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일본, '무로후시 시게노부' 라는 당시 아시아에서는 최강을 자랑하던 해머던지기 선수가 있었다.
일본 올림픽 개막식 기수를 하기도 했을 만큼 일본에서는 육상 종목 스타였다.
그는 40년대에 태어나 중학교 3학년의 나이때부터 키 178cm에 근접했고,
성인이 되어서는 180cm 88kg의 체격을 가진 선수였다.
당시 일본에서는 보기 드문 신장에 타고난 전완근과 악력, 군살 없는 몸을 지닌 강골로
술, 담뱨를 일체 입에 대지 않고 엄격한 식단조절을 매일 지키는 등 자기관리 또한 매우 뛰어난 선수였다.
무로후시 시게노부는 해머던지기 종목에서 일본 신기록 (74m 56cm)을 세웠는데,
이 기록은 자신의 아들에게 깨지기 전까지 26년간이나 유지되었고 현재도 역대 2위이다.
(2018년 현재 우리나라의 기록은 아직도 이에 미치지 못한다.)
그는 선수 생활 동안 올림픽 출전 4회, 일본 선수권 12연패, 아시안 게임 5연패 등의 기록을 세웠으며
당시 세계무대에서 서양 선수들에게 불리던 별명이 '아시아의 철인(アジアの?人)' 이었다.
다만, 이 별명은 반은 진심이고 반은 조롱이 섞인 것이었다.
'동양인은 아시아에서나 1위' , '세계 무대에 나오면 별 볼일 없는 선수' 라는 뜻이 실제로 있었기 때문이다.
(맨 왼쪽이 몇년 전의 무로후시 시게노부)
60년대, 줄기차게 세계 선수권과 올림픽의 문을 두드렸던 그는 체격이 큰 서양 선수들을
이기기 위해 특훈을 거듭했다. 꾸준한 악력 훈련, 수년간의 훈련으로 독자적인 스윙 방법 개발,
하체힘을 위한 스쿼트와 바벨을 걸치고 계단 오르내리기...
파워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하루 다섯끼를 양질의 고기로 먹고 하루 14시간을 훈련에 거듭했다고 한다.
세계 선수권에서 번번히 탈락했으나 72년 하계 올림픽을 노리고 맹훈련을 거듭했다.
실제로 70년 아시안게임 우승 당시 그는 어느정도 자신감이 들었다.
동아시아는 물론이고 중동까지 그의 적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72년 뮌헨 올림픽, 4년간 혼신의 힘을 다했으나 8위에 그치고 만다.
당시 크게 낙담하여 숙소에서 밤을 지새며 울었다고 한다.
"체격제한이 없는 종목에서 동양인의 체구로는 도저히 세계 정상에서 서양인을 이길 수가 없다."는 말과 함께
절망감을 느낀 시게노부는 올림픽이 끝난 9월, 곧바로 루마니아 창던지기 국가대표
세라피나 모리츠(Serafina Moritz)와 결혼식을 올린다.
당시 올림픽이 끝나자마자, 한달여 만에 결혼식을 올렸기 때문에 지구촌 축제가 만든 사랑이라는
소문도 있었으나 시게노부는 몇 년 지나지 않아 모리츠에게서 아들과 딸 하나씩을 얻고 곧바로 이혼한다.
이후 정략결혼이라는 비판이 잠시 나왔으나 시간이 지나자 묻히고 만다.
이렇게 태어난 아들이 바로 아버지를 능가하는 일본의 전설적인 해머던지기 선수이자
'헤라클레스'라는 별명을 가진 해머던지기 그랜드슬래머 '무로후시 고지' 이다.
일본 해머던지기 국가대표 아버지와 루마니아 창던지기 국가대표 어머니의 피를 이어받은
혼혈아 무로후시 고지는
74년생, 188cm 100kg의 당당한 체구로 일찍부터 해머던지기에 입문했다.
아버지가 개발한 훈련법, 노하우를 모조리 흡수한 무로후시 고지는 아버지의 기록을 9m 가량이나
앞질러 일본 최고기록인 84.86m (2003)를 기록하고 세계무대에서도 금메달을 따는 등
그랜드 슬램을 기록한다.
