼, 그런 편안한 마음으로 공지에 적힌 내용을 대충 훑어본다.



 “잠깐만, 연수팀 리더가 그라스 원더네 형? 그래도 명색이 엘리트 트레이너다 이거지?”



 난봉꾼이자 사고뭉치 이미지의 직속 선배, 그라스 원더네 트레이너가 머릿속에 떠오르자, 자기도 모르게 실소가 흘러나왔다. 뭐랄까, 착하고 좋은 형이지만 존경하기에는 조금…모자란 그런 선배랄까.



 역시 존경이라고 한다면 심볼리 루돌프네 트레이너나 사일런스 스즈카네 트레이너나 마루젠스키네 트레이너 겸 기숙사 사감 아저씨 정도는 되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라스 원더네 선배가 실적이 좋고 어쩌고 한 것은 알겠지만…존경? 존…경? 글쎄 잘 모르겠다.



 아무튼 그런 사람이 연수팀 리더라는 것을 확인하자, 살짝 긴장이 풀리는 것 같았다. 원체 노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보니, 연수 가서도 너무 빡빡하게 쥐어짜진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총 여덟 명의 트레이너들이 중앙 트레센을 비우는 것이다. 고작해야 다음 주 일요일에 출국하여 그 다음 일요일에 돌아오는 일주일 과정이지만, 그래도 개선문 타이틀이 달린 경기를 치르는 코스를 보고, 그곳에서 공부할 수 있다는 사실은 겨우 일주일이라고 깎아내릴 수 없게 만들었다.



 다만, 작은 걱정이 하나 있다면…담당 우마무스메인 에이신 플래시의 스케줄이다.



 물론 에이신 플래시가 원체 스케줄을 잘 짜고 계획적으로 행동하는 아이다 보니, 보통 짧은 출장이나 휴가 같은 경우라면 그가 스케줄을 짜고, 에이신 플래시가 자율적으로 이행하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혹은, 반드시 트레이너가 필요하다 싶은 경우라면, 친한 트레이너인 그라스 원더네 선배나 에어 그루브네 친구, 또는 골드 시티네 친구한테 조금 부탁해 두고 갔지만…이번에는 그럴 수도 없다.



 하필이면 그라스 원더네 선배는 연수팀 리더, 그리고 다른 두 명은 같이 연수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담당 우마무스메의 트레이닝 스케줄이나 다른 자잘한 관리를 유기해 버릴 수도 없고, 다른 누군가에게 부탁하자니, 기간도 기간인데다가 그 정도로 친분이 있는 동료 트레이너들이 더 있나 생각해보면…그것도 아니다.



 미친 척하고 학생회장인 심볼리 루돌프네 트레이너에게 감히 부탁드려볼까도 생각했지만, 아서라, 그 아저씨는 담당이 여섯이다. 이미 물리적으로 육신이 갈려 나가고 있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그렇다고 골드 십의 트레이너에게 부탁하자니, 어…그러니까, 담당 우마무스메가 이상한 기행에 물들 것만 같았기 때문에, 조금…조금, 꺼려진다. 절대 뭐 악의가 있거나 해서 그런 건 아니고, 걔 담당 닮아서 조금 이상…하다고.



 사람은 착하고 사고는 안 치는데, 뭔가 사차원인 녀석이라 불안하다. 하기야, 그러니까 사차원 우마무스메 골드 십의 트레이너를 하는 거겠지만.



 아무튼, 결국에는 에이신 플래시에게 자율적으로 맡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대신이라고 하기엔 뭣하지만, 일 분 일 초도 낭비되지 않는 철저하고 완벽한 스케줄을 짜서 건네주자.



 연수까지 남은 일주일간 조금 고생하면, 문제없을 것이라 그는 확신했다.




*  *  *  *  *  *  *  *  *  *




 에이신 플래시가 갑작스러운 통보를 받은 것은, 그로부터 정확하게 6일 후였다.



 “……네?”



 “말하는 걸 깜박해서 미안. 내일부터 해외 연수 간다고.”



 “잘못…들었습니다. 다시 말해주시겠어요?”



 “내일부터 일주일간 해외 연수 가.”



 “이렇게 갑자기…요?”



 “그, 그거 진짜 미안해! 나 없는 동안 에이신 네가 해야 할 트레이닝 스케줄이랑 식단이랑 이것저것 신경 쓰다 보니까, 말할 타이밍을 놓쳤어.”



 “어쩐지…이번 주 내내 얼굴도 보기 힘들 정도로 바쁘시다, 했어요.”



 토라진 듯 팔짱을 끼고 고개를 홱 돌린 에이신 플래시의 앞에서 양손을 모으고 싹싹 빌었다.



 “그, 진짜 미안. 다녀와서 꼭 보충할 테니까. 그리고 선물도 사 올 테니까.”



 “어차피 결정된 일이라 다녀오셔야만 하는 거잖아요?”



 “윽, 그건 그렇지.”



 “제 의견은 중요하지 않았잖아요?”



 “정말 미안해, 에이신!”



 “…….”



 정론에 정론이기 때문에 딱히 반박할 수도 없었다. 그저 고개도 허리도 숙이며 굽신굽신 용서를 비는 수밖에 없었다.



 조금 쓰레기 같은 생각이라면, 그래도 에이신 플래시는 결국 용서해 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야 뭐 이상한 거 하러 가는 것도 아니고, 그냥 트레이너들 연수하러 가는 것뿐이니까.



 “다른 분들은 누가 가시나요? 혹시 키류인 씨라던가, 다른 여성 트레이너분들도―”



 “아니, 아니아니, 그런 건 아니야. 전부 남자들밖에 없다고.”



 “……혹시 그라스 원더 씨네 트레이너분도 가시나요?”



 담담하게 물어보지만, 목소리에 숨겨진 불안감을 아예 지울 수는 없었으리라. 살짝 떨리는 에이신 플래시의 목소리에, 그는 하마터면 웃어버릴 뻔했다.



 무슨 위험물 보는 것 같이 말하고 있다니. 그라스 원더의 트레이너가 평소에 저질렀던 일들을 되돌아보면, 뭐…에이신 플래시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 정도인가? 싶기도 했다.



 “응. 연수팀 리더로 참가해.”



 아무튼 거짓말을 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사실대로 말하자, 에이신 플래시는 눈을 치켜뜨며 고개를 내저었다.



 “안 돼요. 절대 트레이너 씨 혼자 보낼 수 없어요!”



 “아니, 그렇지만 이건 그냥 트레이너 연수―”



 “가서 또 무슨 악랄하고 사악하고 변태 같은 계획에 트레이너 씨가 끌려갈지 몰라요!”



 “…….”



 그런 이미지였구나, 그라스 원더네 트레이너 형은.



 물론 아니라고 부정하기에는 담당 애들 몰래 소개팅 주선 등의 전적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냥 하하 웃으며 넘기려 했다.



 “그래도 이번 연수 다녀오면 에이신 너한테 조금 더 좋은 지도를 해줄 수 있을 거라 기대해.”



