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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디락스.. | 19/05/20 03:43 | 추천 25

예술가들의 전통적인 생존방식을 ARABOJA- +487 [5]

일간베스트 원문링크 www.ilbe.com/11171818307


이 사진은 영화 '아마데우스'의 한 장면이다.


좌측이 모차르트, 우측이 살리에리인데 이 작품에서는 살리에리가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시기하고 그에게 재능을 부여한 신을 저주하며


신의 피조물인 모차르트를 죽음에 이르게 한다.


영화 자체는 수작이지만 역사적 사실과는 전혀 다르다.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시기질투할 이유가 없다.




요제프 2세의 초상화


오히려 모차르트가 살리에리를 시기했다는 것이 역사적 사실이다.


살리에리는 요제프 2세의 신뢰와 후원에 힘입어 부와 명예를 누렸고


모차르트는 부친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황제는 살리에리만 좋아한다.' 고 투덜거리기도 했다.


실제로 살리에리는 38살에 당시 음악가들 사이에서는 최고의 직위인


궁정악장이 되었다. 그리고 죽기 1년 전인 74세까지 그 직위를 유지했다.


그런만큼 죽을 때까지 풍족한 생활을 유지했는데 성품 역시 관대하여


수많은 후배 음악가들을 후원하였기에 인망 또한 두터운 인물이였다.




모차르트 역시 수입은 상당했다.


황실로부터 연금도 받았고 고위층으로부터 작곡, 연주 의뢰를 받기도 했다.


그리고 상류층의 자제들을 상대로 피아노 과외까지 했기 때문에


그의 한 해 수입은 1만 굴덴,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1억 2천이 넘는 거액이였다.


그러나 버는 것보다 나가는 게 더 많았기에 늘 경제적으로 쪼들려야 했다.


우선 수입이 풍족해지자 번화가의 저택으로 이사하고 전속 하녀, 요리사, 미용사 등을 고용했다.


승마에 취미가 있었던 것인지 말까지 구입해서 타고다녔다.


그리고 아들은 기숙사립학교로 보내고 그의 저택에서는 연일 사치스러운 파티를 벌였다.




사실 이 정도의 귀족 코스프레, 부르주아 코스프레는 모차르트의 경제력으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였다.


그렇지만 노름에 빠져버린 것이 치명적이였는데 모차르트는 내기 당구나 카드 도박에 심취했고


비록 음악의 천재였으나 잡기에는 별 소질이 없었는지 돈을 잃기가 일쑤였다.


그럼에도 이제 도박을 끊고 알뜰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는 커녕


더 열심히 음악 활동을 해서 노름밑천을 마련하자는 막장테크를 타게 된 것이다.


이같은 악순환은 모차르트의 건강에 심각한 부담을 초래했고



결국 38살의 젊은 나이에 요절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 분은 파블로 피카소.


천재 화가의 대명사로 불리우는 분인데


입체파의 창시자로도 알려져있다.




현대인들에게는 이런 작품으로 알려져있지만


그의 회화실력은 20살이 되기 전에 고전주의를 마스터한 수준이였고


12살 때 라파엘로만큼 그렸다고 한다. 눈으로 확인해보자.




이게 피카소가 15살 무렵에 그린 그림이다.


미대생이 보더라도 감탄할 만한 퀄리티 아닌가?


그러나 이런 피카소에게도 라이벌이 있었는데




야수파의 창시자인 앙리 마티스가 피카소의 라이벌이였다.


그리고 이 두 거장이 무엇을 두고 경쟁을 벌였는가 하면




커트루드 스타인


이 여자를 두고 경쟁을 벌였다.


물론 사랑싸움을 했다는 건 아니다. 거트루드 스타인은 부유한 유대인 가문의 딸로


작가 및 시인으로 활동했으며 파리로 유학을 와서는 화실을 열고 파리의 예술가들과


어울렸는데, 가진 돈이 많았기에 그들의 작품을 구매하면서 후하게 값을 치뤄주거나


가난한 예술가들이 머무를 집을 저렴하게 빌려주기도 했다.


피카소와 마티스는 자신의 후원자가 되어줄 스타인의 환심을 사고자 경쟁했던 것.


어느날 스타인의 집 벽난로에 마티스의 그림이 걸려있는 걸 본 피카소는 분발하여




당장 이런 그림을 그려서 그녀에게 바친 적도 있다.


이같은 일화를 단순히 재미거리로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이야기에는


당시 예술가들의 라이프 스타일이 어떤 지가 오롯이 드러나고 있다.


바로 자신의 재능을 이해하고 작품 활동을 후원해줄 물주에게 빌붙는 것.




사실 지금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예술가들 중에서는 본시 집안형편이 넉넉하여 경제력에 구애받지 않고


마음껏 예술에 몰두하는 케이스도 많고 음대생이나 미대생 가운데


부잣집 자제가 많다는 인식도 그래서 존재하는 것이다.


등록금도 등록금이거니와 레슨비나 화구(畵具), 악기 등..


그러니 본래 금수저가 아니라면 결국 자신을 인정하고 후원해 줄


돈많은 물주를 확보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




이런 식으로 상류층의 선택을 받아 그들로부터 후원을 받으면서


그들을 위한 글을 쓰고 그들을 위한 그림을 그리고 그들을 위한 음악을 연주하는 것이다.


또 상류층의 자제들을 상대로 그림이나 피아노를 가르치는 과외를 할 수도 있겠다.


아무래도 예술이라는 게 경제적으로 형편이 넉넉할수록 그 가치를 깨닫기 쉬우니까.




이런 명문가 사모님들 앞에서 굽신굽신하고 을질당하는 게 예술가의 운명일 수도 있다 이 말씀.


그렇다고 그런 예술가들을 속물이라고 비난할 수는 없다. 예술에 관심을 가지고 알아주는 이들이


상류층에 몰려있으니까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예술가도 사람인데 먹고는 살아야 할 것 아닌가?


한줄평


예술가들의 생존방식은 가진 자에게 빌붙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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