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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인생.. | 20/05/29 13:05 | 추천 27

조선시대 한양 길거리 똥 사진의 진실.jpg +10

원문링크 https://www.ilbe.com/11261852065


일베에서도 많이 봤는데 한양 길거리에 널부러진 똥 사진이라면서 조선인들은 길거리에 똥을 쌀만큼 미개했지만 일본이 미개한 조선인들을 개화시켜 주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건 사실이 아니다.

저게 만약 똥사진이 맞다면 저건 사람 똥이 아니고 말과 소의 똥이다. 1980년대에 한국 시골에 가면 길거리에 똥이 많았음. 그때까지는 아직 소가 논밭 갈던 시대고 소달구지가 주요 운송 수단이었기 때문에 소나 말이 끄는 달구지로 인해 위 사진처럼 길에 똥들이 많았음. 그마저도 말과 소 엉덩이에 채를 받쳐서 집에 가져가서 퇴비로 썼었음. 이건 우리나라만 그런 게 아니라 말이 교통수단이었던 유럽 미국 다 저랬다. 참고로 유럽에서 하히힐이 생겨난 이유가 인분을 길에다가 버려서 길거리가 똥밭이라서 그랬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고.

아무리 조선이 미개해도 우마차가 다니는 한양의 대로 한복판에서 똥싸는 미친놈이 어딨겠냐? 저거 다 말과 소똥임. 덧붙여 농업이 주력 산업이었던 조선시대만 해도 인분은 농사지을 때 비료로 쓰였기 때문에 돈 주고 사고 팔았다. 옛날 시골에서도 똥오줌 다른 집 가서 싸지 말고 집에 와서 싸게 했다. 그거 다 비료니까. 그 귀한 비료를 위 사진처럼 길거리 아무 데서나 싼다고? 도시에서만 살아본 혹은 과거 농경문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사람들이 사진만 보고 조선시대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똥 쌌다고 오해를 하는데 사실이 아님.


신윤복의 단오풍정이라는 풍속화다. 조선시대는 남녀칠세부동석이란 말처럼 남녀가 유별했기 때문에 여자들 목욕하는 거 훔쳐봐야 할 만큼 이슬람처럼 여자들이 몸을 가리고 다녔다.


사극보면 많이 나오는 장옷이라는 거다.

물론 조선후기로 오면서 평민이나 천민 여성들은 젖탱이 까고다니긴 함. 왜냐면 평민이나 천민 여성들의 노동 강도는 어마무시했다. 현대 여성들은 진짜 개꿀처빠는 건데 조선시대 평민 천민 여성들은 밥 하고 빨래하고 길쌈해서 옷 만들고 농사짓고 제사지내고 등등등 진짜 하루 종일 노동에 시달렸다. 그때는 자식들 낳으면 10명씩 낳았으니까 여성들이 폐경 전까지 계속 애기들한테 젖을 물려야 했다. 애 등에 업고 다니면서 일을 해야했다는 거다. 그러다 보니까 젖을 물리려면 그냥 젖을 까고 다니면서 수시로 젖을 물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음. 그래서 조선시대 평민이나 천민 여성들 중에 유부녀만 젖을 까고 다닌 거다. 처녀는 젖 못깠다.


오히려 일본이야 말로 길에서 오줌 싸고 다녔음. 에도시대 그림인데 위 그림 실내가 아니고 길거리임. 메이지시대 때도 노상방뇨 하고다녀서 일본 정부에서 노상방뇨 못하게 교육시키고 다녔다고 함.

마지막으로 대망의 중국의 화장실 문화를 보자.

이거 지금도 베이징에 이런 화장실 많다고 함. 베이징 올림픽 때 저런 화장실들 많이 정비했다고는 하는데 아직도 베이징에 저런 화장실 많다고 함. 베이징이 이런데 다른 데는 말할 것도 없음. 지금도 이런 데 과거에는 뭐 말 할 필요도 없음. 미개 그 자체. 고려시대 고려인들이 중국놈들 더럽고 미개하다고 존나게 개무시했었음. 그래서 과거부터 중국인들 더럽다고 때놈이라고 불렀던 거임. 



4줄 요약
1.한양 길거리 똥 사진은 사람 똥이 아니고 말과 소똥임. 대로 한복판에서 똥 싼다는 자체가 말이 안되는 소리임.
2.지금으로치면 광화문 대로 한복판에서 똥 싼다는 소린데 사람들 우마차 왔다갔다 하는데 저기서 어떻게 똥을 싸냐?
3.조선시대 인분은 돈주고 사고 파는 농사 지을 때 꼭 필요한 비료였음. 똥을 싸도 참았다가 집에 와서 싸라는 게 당시 문화였음.
4.그 귀한 똥을 길에서 막 싼다고? 애비한테 개처맞을 짓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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