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치(당나라 고종을 말함.)가 물었다.
"수나라 개황(수문제의 연호) 연간 시기에 생산한 양식은 얼마였는가?"
고이행이 답하였다.
"당시의 양식은 중국의 모든 인구가 50년은 충분히 먹을 정도였습니다."
-자치통감-
"예로부터 천하를 얻기가 수문제때와 같이 쉬웠던 일은 여지껏 없었다."
-조익, 청나라 시대의 역사가-
정관 11년, 감찰어사 마주가 당나라 태종 이세민에게 고하기를,
"서경의 창고(수문제때 지어놓은 창고)도 국가에서 쓰는데, 지금까지도 다 쓰지 못하고 있다."고 하였다.
-정관정요-
백만대군 꾸리고 보급품 준비하고 하다보면
국가예산이 탕진되서 말라 비틀어질거라고 생각하잔아?
근데 수나라가 백만대군 꼴박하고 그 후유증으로
쿠데타 나서 당나라가 세워진후에 수나라 창고 까보니
당나라를 50년은 유지할만한 쌀과 돈이 나왔다고 함
즉 백만대군 보급 하고도 재화가 남아돌았던게
그 당시 중국 통일 왕조
댓글(21)
반대로 100만대군한테 저게 다 안 돌아가서 진거 아냐?
수나라 100만꼴박하고 얼마 뒤에 30만으로 또 꼴박하고 당으로 바뀌고도 30만 또 꼴박한 나라임 걍 인력이 미친동네
수나라는 군량부족으로 고구려에게 패배했다 (X)
수나라는 보급실패로 고구려에게 패배했다 (O)
진짜 물자가 없는거랑 보급이 실패한건 비슷해 보이면서도 다른거지...
참고로 수나라 당나라 시절의 중국 수도는 고구려에서 조온나게 서쪽에 있는 장안이었다.
중앙에서 군대 모아서 고구력 국경까지 가는데도 한반도를 남북으로 종단하는 거리를 행군해야 했지.ㅋ
그 거리를 백만대군을 모아서 갔으니 보급이 개 어려울 수 밖에...
수 양제 아버지인 수 문제가 중국사 통털어
최고 능력자이자 성군 중 하나라서.
반대로 수문제가 그만큼 명군이기도했단 소리기도해.
고구려빼면 다른건 대운하조차 납득이 가는 선택이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