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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취 골.. | 24/06/18 21:30 | 추천 17 | 조회 14

루리웹산 말딸 괴문서 중 걸작이라고 생각하는 작품 +14 [5]

루리웹 원문링크 https://m.ruliweb.com/best/board/300143/read/665158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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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온한 오후였다.



 그랬어야만 했던 오후였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트레이너 사무실의 문이 열리고, 한 우마무스메가 전력으로 뛰어 들어왔다. 그의 사무실이 개인실이기에 망정이지, 다른 저 연차 트레이너들처럼 오픈형 사무실에서 근무했다면…상상도 하기 싫을 정도였다.



 “트레이너 씨, 트레이너 씨!”



 아가씨답지 않게 방방 뛰며, 귀와 꼬리를 파닥파닥 움직인다. 그리고 길게 늘어뜨린 소매 너머로 종이 한 장을 그에게 내밀었다.



 “오늘이야말로 이거, 도장 찍어 주세요!”



 “……하아.”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질리지도, 그리고 지치지도 않고 이게 벌써 몇 번째인가. 하루가 멀다고 들이미는 이 작은 종이 쪼가리에 도장을 찍게 된다면, 그 법적 효력은 그의 남은 인생을 영원히 따라다닐 것이다.



 그런 위력을 가진 종이 쪼가리다. 도장 찍어 줄 생각 따윈 추호도 없다.



 “사토노 다이아몬드.”



 그녀의 풀 네임을 부른다. 고국에서도, 그리고 이곳 일본에서도 이름 전체를 부르는 것은 제법 큰 의미가 있다.



 대표적으로, 나 화났다.



 하지만 히토미미의 화 따위는 그다지 무섭지 않은 듯, 사토노 다이아몬드는 헤헤 웃으며 종이 쪼가리를 눈앞에서 흔들 뿐이었다.



 “네에~트레이너 씨의 사토노 다이아몬드에요♪ 다이아쨩이에요~♪”



 그래, 어릴 때부터 가지지 못하는 것 없이 부유하게, 떠받들면서 자라왔으니 타인의 감정을 읽는 것에 둔한 것은 어쩔 수 없겠지. 심지어 사토노의 비원이었던 G1 대상 경기 우승도 몇 번이고 성공했으니, 어찌 보면 원하는 것은 모두 가진 아가씨란 뜻이다.



 그런 아가씨가, 지금까지도 가지지 못한 거의 유일하다시피 한 것을 갖기 위해…이렇게 용을 쓰는 것이다.



 그 집념을 기특하다고 해 줘야 할지, 왜 하필 자신인지에 대해 짜증을 내야 할지, 트레이너의 고민은 날이 갈수록 깊어져만 갔다는 사실을 사토노 다이아몬드가 알 리 없다.



 “여러 번 말했지만, 혼인신고서에 도장 찍을 생각은 전혀 없어.”



 “하지만 트레이너 씨, 여기 도장만 찍으시면…원하는 것은 다 가지실 수 있어요!”



 “결혼 안 할 자유를 원해.”



 “예외는 있는 법이에요♪”



 말이 안 통한다. 게다가 영악하게도 도장을 찍어 주기 전까진 절대로 나가지 않겠다는 듯이 문까지 단단하게 잠그고, 그것도 모자라서 문을 등지고 이쪽을 압박하고 있다.



 아, 일할 거 많은데. 그의 속이 타들어 가는 것을, 역시나 사토노 다이아몬드는 알지 못할 것이다.



 “있잖아, 사토노. 너는 정말 예쁘고 귀엽고 돈도 많고 G1 트로피도 있고 착…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랑은 어울리지 않는 우마무스메야. 그러니까 그만―”



 “트레이너 씨는 담당 우마무스메만 여섯 명에, 전부 G1 트로피 하나씩은 가지고 있고, 트레이너 외적인 부분의 실적도 좋으시고, 중앙 트레센에서 입지도 탄탄하고, 급여도 제법 많이 받으시고, 뭐…국적 같은 건 요즘 시대에 상관없잖아요? 사토노의 이름에 이만하면 충분히 어울리고도 남을 것 같은데요?”



 “말 잘했다. 네가 말했다시피 나한테는 이미 다른 다섯 명의 담당 아이들이 있―”



 “제가 정실이라면 첩을 몇 명 두건 저는 참을 수 있어요♪”



 “아니 그런 의미가 아니라 다른 담당 아이들의 경력도 책임져 줘야 하니까.”