무로후시 고지는 어릴적부터 체육인의 자질을 뽐냈는데,
100M 기록이 10초 중반대, 야구 시구에서 131km를 기록했다
(최근의 시게노부와 아들 고지, 나이가 74세에 접어들고 체격이 다소 작아졌다.)
시게노부는 20년간 아들의 뒷바라지를 맡고 경기를 참관했으며,
올림픽 금메달을 땄을 때에는 눈물을 흘리며 기뻐했다고 한다.
아들 무로후시 고지는 "아버지를 존경한다."고 말했으며, 순수한 사랑으로
결혼을 올려 낳은 아이들은 아니었지만 시게노부 또한 자식들에게는 진심과 사랑으로 대했다고 한다
참으로 그 집념이 대단하다고 해야할지, 무섭다고 해야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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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39)
아들이 금메달따고 나서 웃는 게 좀 어색해 보임
기쁨도 있겠지만 아버지의 집념을 위해 자신의 인생이 아닌 아버지의 두번째 인생을 산 거 같노
개무섭네. 의도적으로 떡쳐서 계획한거네. 무섭다.
무로후지 부자 세계제패, 전략적 결혼의 산물(産物)
일본 육상의 영웅 무로후시 시게노부와 무로후시 고지 부자의 경우는 혼혈 스포츠의 폐해가 고스란히 나타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아버지 무로후시 시게노부는 1970년 방콕 아시안게임부터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까지 남자 투해머 아시안게임을 5연패 했다.
그리고 아들 무로후시 고지는 1998년 방콕, 2002 부산 아시안게임 2연패를 해서 부자가 아시아 투해머에 7번이나 정상에 올랐다.
그러나 아버지 무로후시 시게노부 보다는 아들 무로후시 고지의 성적이 훨씬 더 좋았다.
아버지는 아시아에서는 정상이었으나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단 한번도 메달을 따지 못했다.
한계를 느꼈던 것이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정략결혼이었다.
무로후시 시게노부는 육상에 소질이 있는 좋은 체격조건의 유럽여자와 결혼을 해서 2세에게 자신이 이루지 못한 세계정상에 오르게 하려는 어처구니없는 계획을 세웠고 실제로 실행에 나갔다.
무로후시 시게노부는 1968년 유럽주니어 육상 선수권대회 여자 투창에서 금메달을 딴 루마니아의 세라피나 모리츠와 우여곡절 끝에 결혼에 골인한다.
과연 무로후시 시게노부와 세라피나 모리츠와의 사이에 태어난 아들 무로후시 고지는 아버지 무로후시 시게노무를 뛰어 넘었다.
무로후시 고지는 8할 이상이 어머니의 용모를 닮아서 거의 유럽인처럼 생겼다.
우선 일본 육상 선수권대회 투해머를 17연패해서 12연패의 아버지를 넘어섰다. 그리고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서 아버지의 한(限)을 풀어줬고, 2011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도 금메달(81m24cm)을 따내 세계정상을 재확인했다.
무로후시 고지의 경우, 정략결혼에 의한 우수한 혼혈선수가 만들어졌다는 면에서 보통상식으로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그야말로 인륜(人倫)을 거스른 행위가 아닌가하는 의문도 든다. 더구나 무로후시 시게노부와 세라피나 모리츠의 결혼생활이 원만치 못하다가 무로후시 고지와 딸 유카(일본 투원반 선수)를 낳은 후 이혼을 한 것으로 알려져 더욱 찜찜하다.
출처 : 뉴시안(http://www.newsian.co.kr)
육체, 두뇌 모든것에서 동양은 패배네 슬픈 현실이다
성을보니 고구려계통이네
진짜 집념이 대단하다 ㄷㄷㄷㄷ
한국인들은 이런 집요함이 없음
일본인들은 집요함,집념이 강하고 심해서 노벨과학상도 많이타는데
한국은 무조건 빨리빨리. 집요함없음
냄비의 민족
진짜 대단한 새끼네
평생 좆빠지게 하고 안되니깐 양년한테 애새끼 뽑아서 씹 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