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서 나온 얘기임
바이럴이라고 얘기하지 마라
문제 생기면?소주깐다
첫 책이 나온 뒤 독자와 만나는 자리에서 “자존감이 낮아서 힘들어요”라는 말로 자신의 이야기를 꺼낸 분이 있었다. 그는 자신을 도저히 사랑할 수가 없었는데 어떤 책에서 “자신을 사랑하면 행복해질 것이다”라는 이야기를 읽었다고 했다. 그래서 아침마다 거울을 보고 스스로를 안아주며 ‘난 괜찮다,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다’라고 이야기했으나 그럴수록 더욱 더 자신이 미워지고 거부감이 들어서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날 그 자리에서 나는 “자존감이란 이런저런 이유로 ‘나도 이만하면 괜찮아’라고 애써 납득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스스로를 안아주고 이해해주기가, 사랑하기가 버거울 때가 있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이라고 답했다. 그는 울었고 나는 화가 났다. 힘든 이들을 위로하기 위한 ‘자존감’이라는 단어가 오히려 그들을 더욱 힘들게 한 것 같았다.
완벽하지 않은 삶을 완벽하지 않은 우리가 시행착오를 반복하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스스로를 긍정할 수 있는 확률은, 그 사람이 단 한 번의 실패나 실연, 상처를 경험하지 않을 확률만큼이나 희박하다. 그런데 왜 세상은 그에게 매 순간마다 스스로를 사랑해야 한다고 이야기했을까. 언제부터 ‘자존감’이 그토록 불가능에 가까운 작업을 해낸 사람의 특권이 되었을까.
부처는 ‘지금 여기’에 깨어 있으라 했고, 프로이트는 ‘여기 지금(here and now)’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들의 ‘지금 여기’는 지금 여기에 집중하면 나는 늘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 되고 행복해진다는 의미가 아니다. 내 감정과 생각을 좋고 나쁨의 구분 없이 있는 그대로 느껴보자는 이야기다. 내가 괜찮은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한 평가를 반복해 ‘좋은 나, 긍정적인 나’라는 인위적인 상태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지금 내가 하는 생각과 느낌을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다. ‘초연해지기 힘들다면 적어도 힘듦이 존재한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미워하지는 말라.’ 그것이 그들이 말하는 지금 여기에 깨어 있는 마음이다.
- <내가 나인 게 싫을 때 읽는 책> (이두형 지음)
마셔
어려운 이야기네요 당장 현재에 살라고 하는데 현재에 참고 누르고 그건 결국 언젠가가 되면 터져 나오는걸요
자존감은 내가 대단하고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내가 어떤 모습이든 나를 존중하는 능력임. 아무리 강렬한 똥볼을 찼어도 '갠춘함ㅇㅇ 안 죽었으니 또 하면 그만이지!" 하고 그냥 받아들이는 거지. 자존감이 낮아서 그렇게 생각하는 게 잘 안 된다고? 갠차늠. 님은 안 죽었으니 지금 안 되어도 다음에 잘 하면 됨.
상담사 유게이인데 자존감으로 스트레스 받는 내담자한테 보여드리고 싶네... 좋아할 것 같다
인생을 이러이러한게 행복한거다 라는 기준을 맞춰두고 거기에 본인을 끼워맞추려고 하면 불행해진다는 소리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