 “……그건 그렇긴 하지만요.”



 입을 비쭉 내밀고 새초롬하게 이쪽을 쳐다보는 것이, 평소의 에이신 플래시답지 않은 츤데레 이미지가 느껴져서 제법 새로웠다.



 하지만 이내 이어지는 무시무시한 선언에, 화들짝 놀라 그녀를 뜯어말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저도 갈래요.”



 “엥? 아니, 뭐? 아니, 그건 안 돼.”



 “어째서죠? 사비로 가면 문제 없지 않나요?”



 “그런 문제가 아니잖아.”



 “게다가 유럽이면 다른 사람들보다 제가 잘 알아요.”



 “그건 맞지만, 아무튼 안 돼.”



 “어째서죠? 받아들일 수 없어요! 이해할 수 없어요! 완벽한 계획인데요!”



 하아, 작게 한숨을 내쉬며 에이신 플래시의 논리를 정론으로 반박한다.



 “트레이너 연수에 담당 우마무스메가 따라가는 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잖아.”



 “…….”



 “게다가 내가 해외로 연수 간다고 해서, 에이신 네가 트레이닝을 빼먹고 따라올 이유는 안 되고.”



 “…….”



 “그러니까, 응? 이미 정해진 일이니까…그리고 평생 못 보는 것도 아니고, 고작 일주일이니까, 기분 풀고…응?”



 “…….”



 어르고 달래며 에이신 플래시의 기분을 조금이라도 풀려고 노력했지만, 그 노력이 무심하게 에이신 플래시는 여전히 볼을 빵빵하게 부풀리며 말했다.



 “고작 일주일이 아니에요, 고작 일주일이…!”



 “그렇지만…그래도 출장 같은 일이 있을 때마다 큰 문제 없었잖아.”



 “3일 이상 출장 가신 적 없었잖아요.”



 “그래 봐야 일주일이니까. 갑작스럽게 말하게 된 건 정말로 미안해. 하지만 일주일 정도 못 본다고 해서 뭔가 큰일이 나는 건 아니잖―”



 “트레이너 씨는 아무것도 몰라요! 유럽이, 얼마나 위험한지…!”



 유럽의 우마무스메들이 여기, 중앙 트레센의 우마무스메들처럼 얌전하리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누가 들으면 얘네들이 얌전? 이라고 되물으며 놀라겠지만, 에이신 플래시가 보기에는 얌전한 편이다.



 게다가 중앙 트레센의 트레이너, 그러니까 트레이너 중에서도 엘리트 취급받는 트레이너들이라면, 분명 어느 우마무스메건 들이댈 가능성이 매우, 굉장히, 정말로 높다.



 일주일간 몸을 비비며 들이대면, 트레이너 씨도 남자이기 때문에 혹시나…하룻밤의 불장난이 일어나 버릴지도 모른다.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트레이너 씨는 에이신 플래시만의 것이다. 에이신 플래시와 서로의 처음을 나누고, 서로의 색으로 물들였고, 앞으로도 서로 순애만 할 거란 말이다.



 못 준다. 누구에게도, 아무에게도, 그 어떤 히토미미나 우마무스메에게도…못 준다.



 그러니까, 트레이너 씨에겐 미안하지만, 반드시 따라가야겠다.



 “어, 뭐…물리적인 위험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너무 걱정하지 마. 어차피 우리 연수원에서 한 발짝도 못 나갈 거야.”



 “그래도…걱정되는걸요. 역시 제가 따라가야―”



 “에이신.”



 트레이너 씨가 진지한 목소리로 이름을 불렀다. 그 목소리가 조금 멋있다고 살짝 생각해 버렸다. 하지만 그 뒤에 무슨 말이 나올지 예상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귀가 축 처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걱정해 주는 건 고맙지만, 나는 네 트레이너야. 아이 걱정하듯 할 필요는 없어.”



 직설적인, 상냥한 거절이다. 그리고 아이 걱정하듯 할 필요는 없다면서, 그의 말속에는 에이신 플래시를 아이 취급하는 면이 있다.



 정말 치사하고 비겁한 남자다. 나쁜 트레이너 씨다. 감정을 주체할 수 없을 것 같다.



 “트레이너 씨는 바보예요, 바보!”



 “…….”



 무심코 그렇게 내뱉어버리곤 트레이너 씨의 기숙사 방을 뛰쳐나왔다. 트레이너 씨가 따라와 잡아 주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며 뒤를 살짝 돌아보았지만, 오히려 섭섭한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뭔가요, 이쪽이 잘못한 것 같잖아요.



 “하아…바보 같아.”



 에이신 플래시가 잘못한 부분이 있는 건 사살이지만, 일차적인 잘못은 출장 하루 전에 그 사실을 알려준 트레이너 씨잖아요.



 다른 트레이너들은 분명 자신의 담당 우마무스메들에게 다 알려줬을 텐데, 어째서 저만 이렇게 늦게―



 “……어라?”



 다른 트레이너분들은 담당 우마무스메들에게 이야기를 했을까? 아니, 했다면 분명 에이신 플래시의 귀에 들어오지 않았을 리 없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라스 원더나 골드 시티가 알려주지 않을 리 없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다른 트레이너들도 말을 안 했다는 것이다.



 일주일이나 해외로 출장 가는 중요한 사안을, 반려나 다름없는 담당 우마무스메에게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수상하다.



 곧바로 휴대폰을 들고 다른 일곱 명의 우마무스메를 포함하는 우마톡방을 하나 만들었다. 그리고 출장 이야기를 꺼낸다.



 기다렸다는 듯이 답신이 온다. 일착으로 다이와 스칼렛의 분노 가득한 라인과 라이스 샤워의 후에엥 하는 라인부터, 에어 그루브의 짜증 가득한 얼간이 소리, 나리타 브라이언의 무덤덤한 말, 그리고 골드 시티의 틱틱거리는 라인과 더불어 어지간해서는 볼 수 없는 세이운 스카이의 꼭지가 돌아버린 듯한 말투의 라인까지.



 조금 소름이 돋았던 것이라면, 분명 우마톡방의 모든 우마무스메가 에이신 플래시의 고자질을 읽었음에도, 한 명은 답신이 없다는 점이었다.



 그라스 원더의 나기나타가 반짝 빛나는 것만 같았다.




 *  *  *  *  *  *  *  *  *  *




 [트레이너 씨? 이게 무슨 소리일까요?]



 [그, 그그, 그라스? 무무무, 무슨,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는데?]



 [실토하고 아프고 끝내실래요, 아니면 같이 보트라도 타러 갈까요?]



 [죄송합니다. 살려만 주세요. 내일부터 출장 가는 게 맞습니다.]



 [이런 일을 제게 알려 주지도 않으시고…뭐, 좋아요. 마지막으로 남길 말이 있으신가요?]



 [솔직히 말하면 너희들 이렇게 난리 칠 것 같아서 말 안 하고 있었어. 이거 봐, 지금도 목에 나기나타 들이밀고 있는데…무서워서 출장이나 가겠니?]



 […….]