 “딱히 사토노 가문의 전속 트레이너가 되라는 말은 아닌걸요?”



 그러면서 한 걸음 다가와 책상 위에 혼인신고서를 쾅! 하고 내려놓는다. 입술을 핥는 것이 단단히 벼르고 온 모양새다.



 하지만 사토노 다이아몬드의 화술에 넘어가선 안 될뿐더러, 솔직히 그녀보다 두 배 가까이 살아온 어른으로서, 그런 저급한 화술에 넘어갈 리가 없잖은가. 흥, 하고 코웃음이 나오는 것을 막지 못할 정도니까.



 “일단 너는 결혼 못 하는 나이고.”



 “그럼, 약혼부터 시작할까요?”



 “졸업도 안 한 담당 우마무스메에게 이상한 소문 나는 것도 좋지 않고.”



 “어머♪ 그렇게나 저를 생각해 주고 계셨군요! 그러면 어서 도장을…!



 그런 의미가 아닌데. 한숨이 절로 나오는 것을 가까스로 참았다.



 “네 부모님은 당연히 반대하실 거고.”



 “대찬성이셨어요♪”



 “…….”



 찬성했다고? 열 살이 넘어가는 나이 차이를? 진짜로? 미친 거 아니야? 그의 머릿속의 유교 드래곤이 크와아앙 날뛰는 것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 동요를 눈앞의 사토노 다이아몬드에게 보이면 위험하기에, 후우, 속으로 가슴을 한번 쓸어내리며 심신의 안정을 되찾았다.



 “우리 부모님께 너를 비롯한 담당 우마무스메들을 소개해 준 적도 없고.”



 “에, 이미 루돌프 선배랑 아르당 선배는 인사를 드렸던 것 같던데요?”



 “아니, 내가 소개한 기억이 없는데?!”



 “그야 타즈나 씨가…핫!? 이건 비밀로 해 주세요♪”



 “……”



 하야카와 타즈나아아아아―!!



 옛 담당이자 현 이사장 비서의 이름에 대고 속으로 절규하며, 그는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결정적으로 나는 말이야…세가가 싫다!”



 “엣…….”



 그 말에, 사토노 다이아몬드의 파닥거리던 귀와 꼬리가 움직임을 멈췄다. 상당히 쇼크를 받은 것이리라. 하지만 물러설 수는 없다.



 “물론 소닉이 어릴 적의 추억인 것은 맞고, 햄탈워를 좋아하는 것도 맞지만.”



 “그렇죠! 소닉을 좋아하신다니, 이건 이미 뾰이에 동의하신 거예요!”



 언제 그랬냐는 듯 꼬리를 붕붕 흔들며 책상을 넘어오려는 사토노 다이아몬드를 발로 제지하며, 간신히 입을 열었다.



 “최고의 축구 매니지먼트 게임은…피파 매니저다!”



 “그, 그런……!”



 억장이 무너지는 얼굴로, 사토노 다이아몬드는 그녀의 트레이너 씨에게서 한 걸음 물러났다.



 사토노 다이아몬드는 이해할 수 없었다. 아직도 매년 출시되는 풋볼 매니저라는 갓겜이 있음에도, 2014년에 죽어버린 피파 매니저, 그것도 유저 패치로 명맥만이 간간이 살아 있는 그런 망겜을, 어째서 더 좋아한단 말인가!



 “발전도 없고 3D 경기도 없는 그런 텍스트 덩어리를 매니지먼트 게임이라고? 동년도 타이틀로 비교하면 전략 및 전술 이외의 모든 것이 하나도 나을 것 없는데? 하! 차라리 피파 감독 모드를 하고 말지!”



 “크윽…하지만, 하지만…저희는 유통 배급일 뿐이에요! 제작은 스포츠 인터렉티브이니 그쪽에 따지세―”



 “던 오브 워 3.”



 “크으으으으…! 하지만 그것도 결국 유통―”



 “렐릭 인터렉티브가 세가 산하로 흡수된 거 모를 거 같니? 그리고 스포츠 인터렉티브도 세가 산하잖아. 어디서 유통으로 발뺌이야!”



 “크읏…큿…트레이너 씨, 앙칼지게도 제법…알고 계시는군요.”



