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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동성.. | 24/05/04 22:35 | 추천 26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서 일본으로 잡혀간 조선인들 기록 +14

원문링크 https://www.ilbe.com/11530635544



大槪五民之中。兵民最逸。商民次之。其次僧人。其次農民。而物阜民安。生利甚足。至如被擄之人。赤手而來。數年之間。?或累百金。以此人樂其生。無意還土。國中大小之役。不動民衆。皆用雇傭。而價甚優足。人皆樂赴。但築城之役。毋論兵農。竝爲調用。關白以下。各州將官供俸之物。無責出民間之弊。出入之際。無調發人馬之事。至如舍館飮食乘轎。凡百所需。皆有定價。一人一站之價。銅錢五十。一馬之價三十。一器飯直一錢。一壺酒直四錢。米貴則十錢。十手斗米。賤則十二手斗云。所謂手斗。我國之二升七合也。

 

대개 오민(五民) 가운데에 병민이 가장 편안하고 상민이 그 다음이며, 그 다음은 승인이요 그 다음은 농민인데, 물자가 풍부하고 백성이 편안하여 생리(生利)가 매우 넉넉하였다. 조선에서 사로잡혀 온 사람도 빈손으로 와서 수 년 사이에 재산이 혹 수백 금이 되니, 이 때문에 사람들이 그 생업을 즐겨하여 본국(조선)으로 돌아갈 뜻이 없었다.

나라 가운데 크고 작은 역사를 백성에게 부역시키지 않고 모두 고용(雇傭)하여 썼으며, 임금(賃金)이 또한 풍족하니 사람들이 모두 즐겨 나갔다. 다만 축성(築城)의 역사는 병민ㆍ농민을 막론하고 모두 조용(調用)하였으니 귀천을 막론하고 모두 빈틈없이 따랐다.

관백 이하 여러 고을 장관(將官)에게 공봉(供俸)하는 물건을 민간에서 강제로 징수하는 폐단이 없고 출입할 때에 인마(人馬)를 징발하는 일이 없으며, 여관[舍館]ㆍ음식ㆍ가마 타는 따위의 제반 수용품이 모두 일정한 가격이 있어, 한 사람이 한 참(站)을 가는 값이 동전(銅錢) 50닢이었고, 말 1필의 값이 30닢, 백반 한 그릇에 1전, 술 한 병에 4전이었으며, 쌀이 귀한 때에는 10전에 1수두(手斗), 쌀이 천할 때에는 10전에 12수두라 한다. 이른바 수두(手斗)라는 것은 우리나라의 2승 7홉이다.


3줄요약
1. 조선 피랍인들은 조선에서 빈손으로 와서 일본에서 재산 불려서 돌아갈 마음들이 없었다.
2. 조선은 사농공상이었다면, 일본은 병민(군인)이 가장 높은 계층이었고 그 다음이 상인, 승려, 농민 순이었는데 나라에서 부역시키면 조선은 양반들은 부역에서 빠진 반면 일본은 병민들도 제 값을 주고 부역시키니 모두 따랐다.
3. 조선은 물건이나 인력을 민간에서 강제로 징수하는 폐단이 많았는데 일본은 민간인들한테서 돈을 주고 제값을 치뤘다고 한다.

출처) 해행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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