 [다 그라스 너를 어떻게 해야 더 잘 달리게 할까, 다치지 않고 건강하게 달릴 수 있을까, 불철주야 고민하는데, 그런 일의 연장선상으로 출장 가는 건데 이렇게 난리를 피우면…솔직히 섭섭해, 그라스.]



 [……윽.]



 [물론 어른인 내가 어지간한 건 다 받아주겠지만, 이건 중앙 트레센에서 정한 거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야. 조금은 나를 이해해 줄 수는 없겠니, 그라스?]



 [그런 식으로 말씀하시면…정말, 치사해요, 트레이너 씨는.]



 [대신 오늘은 하루 내내 같이 있을까? 같이 출장 준비도 하고, 같이 식사도 하고, TV도 보고, 오늘 하루 정도는 괜찮아.]



 [……정말로, 치사하네요.]



 [치사하다니. 나는 그라스 너밖에 없으니까……어라?]



 [그런 거짓말만 안 하셨더라면 그냥 넘어가 드렸을 텐데요. 하아…정말, 트레이너 씨는 바보라니까요.]



 [악! 으아악! 허리, 허리 부서져! 허리는 그 방향으로 꺾이지 않아! 항복, 아, 항복! 잘못했으니까, 반성하니까 살려줘, 살려주세요! 그라, 그라라, 그라스 니이이이이임―!!]



 [오늘 온종일 같이 있어 주신다고 하셨죠? 하루 내내 그라스 원더로 마킹해 드릴 테니까요, 후후♪]



 [누가 좀 살려줘어어어어어―!!]




*  *  *  *  *  *  *  *  *  *




 하루 뒤의 연수팀 소집 장소, 그러니까 트레이너 기숙사 주차장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을 방불케 하는 그림이었다.



 월요일의 이른 아침에 소음이 울려 퍼짐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트레이너도, 심지어 사감조차 아무런 민원을 제기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다른 트레이너들 전원이 알고 있을 정도로 중앙 트레센에 소문이 쫙 퍼졌기 때문이다.



 이번 기수 연수팀 트레이너들이 출장 전날까지 담당 우마무스메에게 출장 사실 이야기를 안 했다더라. 그 문장 하나만으로도 소란스러워지리라 확신하지 못했다면, 중앙 트레센의 트레이너 자격이 없는 셈이다.



 개중에는 오히려 슬그머니 창문을 열어 아래에서 벌어지는 아수라장을 여흥 삼아 아침 식사를 하는 부류도 존재할 정도였다.



 “어째서 나한테 한 마디도 안 할 수가 있어?! 나는 트레이너가 1순위인데, 트레이너는 내가 1착이 아니었구나….”



 “그, 그런 의미가 아니잖아 스칼렛. 지난주에 중요한 레이스가 있었는데 말하면 신경 쓸까 싶어 나중에 말하려고 했……히익?!”



 “바보! 바보, 바보! 언제나, 항상, 무슨 일이 있어도 당신의 일은 내가 1순위로 알아야지!”



 다이와 스칼렛에게 분노의 등짝 스매싱을 당하고 있는 그녀의 담당 트레이너라거나,



 “어이, 얼간이. 어제 문자로 툭 던져놓고 이리저리 잘도 도망 다녔겠다?”



 “트레이너. 이 나에게 문자 하나 달랑 보내놓고 설명도 하지 않았지. 그래…마지막 유언 정도는 들어 주도록 하지.”



 “히이이…야, 네가 하루만 버티자며!”



 “아니 집합 장소를 어떻게 알았냐고! 그보다 보는 눈이 많은데 뭐 하는 거……히익?!”



 두 명의 학생회 소속 우마무스메들을 담당으로 둔 트레이너들은, 그녀들의 박력에 다리가 풀려 주르륵 주저앉아버렸으며,



 “트레이너? 다음 주 오프 때 같이 외출하기로 한 거, 잊은 거야?”



 “그게…해외 연수가 안 될 줄 알았는데, 어떻게 합격해 버려서.”



 “흐응…트레이너는 나보다 일이 더 중요한가 보네.”



 “그런 건 아니야. 결국 시티 너를 위해서 일을 하는 거니까.”



 “50점. 진심을 더 가득 담아서 다시 말해줘.”



 “……너 이 기회에 사심 채울 생각 만만이냐.”



 “그 대답은 0점. 자자, 빨리 다시 나를 원하는 마음 가득 담아서 다시 말해줘. 어서.”



 “우욱…나 토할 것 같아.”



 입에 꿀이라도 발라줘야 할 것 같은 골드 시티의 담당 트레이너와,



 “트레이너 씨도 저런 말 한마디 정도는 해줄 수 있잖아요?”



 “나 없는 동안 트레이닝 땡땡이나 치지 마라. 어? 내가 스페셜 위크네 트레이너랑 킹 헤일로네 트레이너랑 엘 콘도르 파사…아 맞아, 이 인간은 도움 안 되겠지…아무튼 너 감시 잘해달라고 부탁해 놨으니까!”



 “우우―, 세이쨩의 컨디션이 절부조가 되는 소리 안 들리시나요.”



 “사고 안 치고 땡땡이 안 치면 다녀와서 같이 낚시 가 줄 테니까.”



 “앗…♡ 세이쨩한테 약속하신 거예요, 분명히?”



 “그래그래. 알았으니까 이만 떨어져.”



 담당 우마무스메의 눈에 하트가 생긴 것도 모른 채 귀찮다는 듯이 세이운 스카이를 밀어내는 그녀의 담당 트레이너도,



 “오라버니는…라이스가 미덥지 못해?”



 “윽…, 그런 건 아니야.”



 “그런데 왜, 라이스에게 말하지 않았어?”



 “으, 그…으으, 그러니까…입이 백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오라버니. 라이스는 고등부야. 중등부나 초등학생 어린애가 아니란 말이야. 오라버니가 라이스에 대해서 걱정하는 것들, 전부 쓸데없는 거니까.”



 “으, 으응….”



 “그러니까 앞으로는 라이스한테 전부, 숨기는 것 없이 말해줘야 해. 알았어?”



 “그, 그래. 알았어.”



 “약속해줘, 오라버니.”



 “야, 약속~. 하하하, 약속…….”



 평소에 담당 우마무스메에게 자신감, 자신감, 노래를 부르던 사람이, 진짜로 당당하게 자그마한 가슴을 쭉 펴고 무뚝뚝하게 자신을 혼내는 라이스 샤워의 앞에서 어쩔 줄을 모르고 있는 모습 하며,



 “가셔서 쓸데없는 일 하시면, 아시죠?”



 “네, 알고 있습니다. 업무와 공부 이외의 다른 행동은 일절 하지 않을 것을 맹세합니다.”



 “속여보겠다는 생각은 하지 말아주세요. 눈과 귀는 어디에나 있으니까요~♪”



 “그라스 원더 님의 말을 가슴에 새겨 넣도록 하겠습니다.”



 “후후, 좋아요. 무탈하게 다녀오세요.”



 “…….”



