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후 남북한에 남은 일본인들은
모두 해외로의 이동이 금지되었고
조선 내에서의 입지가 완전히 추락하였음
항복 직전에 조선총독부 등
일본의 패망 사실을 철저히 숨겼고
이 때문에 일부 고위층을 제외하면
일본인들은 탈출할 기회도 없이 조선에서 소련/미국에 억류되었음
당시 일본인들은 국가 차원에서 특수한 지위에 있었는데
패전국의 국민이며 복수해야 할 식민제국의 첨병이지만
국가 경영을 위한 필수적인 지식을 갖춘 전문인력이라는 이중적 지위였음
그래서 소련과 미국은 서로 이들에 대해 다른 대응을 했는데
소련군은 진주 이후~소련군정 성립 이전에는
인민재판을 통해서 식민부역 일본인을 단죄하고
재산을 몰수하고 수용소에 가두거나
조선인에게 찾아가 도게자하도록 조리돌림을 하거나
아예 굴라크로 끌고가는 등의 대응을 했고
반면 미군은 진주 이전
군정을 빠르게 설치하기 위해 지역이 안정화되어 있어야 한다고 보고 일본군에 의한 최소한의 통제를 인정하였음
따라서 일본인에 대해 무차별적인 재판 등은 이루어지기 어려웠고
(물론 그렇다고 일본인들이 여전히 떵떵거리지는 않았고, 조선인들이 자경단을 만들면서 일본인의 입지는 조선인 아래로 완전히 꼬라박게 됨)향후 미군 진주 이후에 처분이 되도록 했기 때문에
그새 고위층 일본인의 경우에는
큰 돈을 찔러주는 한이 있더라도
밀항선으로 많이 조선에서 탈출도 할 수 있었다고 함
이처럼 남북한 지역에서
일본인은 처음부터 대우가 많이 달랐는데
군정이 성립된 이후에는 소련도 미국처럼
수용소의 일본인이나 반민족행위자 중
전향하고자 하는 자가 있다면 등용해야 한다는 측으로 돌아섰다고 함
이건 일제가 조선인을 철저히
고위직/기술직에서 배제하면서
조선인이 직접 조선을 통치하는 데 현실적으로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라고 함
그래서 일본인에 대한 대응이 많이 유해졌다고 하고
재산만 빼앗은 채 희망자에 한해
본토로 송환시키는 대응에 합의했다고 함
물론 돈만 뺏는다는 쪽으로 수렴진화했다고 해서
그 강도까지 똑같지는 않았음
남한은 어느 정도 인도적인 선을 정해
그 선까지 가지고 조선에서 떠나는 것을 허가하였고
(물론 어떻게든 돈을 더 가져가려던 밀항선도 많았다고 함)
무엇보다 일본인 전원을 본토로 송환시켰지만
인적/물적 인프라가 부족했던 소련의 영향으로
북한은 돌려보낼 때 무조건 홀홀단신으로
거의 알거지 상태로 돌려보냈고
돌아가지 않겠다 선택한 사람이나
혹은 실제로 돌아가겠다고 하는 사람조차도
조선인 고위층이 숙련될 때까지 교육에 종사하게 하다가
소련 굴라크 같은 곳으로 보내버리는 경우가 많았다고 함
솔직히 나 같아도 모든 걸 바쳐서라도 남한으로 도망치고 싶긴 할듯 ㅋㅋ
댓글(3)
돌려보낼게 아니라 싸그리 조졌어야 했는데
수십년간 식민지배가 이루어진 국가는 세대단위로 식민지배 상황에 적응하도록 사회구조가 바뀌기 때문에 역으로 한순간에 배제하는것도 "국가기능 유지 할 생각이면" 불가능하지.
도구와 수단으로써 철저히 이용되고 편하게 버려지는 존재들이였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