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게 실시간 커뮤니티 인기글
(1788101)  썸네일on   다크모드 on
다희만 | 18/12/14 09:21 | 추천 37

인간으로 태어난 신, 나폴레옹(NAPOLEON) 제2부 +440 [19]

원문링크 https://www.ilbe.com/10906936694

죽음은 아무것도 아니다. 다만 패배하고 불명예스럽게 사는것이말로 매일 죽는것과 다름없다.

<Napoleon Bonaparte>

<NAPOLEON>

아버지 샤를 보나파르트의 유언을 가지고

형 조제프 보나파르트가 사관학교를 방문했다.

슬픔에 가득 차 있던 형의 눈을 보았을 때

참고 있던 눈물이 터졌다.

아버지의 유언은 나의 안부를 묻거나 행복하라는 말씀이 아니셨다.

죽음의 문턱에서 아버지는 숨이 넘어 갈 듯

큰 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면서

" 나의 아들 나폴레옹이 전 유럽에 떨치리라" 라는

허무맹랑한 유언을 남기셨다.

아버지의 죽음이 초연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가장의 무게가 현 시점으로 와닿기 시작했다.

임관 시험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임관에 필요한 과목들을 정리하고 공부했다

또한 고향 코르시카에 있는 동생들의 교육비와 가족의 생계를 위해

후원자를 찾고 편지를 써서 설득해야만 했다.

집안의 모든 재산권과 토지권은 내가 상속 받았다.

나는 그것들을 팔아서 각 학교에서 공부중인 동생들의 수업료를 내었고

고향집을 보수하고 수리하라는 편지와 우편으로 남은 돈을 보내었다

그리고 룸메이트였던 선배와 함께 임관 시험을 보러갔고

나는 당당히 임관시험을 합격하고

포병 장교로 임관했다.

지방 연대로 발령났고

가장의 역활을 제대로 할 수 있을만큼

많은 봉급이 나오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나의 임관 소식에 집안이 안정해졌다고 좋아하셨다.

부임지는 습지와 늪이 있는 곳이었고

고질적으로 천식과 피부병을 앓아 온 나에게는

괴롭고 힘든 곳이었다. 하지만 동료들의 도움, 배려로

난 좀 더 편하게 군복무를 할 수 있었고

부임지에서 난 동료들과 포병학에 대한 지식을 나누기도 하고

토론하면서 친분을 쌓기도 하였다.

그들은 또한 내가 가진 수학 지식에 감탄하면서 내게서

기하학을 배우기도 하였다.

난 이 시절에 첫 경험도 하였다. 비록 길거리 창녀였지만

그녀는 아주 아름다운 여성이었고 젊고 어린 사람이었다.

프랑스 귀족들의 고급창녀로 생계를 살았지만

귀품이나 행동은 사뭇 다른 귀족처자와 다르지 않았다.

난 그녀를 통해 남자로 다시 태어났다.

난 부임지 근처에서 하숙을 하였고 그 곳 마담과 그녀의 딸에게

사랑받고 대접받았다. 그 부녀는 나와 대화하기를 좋아했고

내가 가진 문학적 견해를 듣는것을 좋아해서

자주 문학적 토론의 시간을 가지기도 하였다.

건강이 악화되서 병가(휴가)를 신청했고

난 9살에 코르시카를 떠난 이후로 6년만에 고향으로 갈 수 있었다

코르시카에 도착했을 때 가족들은 나를 반겼고

난 가족들과 오붓한 식사시간을 가질 수 가 있었다.

그리고 곧 바로 후견인을 해 줄

지인이었던 대교주를 찾아가서

보나파르트 가문 후원 약속을 받아내기도 하였다

병가 기간동안

동생들의 교육을 하고

코르시카의 독립운동가였던 파올리 장군의 측근들을 만나면서

독립에 대한 계획을 하고 토론을 하면서

이탈리아 코르시카 섬내의 보나파르트 가문의 입지를 다지기 시작했다

그 때 무렵 우리 보나파르트 집앞에는 무수히 많은

후원자와 추종자들이 언제나 방문했었다

사람들은 나의 정치적 견해와 사회적 견해를 듣길 원했고

가르침을 받길 원했다. 나는 그들을 먹이고 재우면서

정치적 힘을 키워가고 동료들을 무장시키기 시작했다.

그 당시 프랑스가 불안정하다는 속보가 빗발쳤다

코르시카 섬 내의 혁명을 모의한 파올리의 측근들과

나의 추종자 및 동료들이 독립 전쟁을 시작해야한다는 의견을 내기 시작했다

프랑스는 그 때 당시 코르시카를 식민지로 통치하고 있었지만

나라가 불안정해지자 군대를 철수하고 인프라 구조들을 빼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사건이 터졌다.

프랑스 폭도들이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면서 프랑스 혁명이 시작된 것이다.

루이 16세와 왕비가 도망가다가 체포되서 단두대에서 목이 잘렸다 소문이 들렸다

나는 그 소식을 듣자말자

코르시카내의 모든 협력자들을 소집하였다. 비록

나는 프랑스군 장교이자 왕의 장교였지만 나에게 조국은 이탈리아 - 코르시카뿐이다.

<전술을 검토하는 나폴레옹>

나는 코르시카 국민군 부사령관으로 취임했고 2인자의 자리에서 파올리를 도와

독립 전쟁을 시작했다.

우리는 프랑스로부터 해방하기 직전이었다. 전 유럽에서 영국과 더불어 최강의 나라였던 그 프랑스로부터

나라를 되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파올리와 나의 동맹은 오래가지못했다.

코르시카내의 정통성의 문제로 파올리파와 보나파르트가의 분쟁이 시작된것이다.

나의 아버지 샤를 보나파르트가 프랑스 왕에게 충성했고 프랑스로부터 막대한 자금을 받은 배신자라고

모욕하기 시작한 것이다.

나를 추종하던 사람들은 무기를 들고 파올리의 측근들을 공격했고

파올리의 측근들 또한 대응하면서 코르시카내의 분열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사태가 커지고 분열이 심각화되자 파올리와 나는 대면했고

파올리는 내가 가진 모든 권력과 영향력을 뺏어가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우리 가문이 밤낮으로 공격받고 기습 받으면서

우리 가족들은 불안에 떨었다. 나의 추종자들이 횃불을 들고 밤낮으로 지켜냈지만 역부족이었다.

어느 날 파올리의 측근들은 우리집을 급습해서 나를 체포해갔다.

민족의 반역자라는 명목으로 감옥에 집어넣었다.

파올리는 단지 자신의 권력을 나와 나누고 싶지 않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수십년동안 코르시카 독립을 위해 후원하고 고군분투했던 우리 보나파르트 가문을 버렸으니

난 도저히 파올리를 용서할수가 없었다.

늦은 밤, 나의 추종자가 몰래 감옥에서 나를 빼내주었다. 이미 추종자들이 집안 사람들은 빼내어 도주할수있게

준비를 다 해놓은 상태였다. 나는 가족들과 함께

조국을 식민 통치했던 폭압의 나라 , 프랑스로 도피하게 되었다.

[신고하기]

댓글(13)

이전글 목록 다음글

12 3 4 5
제목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