 전신을 붕대로 감싸고 기계처럼 그라스 원더에게 복종하는 연수팀 리더…의 모습까지. 분명 유흥거리가 부족한 중앙 트레센 내부에서, 이만큼 재미있는 상황이 벌어지는 모습은 돈을 주고서라도 볼만한 것이다.



 사람 일이라는 게 다 그런 것이다. 나만 아니면 돼.



 그런데 그라스 원더네 선배, 살아는 있는 거 맞지?



 “어딜 보고 계신 건가요? 여기를 보셔야죠, 트레이너 씨.”



 “에이신? 분명 지금 스케줄대로라면 자고 있어야 할 시간 아니니?”



 “트레이너 씨를 배웅하는 것도 담당 우마무스메의 스케줄이니까요.”



 “아니, 그럴 리가 없잖아.”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담당 우마무스메인 에이신 플래시와는 어제 한바탕 투닥였기 때문에, 학생회 쪽 트레이너들처럼 생명의 위협을 느낄 이유도, 다이와 스칼렛네 트레이너처럼 무릎 꿇고 싹싹 빌 이유도 없었다.



 어제 에이신 플래시가 문을 박차고 나간 걸 잡지 않은 것을 섭섭해하면 어쩌나 싶었지만, 그래도 하루 지나서 많이 진정된 것인지,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솔직히 따라가겠다고 난리 칠 줄 알았는데, 뭐라 뭐라 해도 고등부는 고등부다. 생각과 감정을 정리하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 또한 어른스러움인 것이다.



 “아무튼, 잘 다녀오세요. 아무 일 없이 무사히 다녀오시리라 믿어요.”



 “어? 어어…그래. 조심히 갔다 올게.”



 “암컷…아니, 여자 만나지 마시고요.”



 “안 만나.”



 의심의 눈초리는 여전히 거두지 않은 것 같지만, 그래도 떼를 쓰거나 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원만하게 다녀올 수 있는 부분이리라.



 “그리고 다녀오시면, 아시죠?”



 “뭘?”



 “벌충이에요.”



 “…….”



 에이신 플래시의 눈빛이 분홍색으로 날카롭게 빛났다. 뾰이 직전의 눈빛이다. 지금 순순히 놔주는 것은, 미래에 죽이겠다는 뜻이기도 한 것이다.



 물론 정말 죽이진 않겠지만, 죽기 전까지 쥐어 짜일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누가 쓸모도 없는 쥐어짜기 스킬 같은 걸 알려준 건지, 정말로.



 “이, 이이, 일단 갔다 올게.”



 “잘 다녀오세요. 가서도 스태미너 요리 많이 챙겨 드세요♡”



 “…….”



 누가 좀 살려주세요.




*  *  *  *  *  *  *  *  *  *




 말은 그렇게 했지만, 트레이너 씨 없는 일주일을 보내야 한다는 사실에 눈앞이 깜깜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비단 에이신 플래시뿐만이 아니라 트레이너들이 떠나버린 주차장에 남아 있는 다른 우마무스메들, 그러니까 다이와 스칼렛, 에어 그루브, 나리타 브라이언도, 그리고 골드 시티와 세이운 스카이, 라이스 샤워까지. 전부 에이신 플래시와 같은 기분이리라.



 다만, 그라스 원더만큼은 이상하리만치 침착하고 담담한 표정이었다. 히토미미 트레이너들은 그 이유를 모르겠지만, 우마무스메들은 다 안다.



 그녀의 담당 트레이너에게서 강하게 풍겨오는 그라스 원더의 체취가 아직도 코를 찌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만큼 체취가 밸 만큼 마킹해 두었다면, 아마 어디를 나가던 일주일, 혹은 그 이상도 우마무스메건 히토미미건 여성이라면 들러붙지도 못할 것이다.



 우마무스메라면 저 강력한 체취 때문에, 히토미미라면 우마무스메의 짙은 향기를 피부와 본능으로 느낄 수 있기에.



 물론 그런 그라스 원더까지 포함하여 여덟 우마무스메의 공통된 걱정거리가 하나 있었다. 아마 지금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거라 에이신 플래시는 장담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각자의 트레이너에게서 얻을 수 있는 편안하고 안락하면서도 조금 흥분이 되는, 그런 미약 같은 트레이너 향을 어디서 섭취할 수 있단 말인가.



 “…….”



 “…….”



 우마무스메들은 서로를 마주 보았다. 서로 느끼는 기분과 감정이 거의 완전히 같은, 정말로 희귀한 경험을 실시간으로 하고 있기에 알 수 있었다.



 답은, 트레이너 기숙사다.



 그녀들은 각자의 담당 트레이너의 방을 올려다보며 입맛을 다셨다.




 *  *  *  *  *  *  *  *  *  *




 처음 3일간은 별다른 것 없이 생활했다.



 매일 대면하던 담당 트레이너가 곁에 없다는 사실은 에이신 플래시뿐만 아니라 다른 우마무스메들 또한 익숙하지 않았는지, 평소보다 조금 기분이 가라앉아 있는 것 정도가 전부였다.



 그래도 주어진 트레이닝 스케줄은 정상적으로 소화하고 수업도 착실하게 듣는 둥, 그 누구도 문제를 일으키진 않았다.



 물론 해외 출장 간 담당 트레이너들이 다른 히토미미 암컷이나 우마무스메에게 개같이 뾰이당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것은 어쩔 수 없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런 것 치곤 하루에 세 번 영상통화를 하는 것 이외에는 특별하게 뭔가 하는 것은 없었다.



 그래서, 연수 중인 담당 트레이너들 또한 큰 문제 없이 흘러가겠거니, 하며 안심하고 연수를 받고 있었다.



 하지만 4일 차에 들어서자, 우마무스메들의 상태가 조금씩 이상해지는 것을, 다른 트레이너들과 동료 우마무스메들은 느낄 수 있었다.



 에이신 플래시는 그나마 괜찮은 편이었다. 뭐니 뭐니 해도 담당 트레이너와 깊은 관계이지 않은가. 다른 우마무스메들은 일방적으로 들이대는 관계라면, 이쪽은 명백하게 공식적인(아니다) 연인 관계다.



 그러니까, 에이신 플래시의 일상 곳곳에 담당 트레이너의 흔적과 체취가 남아 있으니, 조금 더 버틸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우마무스메들, 그나마 담당 트레이너와 항상 붙어 다니던 라이스 샤워와 그라스 원더…를 제외하면 조금씩 정신적으로 망가져 가는 느낌이었다.



 다이와 스칼렛은 평소에 한 번도 하지 않던, 손톱을 물어뜯고 잘근잘근 씹는 행동을 보였고,



 에어 그루브는 학생회 회의에 지각하여 심볼리 루돌프가 그녀의 컨디션을 심각하게 걱정하였으며,



 마찬가지로 나리타 브라이언은 절대 입에도 대지 않던 야채―양파―를 자기도 모르게 먹어버려 옆에 있던 비와 하야히데가 기겁하였고,



 세이운 스카이는 뭔가에 홀린 듯이 트레이닝을 굉장히 성실하게 이행하여 니시노 플라워가 당혹해하였으며,



 골드 시티는 담당 트레이너와의 영상통화에서 그녀답지 않게 애교를 부리는 모습이 토센 조던에게 목격되어 골드 시티 본인이 맞는지 진위 확인을 거쳤다고 한다.



