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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z02s33 | 18/10/21 02:29 | 추천 50

킹갓조선의 근대화 & 개화 의지를 알아보자 +340 [23]

원문링크 https://www.ilbe.com/10800492012




- 선 요약 -


근대화 의지를 알아볼려고 했는데 좆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일본공사 오토리 게이스케1차 개혁 요구 5개조를 묵살했다가, 나중에

일본공사 이노우에 가오루2차 개혁 요구 20개조를 제안하고 이를 바탕으로

김홍집이 개혁을 실행함. 그러나 나중에 아관파천으로 좆망하고


개혁안의 실무진행자 김홍집 총리는

러시아 공사관으로 도망친 고종 씨발새끼가 역적이라면서 죽이라고 명령.

저잣거리에서 친일파라는 누명을 뒤집어쓰고 맞아 죽었다. 그리고 사지가 능지처참.

종로거리는 피바다가 됐다.


여기에 0.000001%의 거짓도 없으며 못 믿겠으면 교과서를 보든가 책을 보든가




갑오개혁, 옛날에는 갑오경장이라고 불렀다.

1894년 7월 초부터 1896년 2월 초까지 추진된 조선의 개혁 운동. 정치, 경제, 군사, 법률, 사회의 전 분야를 망라하는 넓은 범위의 개혁이었다.

총 3차례에 걸쳐 진행된다.




| 1차 갑오개혁


청일전쟁 발발 직전인 1894년 7월 1일(양력), 일본 공사 오토리 게이스케내정 개혁안 5개조를 제시하면서 이를 시행할 것을 요구 했다. 그러나 이씨조선은 교정청을 두어 스스로 개혁을 하겠다고 발표하여 사실상 거부했다.



일본공사 오토리 게이스케


( 이 요구를 거부함 )

( 이 요구를 거부함 )

( 이 요구를 거부함 )





이토 히로부미 총리

'적당히 보호국화하고 자치국으로 만들려고 했는데 야빠리 무리인가....'








무토 미네미쓰 외무상

'병합밖에는 답이 없다...이기야'








이토 히로부미 총리

'좀 더 두고 보자 병합은 쉬운 일이 아님 본국 재정도 생각해야함....'







| 2차 갑오개혁

일본 공사로 부임하고 있었던 이노우에 가오루가 20개의 조항을 내세웠다. 그 내용은 대체적으로 흥선 대원군의 실각, 왕실과 정사의 분리, 조세의 탁지 아문으로의 통일, 지방관의 권한 제한 등이 있다.

결국 그동안 얼굴 마담으로 내세웠던 흥선대원군이 실각 당하고, 동학 농민군이 우금치 전투에서 패배하자 일본의 요구에 맞춰서 칙령 제1호부터 제8호까지 발표되고, 갑신정변으로 일본에 망명가 있었던 박영효가 내무 대신으로 전격 임명되면서 2차 갑오 개혁이 시작되었다. 이 시기를 제2차 김홍집 - 박영효 연립 내각의 시기라 부르기도 한다.

개혁을 펼치기에 앞서 가장 먼저 홍범 14조를 발표하였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청(淸) 나라에 의존하는 생각을 끊어버리고 자주 독립(自主獨立)의 터전을 튼튼히 세운다.


- 왕실의 규범을 제정하여 왕위 계승 및 종친(宗親)과 외척(外戚)의 본분과 의리를 밝힌다.


- 임금은 정전(正殿)에 나와서 시사(視事)를 보되 정무(政務)는 직접 대신(大臣)들과 의논하여 재결(裁決)하며 왕비나 후궁, 종친이나 외척은 정사에 관여하지 못한다.


- 왕실에 관한 사무와 나라 정사에 관한 사무는 반드시 분리시키고 서로 뒤섞지 않는다.


- 의정부(議政府)와 각 아문(衙門)의 직무와 권한을 명백히 제정한다.


- 백성들이 내는 세금은 모두 법령(法令)으로 정한 비율에 의하고 함부로 명목을 더 만들어 불법적으로 징수할 수 없다.


- 조세나 세금을 부과하는 것과 경비를 지출하는 것은 모두 탁지아문(度支衙門)에서 관할한다.


- 왕실의 비용을 솔선하여 줄이고 절약함으로써 각 아문과 지방 관청의 모범이 되도록 한다.


- 왕실 비용과 각 관청 비용은 1년 예산을 미리 정하여 재정 기초를 튼튼히 세운다.


- 지방 관제를 빨리 개정하여 지방 관리의 직권을 제한한다.


- 나라 안의 총명하고 재주 있는 젊은이들을 널리 파견하여 외국의 학문과 기술을 전습 받는다.


- 장관(將官)을 교육하고 징병법(徵兵法)을 적용하여 군사 제도의 기초를 확정한다.


- 민법(民法)과 형법(刑法)을 엄격하고 명백히 제정하여 함부로 감금하거나 징벌하지 못하게 하여 백성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한다.


- 인재 등용에서 문벌에 구애되지 말고 관리들을 조정과 민간에서 널리 구함으로써 인재 등용의 길을 넓힌다.



이전에 이노우에 가오루가 요구했던 20개 조항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내용이다. 이를 통해 일본의 요구가 확실하게 받아들여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개혁을 시행하였다.



일본공사 이노우에 가오루





| 을미개혁 ( 3차 갑오개혁 )


김홍집 내각이 아관파천으로 무너지기 직전인 1896년 2월까지 추진한 일련의 개혁. 갑오개혁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3차 갑오개혁으로 부르기도 한다.


- 주요 내용 -


양력의 채용


종두법의 시행


중앙군으로 친위대, 지방군으로 진위대 설치


단발령의 시행


소학교의 설치



| 좆망


일본이 캐리한 개혁이라서 안 그래도 안 좋았던 평판이 단발령 때문에 아예 바닥으로 떨어지게 된다. 결국 김홍집 내각이 아관파천으로 무너지면서 개혁은 모두 중단되고 만다. 또한 단발령을 강요했기 때문에 을미의병이 일어나는 계기가 되었으며 최익현의 "목을 자를지언정 머리칼을 자를 순 없다"라는 명언이 탄생한다.



| 忠臣, 개혁파 김홍집 총리의 비참한 최후




1896년 2월 11일,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이동한 아관파천이 발생했다. 고종은 공사관에 오자마자 을미 사적(총리 대신 김홍집, 내부 대신 유길준, 농상공부대신 정병하, 군부 대신 조희연)에 덤으로 법부 대신 장박을 역적으로 선포하고, 처형을 명령한다.


유길준, 조희연, 장박 등이 살길을 찾아 일본으로 망명하는 와중에 김홍집은 고종을 직접 배알하여 회심을 촉구하고 여의치 않을 경우 죽을 각오로 거리로 나섰다. 지금 나섰다가는 죽을 것이라고 만류하는 일본군을 "시끄럽소! 일국의 총리로서 백성에게 죽는 건 천명이오! 남의 나라 군인의 도움까지 받아서 살고 싶지는 않소!"라고 뿌리친 후 직접 러시아 공사관으로 가다가 일개 순사에게 붙잡혀 정병하와 함께 광화문 앞으로 끌려간 다음 분노한 군중들에게 돌을 맞고 집단 구타당하다 끝내 숨졌다. 군중들은 이에 끝내지 않고 이 두 대신들의 사지를 찢고 종로까지 그 시체를 끌고 가면서 그야말로 광화문 - 종로 거리를 피의 거리로 만들어버렸다. 김홍집의 가족 또한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연좌를 통한 처벌이 내려질 것을 예상한 그의 부인은 아들을 죽이고 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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