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게 실시간 커뮤니티 인기글
(1785217)  썸네일on   다크모드 on
HELLA | 17/11/20 02:01 | 추천 41

과연 '하나의 중국'은 완성될 것인가?? +432 [20]

원문링크 https://www.ilbe.com/10149722310

하나의 중국.jpg2017051801001678300092161.jpg


1949년 중화 인민 공화국이 수립된 이래 중국의 땅이면서도 중공의 영향력이 미치지 못하는 세 지역이 있었으니 국민당이 피신한 대만과


영국의 식민지 홍콩, 그리고 포르투칼이 지배하는 마카오였다. 중국으로서는 이 세 지역이 떨어져나간다는 것은 하늘이 두 쪽이 나더라도


용납할 수 없는 일이였으나 현실적으로 중국보다 우월한 경제력을 지닌 이들 지역을 인정하지 않을 수도 없었지. 이는 현재까지도 같은


형편이라서 비록 중국의 경제가 많이 커졌다고는 하나 그것은 다만 덩치가 커진 것이고, 실제 시민들의 경제적 수준이나 문화 수준 등을


보고 있으면 중국은 아직도 이 세 지역들보다 많이 부족한 편이다. 그러니까 중국은 평가절하해도 이 세 지역에 대해서만큼은 어느 정도


인정하는 인식들도 있는데, 그 인식이 틀렸다고 보기 어렵다. 1949년의 건국 아래 냉전 체제 하에서 중국은 중국대로 국가 건설에 총력을


경주했고 대만은 대륙 수복의 부푼 꿈을 안고 경제발전에 올인했다. 서로 적대적이였던 터라 통신과 왕래, 교역은 불가능한 것이였다.


01.10411836.1.jpg AA.8416528.1.jpg


이러한 상황은 중국에서 덩샤오핑이 집권하며 서서히 변화의 조짐을 보이게 된다. 이미 1970년 중화 인민 공화국이 중국의 대표권을


대만으로부터 가져옴으로서 대만은 대륙 수복이라는 헛된 꿈을 접게 되었는데 중국이 개혁개방에 나서서 죽의 장막을 걷어젖혔기 때문이다.


죽의 장막을 걷어치운 중국은 관세 장벽을 해체하고 외국 자본의 직접 투자를 허용해 대륙 동부 해안가를 따라서 다섯 개의 경제 특구를


지정해 외국 자본의 투자를 유치하고 열 네 개의 개방 도시를 지정해 자유로운 경제 활동을 장려했다. 그 결과로 1978년 이후 중국은 무려


5000억 달러에 달하는 외국 자본을 끌어들으며 '세계의 공장'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다. 또한 대외적으로는 부드러운 외교를 지향하여


1979년 1월에 미국과 수교하고 같은 해 9월에는 중국 지도자로는 최초로 미국을 방문하여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로데오 경기를 관람하거나


엘비스 프레슬리의 노래를 부르는 등 미국인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려는 모습을 보였다. 로널드 레이건과의 회담에서도 소련을 비난하는


레이건의 연설에 침묵하며 찬동하지 않았지. 굳이 적을 만들어서 으르렁거릴 필요없다는 것이 덩샤오핑의 외교적 철학인 것으로 보인다.


upload20140310_141656_0843136.jpg


이는 양안관계에서도 오롯이 적용되어 1978년 12월 제 11기 3중 회의에서 대만에 대한 평화 통일 정책을 채택하고 '대만 동포께 드리는 글'을


채택했다. 이 문서에는 양안의 교류협력을 촉구하는 내용과 함께 양안의 통일이 성사되더라도 대만의 제도나 생활양식, 대외관계 등에 변화가


없으리라는 약속이 담겨져있었다. 대만으로서도 이미 대륙 수복의 꿈이 물건너 간 판에 더 이상의 적대적 관계는 의미가 없으므로 1987년부터


양안 간의 각종 규제를 해제하고 계엄령도 해체하는 등 양안 관계의 진전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물론 그동안 대만에서 대만 독립에 대한


여론이 일어나거나 할 때는 정치적으로는 관계가 험악해지기도 했으나 그와는 별개로 경제적인 투자나 교역은 크게 증가하여 덩샤오핑이


남순강화로 개방의 속도를 더욱 높이기 시작한 1992년부터는 대만의 대륙 투자가 해마다 두 세 배씩 급증하였다. 외환위기의 불덩어리가


아시아 전역을 휩쓸고 다닐 때도 중화권은 똘똘 뭉쳐서 국제투기자본의 공세에 맞서싸웠고, 홍콩과 대만은 이를 물리치는 데에까지 성공했다.


htm_2013120123355350105011.jpg2017062810023987957_1.jpg

홍콩 반환에 대한 교섭도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덩샤오핑은 마거랫 대처 총리가 중국을 방문했을 때 '소유는 중국이, 관리는 영국이 하자.'는


제안을 거부하면서 일국양제를 내놓았는데, 쉽게 말해서 홍콩이 중국에게 반환되더라도 홍콩의 제도나 생활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며 고도의


자치권을 향유할 수 있다는 것으로 홍콩을 중국에게 반환하면 공산화되는 것이 아니냐고 우려하는 영국을 달래기 위한 묘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영국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서 각서를 쓸 것을 요구했고, 덩샤오핑은 반드시 약속을 지킨다는 각서까지 써내야 했다. 우여곡절 끝에


1984년 12월에는 홍콩 반환 협정이 체결되었고 1997년 홍콩이 중국에게 반환되었는데, 당시 공산 정권 들어오면 우리 재산 빼앗아가는 것이


아니냐고 불안해하던 홍콩인들이 대거 해외로 이주하여 지금은 캐나다의 밴쿠버를 우스갯소리로 홍쿠버라고 부르고 있다. 또 중국은 홍콩에


대한 일국양제의 원칙을 50년 동안은 관철하겠노라고 약속했다. 즉 1997년에 반환되었으니 2047년까지는 일국양제를 유지한다는 이야기다.