 그래도, 아직 그 정도면 문제는 없는 수준이었다. 뭐 중앙 트레센의 기물을 파손하고 다닌 것도 아니고, 학생들에게 위해를 끼친 것도 아니고, 다른 트레이너들을 방해한 것도 아니며, 뭔가 외부나 매스컴에 알려지면 안 될 일을 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5일 차가 되자, 그 정도가 점점 심해지기 시작했다.



 다이와 스칼렛은 수업 중에도 손톱을 딱딱거리며 물어뜯어 보드카에게 한 소리 들었고,



 에어 그루브는 하라는 학생회 일은 안 하고 갑자기 학생회실 청소를 해 버려서 학생회장 심볼리 루돌프에게 마찬가지로 한 소리 들었으며,



 나리타 브라이언은 양파에 이어 버섯까지 먹어버려 비와 하야히데가 병원으로 끌고 가려는 소동이 있었고,



 세이운 스카이는 그녀답지 않게 트레이닝과 더불어 수업까지 성실하게 참여하여 아그네스 타키온의 생체 실험 욕구를 자극하였으며,



 골드 시티는 토센 조던의 입막음을 하기 위해 그녀를 ‘교육’하려다 실패하여 친한 친구로부터 두려움의 시선을 한동안 받아야만 했다.



 게다가 4일간 큰 문제 없었던 라이스 샤워는 단검을 꼭 쥔 채로 ‘찌른…따라간다…따라간다…오라버니를, 찌른…따라간다’라는 문구를 귀신 들린 것처럼 반복적으로 중얼거리다가 미호노 부르봉의 트레이너에게 발견되었으며,



 그라스 원더는 귀기 서린 얼굴로 나기나타의 칼을 삭삭 갈아대는 바람에 엘 콘도르 파사가 공포에 질린 얼굴로 사감실에서 숙박하기를 청했으며,



 에이신 플래시는―



 “읏…트레이너 씨…하읏…트레이너 씨…!”



 근 몇 달간 스스로 한 적 없는 욕구의 해소를 어떻게든 혼자 처리하기에 이르렀다.



 솔직히 5일쯤 되니까 슬슬 참을 수가 없어진다. 자신에게 남아 있는 트레이너 씨의 향기, 체취, 그런 흔적들도 이젠 제법 희미해져 갔다. 더 이상 편안함을 느낄 정도의 농도가 아니게 되어버린 것이다.



 그 상실감에서 찾아온 것은, 거대한 불안감과 더불어…욕구였다.



 영상통화로 트레이너 씨를 매일 3번 이상은 보기 때문에 어느 정도 버티고 있는 것이지, 까놓고 그것만으로는 부족할 지경이다.



 그의 온기, 체취, 목소리, 당근과 당근 주스 등등…아무튼 많은 것이 더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은 비단 에이신 플래시뿐만은 아니리라.



 그녀들의 담당 트레이너들이 연수에서 귀국하기 하루 전, 이미 그녀들은 이성을 잃기 직전이었다.



 그런 망가져버릴 것만 같은 얇디얇은 이성 속에서도 모두가 공통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고, 하야카와 타즈나는 그녀들의 욕구를 정확하게 꿰뚫고 있었다.



 학생회의 허가 하에 이미 그것을 소지하고 있는 에이신 플래시와 그라스 원더를 제외한 나머지 여섯 우마무스메들에게, 담당 트레이너의 기숙사 방 열쇠가 지급되었고, 그녀들은 거의 동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빠르게 자신의 담당 트레이너의 기숙사 방으로 달려갔다.



 그 속도는 뭇 레이스에서의 라스트 스퍼트만큼이나 빨랐고, 강력했으며, 열정적이었다.



 에이신 플래시는, 담당 트레이너 기숙사 방의 현관문을 열었다. 익숙한 공간에 감미로운 향기가 우마무스메의 예민하고 감각적인 후각을 자극한다.



 며칠 전에 비하면 여기도 꽤 옅어져 있었지만, 그래도 다른 곳보다는 훨씬, 월등하게 낫다.



 “하아…후우, 쓰읍…후우…하아, 후…상쾌하네요.”



 트레이너 씨의 짙은 향기를 조금이라도 놓치기 아깝다는 듯, 에이신 플래시는 방 안의 공기를 허파 한가득 들이마시기에 여념이 없었다.



 “후후…트레이너 씨가 사용하시는 물컵, 트레이너 씨의 옷, 트레이너 씨의 속옷, 후후…흐헤헤…히힛.”



 무슨 □□이라도 한 대 빤 것 같은 얼굴이었지만 본인은 그것을 모를 것이다. 뭐, 이성의 페로몬은 어떤 의미에서는 □□일 수도 있으니, 아예 틀린 말은 아니리라.



 그러다가 문득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생각에, 에이신 플래시는 곧바로 화장실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가끔 신경 쓰였지만 그래도 마지막 이성으로 억누르고 있던 욕망을 향해 손을 뻗었다.



 “이게 트레이너 씨가 사용하시는…칫솔.”



 해롱해롱 풀려버린 얼굴로 그것을 입 안에 넣었다.



 “……!”



 전기가 등줄기를 타고 찌르르 올라오는 것만 같았다. 온몸의 근육에 힘이 풀리는 것 같아, 자기도 모르게 에이신 플래시는 화장실 바닥에 주저앉아버렸다.



 “하아…후우…이거, 이거 너무…자극이, 읏…!”



 혀를 움직여 트레이너 씨의 칫솔을 톡톡 건드린다. 그때마다 형언할 수 없는 쾌감이 에이신 플래시를 덮쳐왔다. 가까스로 일어나보니, 정면의 거울에 자기 모습이 비친다.



 “아, 아아―.”



 레이스에서 언제나 당당하게 잔디를 주파하던, 흑발의 늠름한 에이신 플래시가 아니었다. 거울 안에 있는 것은 한 마리의 우마무스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6일이나 자리를 비운 트레이너 씨 잘못이니까요, 트레이너 씨가 나쁜 거니까요, 그렇게 중얼거리며 칫솔을 문 채로 화장실을 나왔다.



 그리고, 뭔가에 홀린 듯이 흐느적거리며 천천히 트레이너 씨의…침대로 다가갔다.



 “…….”



 꿀꺽, 트레이너 씨의 칫솔에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그의 유전자와 자기 침을 목으로 삼키며, 에이신 플래시는 각오를 다졌다.



 몇 번이고 트레이너 씨와 함께 사용해 본 침대이지만, 오늘은 뭔가 달랐다. 역치값이 낮아졌다고 해야 할까, 평소보다 트레이너 씨의 체취가 약하게 남아 있었지만, 지금은 그것만 해도 충분하다 못해 넘칠 것만 같았다.