 한 걸음 더 물러나며 이를 부드득 가는 것이, 사토노 다이아몬드 스스로도 분하다고 느끼고 있는 것이리라. 그래, 소닉이랑 토탈 워, 그리고 용과 같이 말고 너희에게 남은 AAA급 게임이 무엇이더냐.



 “그래, 하지만 이게 다가 아니지. 기억하고 있나? 너희가 나에게 준 발암덩어리 유사 게임을?”



 “무, 무슨……?!”



 하지만 사토노 다이아몬드는 모른다. 풋볼 매니저도, 던 오브 워 3도, 그리고 토탈 워 시리즈나 버츄얼 파이터나 하우스 오브 더 데드 시리즈나 그런 기타 등등의 게임들보다 더 큰 이유가 있다는 것을.



 소형차 한 대 가격 정도는 꼬라박았던,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그 게임의 이름을, 트레이너는 입을 열어 말했다.



 “여기선 프로야구팀을 만들자 2라는 이름으로 출시되었더군, 기억하겠지, 너희가 죽인 그 게임을!”



 “프로야구팀을 만들자 2…서, 설마…!”



 “프로야구 매니저! 세가가 나에게 선물했던! 게임의 탈을 쓴! 악마의 현질 시뮬레이터!”



 “하, 하지만 그건 분명 엔트리브의…!”



 “프로야구팀을 만들자 2를 세가가 개발했잖아, 어? 잊었냐? 자사 게임도 잊어버린 거야? 기억에서 지워버린 거야?”



 “큭, 크읏…크으으으읏…! 비겁해요, 트레이너 씨!”



 어느새 문까지 뒤로 물러나 아가씨가 하면 안 되는 얼굴로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여기까진가, 사토노 다이아몬드.



 그런 그녀에게 결정타를 먹이기 위해, 승리의 미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



 “역시 게임은 반O이 남코지! 다크소울과 엘든 링 같은 소울류 갓겜도,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함께하는 슈퍼로봇대전도, 비행갓겜 에이스 컴뱃 시리즈도! 그리고 역시 나무코 프로덕션의 프로듀서가 되는 아이돌마스터 본밀 시리즈도―”



 하지만 트레이너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어느새 그의 뒤로 돌아온 사토노 다이아몬드가, 거대한 뿅망치로 그의 머리를 내려쳤기 때문이다.



 툭, 하고 고개를 앞으로 떨어뜨리며 쓰러진 트레이너를, 사토노 다이아몬드는 죽어버린 눈동자로 노려보았다. 손에 들고 있던 혼인신고서는 두 번 접어 고이 품속에 넣어둔다.



 그래, 아직 트레이너 씨와 결혼할 때는 아닌 것 같다. 그의 말대로 조금은 시기상조였을지도 모른다.



 우선, 트레이너 씨에게 세가 게임의 아름다움을 가르쳐 줘야 할 것 같다. 모른다면 알 때까지, 파란 고슴도치가 옆집 배관공을 찍어누를 때까지. 천천히, 시간을 들여 정성스럽게 가르쳐 드리는 것이 먼저다.



 뭐가 엘든 링이냐, 뭐가 슈퍼로봇대전이냐. 판타지 스타 온라인 2나 하라고요. 토탈 워나 하시면 되잖아요.



 뭐가 아이돌마스터에요. 백번 양보해서 미시로 프로덕션이라면, 사이게라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이라도 했을 텐데, 뭐가 나무코 프로덕션이에요. 



 “……프로세카나 하시라고요.”



 미쿠미쿠하게 해드릴 테니까요. 그리고, 그 뒤에…사토사토하게 해드릴 테니까 말이에요.



 축 늘어져 있는 트레이너를 들쳐메었다. 이대로 헬기를 부르고, 사토노 그룹의 깊고 깊은 세뇌…아니, 갱생…아니아니, 교육실로 데려갈 것이다.



 사토노의 이름을 이으려면, 자사 게임부터 사랑할 줄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사토노 다이아몬드는 웃었다.



 평온한 오후였다.
















하지만 프로‘야구’매니저 소리를 듣고 한달음에 달려온 메지로의 야빠에게 들켜, 다른 다섯 명의 우마무스메들과 하야카와 타즈나에게 정훈교육을 받게 되는 것은 조금 미래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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