DN19990354-00_01000608.jpg2009121804721_2009121876991.jpg

마카오 역시 같은 원칙으로 1999년 중국에게 반환되었다. 마카오는 일찍이 1553년에 포르투칼인들이 '배의 화물이 젖어서 말리고 싶다.'는


구실로 명나라 관리에게 뇌물을 먹이고 체류하게 된 것이 시초로 1557년부터는 매년 뇌물을 주면서 아예 살림을 차리게 되었는데, 나중에는


중앙정부에서도 매년 500냥을 내는 조건으로 마카오에 체류해도 좋다고 허용해버렸다. 그러니까 포르투칼은 중국 정부에 임대료를 내는


조건으로 마카오를 영구 임대하게 된 것이다. 이후 중국 대륙이 공산당에 의해서 통일된 후에도 중국은 마카오에 대한 포르투칼의 영유권을


존중하여 마카오를 들어먹지 않았다. 홍콩도 공격하지 않았다. 서방과의 정면대결을 바라는 것은 아니였기 때문이다. 문화대혁명이 발발했을 때


홍위병들이 마카오로 처들어온 적은 있었으나 아무리 마카오가 작아도 포르투칼이 홍위병들에게 깨질 정도로 나약하지는 않아서 마카오를


방어하는 데에는 성공한다. 그러나 영토 유지가 벅참을 깨닫는 계기가 되어서 영토 반환을 중국에 거듭 제안했고 결국 마카오도 반환되었다.


c0e551f5b014e55386025f1f5f7cb534e5ce2dbe38fc54518c835bdcb9c67888c687b2f5117d0d4b02e91cc72f1439f4d789364bcb3aabfed1530854b04c25824a6b477aeaeb306661631b30050b15af.jpg

art_1412919733.jpg

ByyV_C6CQAAMzK2.png


이로서 하나의 중국이 착착 완성되어가고 있고, 홍콩과 마카오는 일국양제의 시범모델로 이는 결국 양안통일을 염두해둔 것인만큼 중국으로서는


홍콩과 마카오에 대한 통치가 안정적으로 진행되어야 양안통일에도 큰 마찰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2014년 홍콩에서 우산혁명이 발발하면서


덩샤오핑의 약속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만천하에 광고한 꼴이 되고 말았다. 대만은 대만대로 기다렸다는 듯이 홍콩 시위대를


지지한다는 입장을 표명함으로서 홍콩과 대만은 비슷한 처지에 서로 동질감을 공유하고 있다. 일찍이 중국 정부는 대만에 대해서도 홍콩이나


마카오와 같이 일국양제를 적용하여 타이완특별행정구로 만들되, 대만군까지도 유지할 수 있는 느슨한 일국양제를 유지하겠다고 제안한 바


있는데 대만인들의 반응은 대체로 싸늘하다. 내가 언젠가 대륙인들이 양안은 곧 통일될 거라고 하더라는 발언을 대만인에게 소개했더니 바로


냉소적인 답변을 내놓더라. 피식 웃으면서 "글쎄..." 라고 고개를 설레 설레 젓던데 여전히 중국에 대한 반감이 상당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top.jpg


언젠가 해외여행을 갈 기회가 생긴다면 이 곳을 방문해보는 것은 어떠냐? 본토의 대륙과는 달리 나름대로 세련되고 개방적인 동네라서 즐기기에도


나쁘지 않을 꺼야. 마카오에 갔다가 카지노로 자금을 깨끗하게 탕진하는 바보짓만 하지 않으면 된다. 하여간에 중국에서는 '하나의 중국'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고 있으나 홍콩사람, 대만사람, 마카오사람에게 "너 어디 출신이냐? 어디 사람이냐?" 고 물어보면 홍콩, 마카오, 대만이라고


하지, "차이나" 라고 대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진정한 하나의 중국이 완성되기까지는 갈 길이 멀다는 이야기다. 오히려 이 사람들은 대륙인들을


배척하면서 자기들끼리 똘똘 뭉치는 경향이 있어서 대륙인들과의 상당한 마찰을 빚기도 한다. 역시 중국은 덩샤오핑이 약속한 대로 이들의 권리나


생활을 최대한 존중하면서 내부적으로 스스로의 문화수준이나 역량을 발전시켜 이들로 하여금 스스로 중국에 대한 호감을 가지게끔 만드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게 언제쯤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중국인 관광객들은 타국에서의 진상이 오지던데 그것부터 고치는 게 좋겠다.


요약


하나의 중국? 중국부터 달라져야 한다.

[신고하기]

댓글(20)

1 2

이전글 목록 다음글

12 3 4 5
제목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