 그래서, 옷이 구겨진다는 생각 따위는 어디 구석으로 치워버린 채, 그대로 트레이너 씨의 침대에 다이빙했다.



 “……?!”



 이불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향기에, 에이신 플래시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이불을 몸에 뒤집어쓰고, 그 안에서 칫솔을 우물우물 맛본다.



 “트레이너 씨…트레이너 씨이…언제 오시는 거예요, 히이잉….”



 고작 하루밖에 안 남았건만, 평소의 늠름한 모습 따위는 역시 어딘가로 던져버리고, 주인을 기다리는 강아지마냥 끙끙 소리를 내며 칭얼거리기 시작했다.



 슈퍼 크릭이 보았다면 우쭈쭈하며 딸랑이를 흔들었을 법한 모습이었지만, 다행히 여기에는 에이신 플래시를 제외하면 그 누구도 없다. 완전한 프라이빗 룸인 것이다.



 그래서, 에이신 플래시의 정신력 회복을 위한 해피 타임이 반나절이나 이어지는 것을,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었으며, 이는 트레이너 씨의 방에서 나온 에이신 플래시가 마주친 다른 우마무스메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다이와 스칼렛은 빨갛게 물든 얼굴을 누구에게도 보여주기 싫다는 듯, 다홍색 에이스다운 면모로 에이신 플래시에게서 도주했고,



 에어 그루브는 태연한 척 ‘얼간이가 없는 동안 방 청소라도 해 줬을 뿐이다’라고 말은 했지만, 몸에서 풍겨오는 옅은 땀 냄새를 우마무스메의 후각이 놓칠 리 없었으며,



 나리타 브라이언은 에이신 플래시를 힐끗 보더니, 그녀답지 않게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흥, 하고 코웃음을 한번 치며 담담한 척, 빠른 걸음으로 도망갔고,



 세이운 스카이는 한결 개운한 표정으로 ‘상쾌하네요~’라며 평소처럼 능글맞게 말했지만, 그 웃음이 딱딱하게 경직되어 있다는 사실을 에이신 플래시는 눈치챌 수 있었다.



 그리고 라이스 샤워는 ‘라이스는 나쁜 아이야…라이스는 나쁜 아이, 라이스는 나쁜 아이, 라이스는 나쁜 아이, 라이스는 나쁜 아이, 나쁜 아이, 나쁜 아이…’라며 고개를 푹 숙인 채 나쁜 아이라는 말을 반복하며 종종걸음으로 트레이너 기숙사를 빠져나갔고,



 골드 시티는, 그녀의 담당 트레이너의 방에 들어갈 때와 나올 때의 옷이 달랐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저 와이셔츠는…남성용이란 말이지.



 그리고 그라스 원더는, 놀라우리만치 차분하게 들어갔다가 마찬가지로 놀라우리만치 차분하게 방을 나왔다. 그래도 연신 발갛게 물든 뺨에 손을 대며 우후후, 후후, 후후후, 하고 웃는 것을 보아하니, 뭔가 기분 좋은 일이 있었다고 에이신 플래시는 확신할 수 있었다.



 다만 에이신 플래시가 간과한 것이 있다면, 그녀가 당당하게 들어가 당당하게 나왔다고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에이신 플래시 또한 얼굴의 홍조와 땀을 숨길 수 없었던 것뿐만이 아니라,



 “입에 우물거리는 그거 뭐야?”



 “헤? 이헤…하, 햐앗?!”



 기숙사로 돌아온 뒤, 룸메이트인 스마트 팔코에게 지적받기까지 담당 트레이너 씨의 칫솔을 입에 물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을 정도였다.



 아무튼, 하루 남았다. 24시간도 채 남지 않았다. 에이신 플래시를 비롯한 여덟 우마무스메들은 나카야마의 짧은 직선을 전력 질주하는 느낌으로 하루를 버티자, 그렇게 마음먹었다.




*  *  *  *  *  *  *  *  *  *




 중앙 트레센의 정문이 보이자, 트레이너들은 저마다의 각오를 다졌다.



 해외 연수는 분명 새로운 경험이었고, 여기보다 조금 더 선진적인 지식을 공부하며, 트레이너의 업무와 레이스에 대해서 더 많이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것은 에이신 플레시의 담당 트레이너뿐만이 아니라, 연수팀 리더인 그라스 원더 담당 트레이너를 비롯한 다른 트레이너들 또한 마찬가지였으리라.



 다이와 스칼렛의 담당 트레이너는, 그곳에서 새롭게 배운 지식을 빨리 적용해 보고 싶다고 방방 뛸 정도였으며, 골드 시티의 담당 트레이너는 자기 담당 우마무스메의 정신적인 부분을 더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에 대해 다른 트레이너들과 열띤 토론을 펼쳤다.



 그렇게 트레이너마다 각자의 새로운 이론과 약간의 확신을 가진 채 돌아오는, 그런 기쁜 귀성길이었지만…중앙 트레센의 정문을 통과할 때쯤 되자, 하나같이 낯빛이 어두워졌다.



 그도 그럴 것이, 여덟 명 전부, 그들의 담당 우마무스메에게 원격으로 시달려야 했기 때문이고, 이제는 원격이 아니라 직접, 대면하여 물리적으로 시달릴 것이 자명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였을까, 차 안에서 그 누구도 한마디 말조차 꺼내지 않았다. 그저 숨소리와 라이스 샤워 담당 트레이너의 코를 훌쩍이는 소리 정도만이 승합차 안에 들릴 뿐이었다.



 어느덧 차는 트레이너 기숙사의 주차장까지 당도했고, 기사가 ‘다 왔습니다, 고생하셨어요.’라며 문을 열었지만, 누구도 먼저 내리려 하지 않았다.



 그야 당연하다. 주차장에서 기숙사로 올라가는 로비에서부터 여덟 명의 우마무스메들이 하나같이 누가 봐도 흥분한 얼굴을 하고 일렬횡대로 걸어오고 있는 것이 보이는데, 먼저 내릴 담력을 가진 사람은 없는 것이다.



 그런 분위기를 견딜 수 없었는지, 모 아니면 도라고 생각이라도 했는지, 에어 그루브의 트레이너와 나리타 브라이언의 트레이너는 서로 눈을 마주치더니 고개를 한번 끄덕였다. 그리고 각오를 굳힌 표정으로 차량에서 내렸다.



 에어 그루브의 나리타 브라이언의 눈이 반짝였고, 그런 담당 우마무스메들에게 두 트레이너는, 자신이 들고 있던 캐리어를…던져버렸다.



 “큭, 갑자기 무슨…?!”



 “크윽, 이게 뭐 하는……아앗!”



 두 우마무스메가 반사적으로 짐을 받아드는 사이, 두 트레이너는 한마디 말도 하지 않은 채 전속력으로 도망쳤다. 아마 그들이 달려가는 곳은, 학생회실이리라. 그곳에는 심볼리 루돌프가 업무를 보고 있을 것이다. 설마 회장 앞에서 뭘 하려 들진 않겠지, 그런 판단이었다.



