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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라네집.. | 18/10/22 04:40 | 추천 42

소련 공군의 공포. '검은 악마' 에리히 하르트만 JPG +637 [12]

원문링크 https://www.ilbe.com/10802579183



안녕 게이들아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비행기를 격추한 독일 공군 '루프트바페' 조종사 에리히 알프레드 하르트만









2차대전 독소전쟁에만 참전한 그의 전과는 총 1405회 출격, 352기 격추 (5기는 미군 전투기, 나마지 모두 소련군 전투기)


작은 키와 귀엽게 생긴 얼굴로 독일 공군 동료 조종사들에게선 '부비 Bubi' (꼬마라는 뜻의 독일 속어)라는 애칭으로


적군인 소련군에게선 '쵸르늬 쵸르트 Черный Черт' (검은 악마)라는 공포의 대상으로 불렸다








하르트만의 애기 메서슈미트 Bf-109G



그는 애기의 기수 부분을 검은 색 문양으로 도색했는데 이걸 '검은 튤립'이라 불렀다


검은 튤립은 소련군 조종사들에겐 공포의 대상으로 발견하자마자 줄행랑을 치는 경우가 많았다








서독 공군의 전투비행단장으로 복귀한 후 그의 비행단 소속 세이버 전투기들도 기수에 검은 튤립을 그려넣었다








독일 공군 최고의 제 52 전투비행단 JG52에서 100번째 격추를 기념하는 하르트만


제 52 전투비행단에는 격추1위 하르트만, 격추 2위 게르하르트 바르크호른 (301기 격추), 격추 3위 귄터 랄 (275기 격추)이 복무한 부대다










부인 우르술라와 함께






1945년 종전 후 미군에게 항복했으나 소련의 요구로 시베리아의 포로 수용소로 보내진 하르트만은 소련군의 회유 공작을 받는다


혹독한 2개월 여의 포로수용소 생활 후 소련 당국은 하르트만에게 소련 공군 조종사 훈련 교관 자리를 제안한다, 물론 포로 중 최고의 대우를 약속하면서.


하지만 어릴 때 부터 공산주의에 대한 반감이 있던 하르트만은 거절하였고 그는 시베리아의 다른 수용소로 이송, 수감된다


그곳에선 독일군 포로들끼리 친공/반공으로 나뉜 채 독일 장교들간에도 절도, 폭행, 배신, 소련 비밀경찰에 밀고 등이 횡행하였고


당시 그가 부인 우르술라에게 보낸 편지에 '여기선 모든 인간들의 겉모습에 가려진 추악함이 돋보기로 보는 것 처럼 확대되어 보이는 것 같다'라고 쓴다


소련 당국은 그에게 새로 창설되는 동독 공군의 요직을 제안하나 서독에 가족을 두고 온 하르트만은 또다시 거절한다








소련 수용소에서 하르트만의 머그샷




그러자 소련은 그를 '전쟁 범죄자'로 기소하는데 '스몰렌스크 인근 제과점 폭격으로 10명 사상, 브랸스크 상공에서 기총소사로 민간인 700명 사상, 소련 정부 재산인 전투기 347대 파괴'가 죄목이었다


하지만 하르트만은 스몰렌스크와 브랸스크 상공을 비행한 적이 없었고 기소한 소련의 군법원 역시 이 죄목은 무죄 선고하였으나 '소련 정부 재산 파괴 (전투기)'에 대해서는 25년 노역형과 25년 금고형등 총 50년을 선고한다


기약 없는 포로 생활은 10년이 지나갔고 결국 1955년 서독 총리 아데나워의 외교적 성과로 시베리아의 독일 포로들은 석방되어 서독으로 돌아온다








서독으로 돌아온 그는 서독 공군 최초의 제트 전투비행단인 제 71 '리히토펜'전투비행단장을 맡아서 세이버 기 조종사들을 훈련시킨다


그의 명성을 아는 미 공군의 요청으로 미국 내 조종사 양성시설에서 미군 조종사들을 상대로 조종 강의를 하기도 하였다




F-104 스타파이터 Starfighter



서독 정부가 F-104를 서독 공군 제식 전투기로 확정하자 F-104의 여러 결점을 이유로 도입을 반대하던 하르트만은 전역한다


'과부 제조기' F-104는 독일 도입 총 기체 수의 30%에 가까운 270여대가 추락하고 116명의 조종사가 사망한다







하르트만 (좌), 갈란트 (우)



서독 공군에서 전역 후 하르트만은 오랜 동료이자 상관이었던 아돌프 갈란트 (나치 공군 최연소 장성이며 영국 본토 항공전에서 104기의 영국 전투기를 격추한 에이스)와 함께 비행학교를 열고 자신이 사랑하는 창공에서 인생을 만끽한다







1993년 심장마비로 자택에서 사망. 71세



에리히 하르트만과 부인 우르술라의 묘비




PS


347기의 자국 전투기를 단 한 명의 독일 조종사에게 격추당했다는 걸 믿으려 하지 않던 소련(러시아)의 군 역사학자들은 과대 평가된 것이라 주장하지만


하르트만의 1405회 출격 횟수에 대해선 반론의 여지가 없다는 걸 인정한다


소련 제1의 에이스 이반 코줴두프 (소련 공군 원수 역임)는 330회 출격에 적기 62기 격추


소련 제2의 에이스 알렉산드르 포크릐쉬킨 (방공군 사령관, 소련 공산당 정치국 후보위원 역임)은 650회 출격에 59기 격추로


독일의 '꼬마'이자 '검은 악마'와는 비교의 대상 조차 될 수 없었다



편대 작전 시 유능한 조종사들이 없는 소련 공군은 조종사 재량에 맡기기 보단 팀 전술로 공중 전투에 나섰으나 결국 독자 판단으로 자유 공격에 나서는 독일 공군 에이스들의 먹이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2차대전 당시 소련 전투기 조종사들의 능력은 독일 루프트바페 조종사들보다 현격히 떨어졌으며 훈련 상태, 기체 정비 등 모든 면에서 열등했다라는 것을 현재는 인정하고 있다






읽어줘서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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