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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맨으로.. | 18/12/17 04:30 | 추천 41

이스라엘이 안보강국이 된 이유를 aRABOZA +573 [15]

원문링크 https://www.ilbe.com/10912058407

19세기~20세기에서 유태인들이 가장 많이 살던 지역은 독일이었다.

독일에 유태인들이 많이 살았던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러시아와 동유럽에서의 박해를 피해서 독일로 왔기 때문이다.

러시아에서의 유태인 학살을 지칭하는 용어는 따로 있다. 포그롬(pogrom)이라고 한다.






금융업, 기술직, 전문직에 종사하던 유태인들이 독일로 떠나는 두뇌 유출이 가속화되면서 러시아의 국력은 심각하게 약화되는데 그건 나중의 일이고,

독일에서 유태인들은 자유와 출세를 누릴 수 있었다.

그래서 유태계 독일인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독일인이라고 생각했지 이방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1차세계대전 때 유태계 독일인들은 기꺼이 독일을 위해 싸웠다.






히틀러가 권력을 잡고 나치즘이 급부상하자

공포를 느낀 몇몇 유태인들은 미국으로 도망쳤지만

대부분의 유태인들은 독일에 남아있었다.

그들은 "내 국적은 독일인데 내가 왜 도망가야 돼?"는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법부와 군을 장악한 나치 정권은 유태인들에 대한 박해를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국내에서 테러를 가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한 나치 정권은 유태인들을 폴란드로 강제 이주 시킨다.

'게토'로 알려진 임시 거주지구에 유태인들을 몰아넣었다가 나중에 강제수용소로 보낼 계획이었다.






그런데 좁은 게토에 직장도 없이 사람들만 딥따 몰아넣으니까 값싼 노동력이 넘쳐났다.

경제적 안목이 있는 독일인들이 게토 주변으로 몰려들어 사업을 했고 그들과 협력하면서 유태인들은 생존해나갔다.

영화 쉰들러리스트의 주인공으로 유명한 오스카 쉰들러도 유태인들과 협력하여 사업을 일으킨 인물이다.

즉, 유태인들의 생존력은 대단했다.

경제 활동이 있는 한, 그들은 살아남을 것이었다.



쉰들러리스트에서 유태인 이자크 슈텐 역을 맡은 벤 킹슬리는


아돌프 아이히만 역도 맡았다. (그런데 정작 킹슬리는 유태인도 독일인도 아닌 구자라트(인도)계 영국인 ㅋㅋ)






유태인들은 당시까지만 해도 나치에 협조했다.

유태인 경찰이 게토의 치안을 담당했고, 나치가 명령하면 고분고분 따랐다.

게토의 유태인들은 독일에서 평화적으로 정권 교체가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했고 그러면 그들도 독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러니 굳이 나치와 충돌을 일으킬 이유가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잇었다.

(사진은 게토 내의 유태인 자경단)






그런데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가 '최종 해결'을 추진하면서

게토 내의 유태인들이 다른 곳으로 실려가는 일들이 발생했다.

나치가 아무리 극비를 유지한다 해도 강제수용소에 대한 소문이 게토에 퍼지기 시작했고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는 운명에 대해 깨달은 유태인들은 무장봉기를 일으켰다.

이것이 1943년의 '바르샤바 게토 봉기 (Warsaw Ghetto Uprising)'이다.

하지만 막강한 나치의 병력 앞에 진압되고 결국 게토의 유태인들은 전부 강제수용소로 실려가 학살을 당했다.






1943년, 나치를 두려워하던 폴란드인들은 유태인들을 돕지 않았다.

그러나 나치는 폴란드인들도 수탈했고 결국 1년 후, 폴란드인들이 무장봉기를 일으켰다.

1944년 바르샤바 봉기(Warsaw Uprising)이다.

즉, 바르샤바에서 일어난 무장봉기는 2개인데 하나는 게토에서 유태인들이, 다른 하나는 바르샤바 시내에서 폴란드인들이 일으킨 것이다.

물론 둘다 나치에 의해 철저하게 진압당했다.






그리고 바르샤바는 나치가 물러가자 소련군이 진주하여 괴뢰정권을 세우고 공산주의자가 아닌 폴란드인들은 또 학살을 당한다.

더 슬픈 사실은, 폴란드 군정의 책임자가 폴란드계 러시아인 콘스탄틴 로코소프스키(Konstantin Rokossovsky)라는 점이었다.

로코소프스키는 뛰어난 지휘관이었지만 폴란드에 대한 아무 애정도 없었고 스탈린의 꼭두각시였다.

그는 폴란드에 강제수용소들을 세우고 소련에 저항하는 폴란드인들을 철저하게 탄압한다.

로코소프스키 장군은 러시아에서는 나치를 격파한 영웅이지만 폴란드에서는 김대중 취급을 받는다.







살아남은 유태인들은 자기들의 나라를 세워야 한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반유태주의와 타협하는 결과는 실컷 이용 당한 끝에 죽음 뿐이라는 점도 깨달았다.

유태인들은 나치에 협력하면 언젠가 독일로 돌아갈 수 있을 줄 알았지만 그들을 기다리던 것은 강제수용소와 가스실 뿐이었으니까.

이 생생한 역사적 교훈이 이스라엘을 안보에 있어서는 타협을 모르는 집단으로 만들었다.











한국이 일제시대 교육을 하는 이유는 일본에 대한 나쁜 이미지를 만들어놓고 반일감정을 이용해먹기 위해서이다.

반면 이스라엘이 홀로코스트(나치의 유태인 학살) 교육에 힘을 쏟는 것은 독일이 나쁘다는 사상을 주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안보에 있어서 적과 타협하면 죽음만이 기다린다는 사실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서이다.

역사를 제대로 알고 있으면 "하마스나 이란과 타협하자" 같은 병신같은 소리가 나올 리 없으니까.

홀로코스트는 나치가 일방적으로 유태인들을 살해한 것이 아니라 유태인들이 나치에 협력했기 때문에 수월하게 진행된 것이었다.








한국이 역사를 제대로 알고 있는 민족이었다면

여군 문제는 애초에 나올 일이 없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다른 나라에서는 너무 당연한 게 한국에서만 '논란'이 된다.











한줄요약: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진짜로 미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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