 올바른 판단이다. 에어 그루브도, 나리타 브라이언도, 그녀들의 담당 트레이너들이 어디로 가는지 눈치챘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내 히죽, 입꼬리를 올리며 짐을 대충 던져버리곤 천천히 그들의 뒤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그래, 올바른 판단인 것은 맞다. 일주일 전이었다면.



 하지만 트레이너들이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다.



 오늘, 심볼리 루돌프는 집안에 중요한 일이 있어 학원에 나오지 않는다. 심볼리 루돌프의 담당 트레이너가 맞선을 보는 날이라는 사실은 우연의 일치일 것이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자면…학생회실로 달려가 봐야, 아무도 없다.



 막다른 길에 몰린 토끼를 어떻게 요리해줄까 생각하며, 느긋하고 편안한 발걸음으로 맹수들은 움직였다.



 “우리도 저럴 걸 그랬어.”



 그라스 원더의 담당 트레이너가 작게 투덜거렸다. 다들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마찬가지로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다들 알고 있다.



 “두 번은 안 통할걸요.”



 다이와 스칼렛의 트레이너가 그 사실을 입 밖으로 꺼냈다. 그의 담당 우마무스메는 분명 중등부임에도 불구하고, 어지간한 성인 히토미미는 따위로 만드는 색기를 풍기며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입술을 할짝대며 눈을 게슴츠레 뜨는 것이, 이거 오늘 뭔가 사고 하나 칠 생각으로 가득 찬 것만 같았다.



 그런 담당 우마무스메의 시선에, 담당 트레이너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잡히면 죽…지는 않겠지만 죽을 때까지 어울려야 한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다행인 것은, 차량의 창문에는 코팅이 되어 있기에, 아무리 우마무스메라도 저 거리에서 여기 안쪽까지 보일 리는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조용히 차량의 뒷부분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짐은 그대로 남겨둔 채, 반대편 창문을 열어 최대한 조용히 탈출을 감행했다.



 그 모습을 본 골드 시티의 트레이너 또한 자신의 짐을 차에 두고, 그를 따라 반대편 창문을 통해 차를 빠져나갔다.



 여기라면 차에 가려져서 담당 우마무스메의 시선을 피할 수 있다. 일단 달려서 주차장 밖으로 나가면 담당 우마무스메의 시야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러면 다른 건물로 들어가서 숨거나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두 명은 냅다 달렸다. 이사장이 그 모습을 보았더라면, ‘합격! 자네들도 레이스에 출주할 수 있도록 하겠네!’라고 말했을 법한 달리기였다.



 “트레이너? 어딜 그리 급하게 가는 걸까아?”



 “하아…내가 그렇게도 싫었어? 어쩔 수 없네. 좋아질 때까지 함께할게.”



 하지만 주차장의 입구를 빠져나가기 전, 어느새 달려온 담당 우마무스메들에게 목덜미가 붙잡히고야 말았다.



 그라스 원더 담당 트레이너는 그 모습에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가장 기본적인 것을 잊어버린 대가다.



 다른 건 다 그렇다 치자, 창문으로 빠져나가면서 소리가 나지 않았으리라 생각했다면 바보다. 그리고 그 소리를 들은 담당 우마무스메라면 주차장을 빠져나가 몸을 숨기기 전에 그들을 낚아챌 수 있는 주력이 있다는 것을 고려했어야만 한다.



 그는 담당 우마무스메, 그라스 원더에게 한두 번 당해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저런 말도 안 되는 일을 감행할 정도로 어리석지 않은…노련한 트레이너다.



 일련의 사태를 본 라이스 샤워의 트레이너는, 각오를 굳힌 채로 짐을 전부 들고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별것 아니라는 듯이 그의 담당 우마무스메, 라이스 샤워 쪽으로 걸어갔다.



 솔직히 미친 건가? 라고 다른 트레이너들은 생각했다. 아무리 라이스 샤워가 조그맣고 귀여우면서도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우마무스메라지만, 그래도 라이스 샤워는 고등부다. 알 거 다 아는 나이고, 의외로 약삭빠른 면이 있다.



 담당 트레이너 본인은 모르겠지만 제삼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라이스 샤워는 자신의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성격 또한 하나의 어필 포인트로 담당 트레이너에게 달라붙는 경향이 있다.



 그러니까 잘못하면 저 녀석, 잡아먹힐 텐데.



 하지만 라이스 샤워 앞에 당도한 트레이너는, 이내 달려드는 라이스 샤워를 부드럽게 안아주며 등을 토닥였다.



 “나 없는 동안 별일 없었지?”



 “헤, 헤헤…오라버니, 오라버니…보고 싶었어.”



 “그래그래. 나도 보고 싶었어, 라이스.”



 “후에에~오라버니의 품, 따뜻해…기분 좋아.”



 라이스 샤워가 격렬하게 그의 가슴에 얼굴을 비비자, 그는 조금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으나, 이내 피식 웃으며 라이스 샤워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이쿠, 옷 찢어질라. 할 이야기가 많을 테니까, 어디 달콤한 음료수라도 마시러 갈까?”



 “응. 오라버니랑 가는 거라면 어디든 좋아.”



 “라이스……!”



 기특한 말을 하는 담당 우마무스메를 보고 있자니 알 수 없는 감정이 복받쳐 올랐다. 이게 딸 가진 아버지의 마음인가, 그는 속으로 경건하게 웃으며 라이스 샤워의 손을 잡고 주차장을 걸어 나갔다.



 물론 그의 속마음을 라이스 샤워가 알았더라면, ‘라이스는 오라버니 딸이 아니야. 지금부터 오라버니의 몸에 그 사실을 새겨줄게.’라고 말하며 우마뾰이 전설을 노래했으리라.



 이런 일련의 과정을 본 세이운 스카이의 트레이너는, 왠지 모르게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솟구쳤다. 그래, 세이운 스카이는 스마트 팔코와 더불어 중앙 트레센 최고의 연애 허접이잖아?



 그래서 그는 자기 짐을 들고 친구가 그랬던 것처럼 당당하게 차에서 내려 담당 우마무스메에게 다가갔다.



 “나 없는 동안 땡땡이치진 않았지?”



 “일주일간 못 본 담당 우마무스메에게, 첫 마디가 겨우 그거에요?”



 “……어? 어어?”



 “세이쨩, 조금 섭섭해졌어요.”



 “어라? 어, 어…?”



 이게 아닌가?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트레이너 씨는 말이에요, 조금 더 세이쨩에게 신경 써 줘야 한단 말이에요. 트레이너 씨 없는 동안 세이쨩이 얼마나 성실하게 트레이너 씨가 말한 것들을 지켰는지 아세요?”



 “어, 어어…그랬구나, 그…잘했어, 응.”



 “그럼 트레이너 씨, 세이쨩에게 상…주실 거죠?”



 “상? 어…어어, 그럼. 줘야지. 착하게 말 잘 듣고 있던 세이운 스카이에게 선물을 사 왔으니까, 일단 짐을 좀 풀어놓고 줄―”



 “그게 아니에요.”



 “……?”



 “세이쨩과 같이 낚시 가겠다고, 약속하셨잖아요~?”



 “아, 낚시. 무, 물론 기억하고 있지. 하, 하지만 오늘은 낚시하기엔 너무 늦었으니 다음 주 토요일에―”



 “아, 정말…! 당장 따라오라구요, 둔탱이 트레이너 씨.”



 “엑, 으엑?! 앗, 야야! 귀 잡아당기지 마! 아파! 아파아파아파!”



 “세이쨩의 마음도 찢어질 듯이 아프답니다~.”



 담당 우마무스메에게 귀를 잡힌 채 질질 끌려가는 친구를 보며, 차에 남은 트레이너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세이운 스카이는 연애 허접이다, 같은 이상한 소문이 떠도는데, 그거 가스라이팅이니까. 진짜 연애 허접은 스마트 팔코밖에 없으니까.



 하지만 세이운 스카이의 담당 트레이너를 걱정하는 것보다, 이제 몇 걸음 남지 않은 그들의 담당 우마무스메와의 거리를 걱정해야 할 때였다.



 “뭐, 별일이야 있겠어요?”



 “너는 저 녀석들 눈을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오냐? 저거 완전 포식자의 눈빛이잖아. 굶주린 맹수라고, 맹수.”



 “아, 남자가 체력이 없지 가오가 없어요? 에라 모르겠다 설마 죽이기야 하겠나.”



 “난 죽을 수도 있어.”



 “왜요, 잘못한 거 없잖아요?”



 “아니, 알잖아. 그쪽 안내하시는 분이 계단에서 넘어지는 거 받아들었던…….”



 “아.”



 우마무스메라면, 그라스 원더라면 그녀의 담당 트레이너 가슴께에 남아 있는 아주 미약한 히토미미의 냄새까지도 파악할 수 있으리라. 그리고 이 선배가 설명을 열심히 한다 한들, 그라스 원더에게는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을 것이다.



 결국,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도망쳐야 하겠지만…그라스 원더에게서 도망치려 했다간 나기나타의 칼날이건 트레이너 씨 배를 가르세요, 라던가, 아무튼 뭔가 하나는 당할 수 있다.



 하지만 뭐, 결국 평소 행실에서 기인한 자업자득 아닐까? 속으로 중얼거리며 에이신 플래시의 담당 트레이너는 자신의 짐을 부랴부랴 챙겨 차량 밖으로 내려갔다. 뒤에서 배신자를 보는 듯한 시선이 느껴졌지만 애써 모른 척했다. 거기 끝까지 남아 있다간 진짜 죽을 수도 있어요, 형.



 차에서 내리자, 어느새 담당 우마무스메가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눈이 좀 위험하고 얼굴이 발갛게 상기된 것이, 이미 머릿속에는 뾰이가 가득하리라 싶었다.



 그런 트레이너 씨의 옆으로 그라스 원더가 스치듯 지나갔고, 몇 초 지나지 않아 그라스 원더가 차량 내부로 들어갔다. 명복을 빈다.



 “트으레에이이너어 씨이이이~.”



 흐느적거리며 이쪽으로 팔을 뻗는 에이신 플래시를, 그대로 끌어당겨 살짝 끌어안았다. 탄탄하고 풍만한 에이신 플래시의 온기가 느껴졌고, 그제야 중앙 트레센으로 돌아왔다는 기분이 들었다.



 “다녀왔어, 에이신.”



 “어서 오세요, 트레이너 씨.”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쓰읍하아 숨을 내쉬는 것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말아야겠다 그는 생각했다.



 “기억하고 계시죠, 벌충? 스태미너 요리는 많이 챙겨 드셨나요?”



 “어…하하, 그렇지. 기억하고 있어. 하하, 하…하하.”



 “그러면 지금 당장―”



 “그, 그래도 오늘은 조금만 있으면 해 떨어지기도 하고, 피곤하기도 하고, 짐 정리도 해야 하니까…들어가서 쉬면 안 될까?”



 그 말에 에이신 플래시의 귀가 살짝 흔들렸다. 하얀색 레이스가 달린 귀장식이 어쩐지 붉은 느낌이 들었다. 에이신 플래시의 팔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요, 트레이너 씨도 피곤하실 테니, ‘오늘’은 봐 드릴게요.”



 “어? 으응…….”



 에이신 플래시가 이렇게 순순히 넘어갈 우마무스메가 아닌데, 라는 생각을 하던 찰나, 담당 우마무스메의 입에서 무시무시한 소리가 튀어나왔다.



 “저 오늘 외박계 냈으니까요, 각오하세요♪”



 “오, 오늘은 봐준다며?”



 “자정 넘어가면 ‘오늘’이 아니니까요. 그전까진 실컷, 괴롭혀 드릴게요. 에잇♡”



 “야, 야야야, 에이신 플래시이이이이!?”



 짐과 함께 몸이 번쩍 들리더니, 어느새 에이신 플래시에게 들쳐메어져 있었다. 사지를 바둥거려보지만, 한낱 히토미미가 우마무스메의 힘을 이길 수 있을 리 없다.



 뒤에서는 그라스 원더의 목소리와 그녀의 담당 트레이너 형의 머리 박는 소리가 들려온다. 다른 암컷 냄새가 왜 나느냐는 물음에 머리를 박는 것이리라. 자업자득, 업보다.



 하지만 남 걱정할 때가 아니다. 에이신 플래시의 광기를 온몸으로 받아들여야 할 시간이 머지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혹시나, 정말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붙잡혀 가는 와중에 에이신 플래시의 귀에 속삭이듯 물어보았다.



 “저기, 에이신.”



 “네?”



 “그…혹시 한 번만으로 어떻게 안 될까?”



 “지금부터 24시간 내내 하기 싫으시면 조용히 하세요♪”



 “어흑…그렇겠죠.”



 에이신 플래시의 단호한 말투에 그는 저항을 포기했다.



 구원은 없는 것이다.




*  *  *  *  *  *  *  *  *  *




 일련의 상황들을 지켜보던 다이이치 루비는 아주 작게 하아, 한숨을 내쉬었다.



 (서민들의 천박한 행동에 놀라는 나.)



 명문이라는 중앙 트레센의 풍기가 왜 이리도 망가졌는가.



 (참을성 없는 서민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나.)



 한 번도 그녀의 담당 트레이너와 떨어져 본 적이 없는 다이이치 루비이기 때문에, 트레이너의 부재라는 것을 알 리 없었다.



 (애초에 트레이너 씨가 일주일이나 부재할 리 없다고 생각하는 나.)



 하지만 그녀는 아직 모른다.



 그녀의 담당 트레이너가 당장 내일부터 일주일간 고향으로 출장 간다는 사실을.



 (내일은 트레이너 씨와 다이이치 저택에 가볼까 하는 나.)



 오늘도 중앙 트레센은 평화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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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녀왔어 어서오세요는 순애에요


 반박 시 디지땅도 경멸함.


 아무튼 순애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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