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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리웹-7.. | 24/08/19 01:54 | 추천 11 | 조회 114

수양대군의 명분 없는 쿠데타였던 계유정난이 후대에 미친 영향 +114 [7]

루리웹 원문링크 https://m.ruliweb.com/best/board/300143/read/67295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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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대군이 일으켰었던 쿠데타인 계유정난은 당대에도 명분과 정통성이 전혀 확보되어 있지 않았던 쿠데타이자 찬탈이었고

어디까지나 수양대군 자신이 왕이 되고싶어서 막대한 피를 뿌린 쿠데타였기 때문에 수없이 많은 반발을 불러일으켰었음.


 이징옥의 난과 사육신의 단종 복위 운동, 금성대군의 단종 복위 운동, 그리고 이시애의 난은 바로 수양대군이 일으켰던

계유정난이 얼마나 정통성과 명분이 없는 쿠데타이자 많은 반발을 불러온 쿠데타였는지를 잘 말해주고 있기도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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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국왕과 가까운 인척 관계에 있는 왕족들의 정치 참여 전면 금지


어찌 보면 문종과 수양대군, 안평대군의 아버지였던 세종의 의도치 않은 실책이기도 한데, 세종은 세자로 선택 받지 못한

왕자들이라는 이유로, 자신의 아들들인 대군들이 나랏일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여겼던 사람이었음.


그래서 세종은 자신의 아들들인 수양대군과 안평대군들을 비롯한 여러 대군들에게 여러가지 크고 작은 국정 전반에 관한 일을

분담하도록 했음. 그런데 문제는 세종이 나랏일을 대군들에게 맡기자 대군들이 정치적인 야심을 키우는 부작용이 생겼고,


무엇보다도 이런 부작용이 가장 최악의 케이스로 발현된 것이 바로 수양대군이었음. 세종은 의도치 않게 수양대군에게

"내가 나랏일을 못할 게 뭐가 있어?"라는 야심과 헛바람을 허파에 잔뜩 불어넣어주었고,


이것은 결국 계유정난에 이어서 아들인 수양대군이 손자인 단종의 보위를 찬탈하는 비극으로까지 이어지고 말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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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군 '이준' (1441년 2월 11일 ~ 1479년 2월 19일)


결국 구성군 이준이 영의정의 직위에 오른 것을 마지막으로, 성종 대에 이르러 국왕의 직계 왕족들의 정치 참여는

조선시대 말기에 흥선대원군이 고종의 섭정으로 등장하기 전까지는 전면적으로 금지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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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국왕의 직계 왕족에게는 그 어떤 경우에라도 관직을 제수하는 것을 금지



 수양대군은 1453년 계유정난을 통해서 김종서, 황보인, 조극관, 민신 등 자신의 반대 되는 조정의 중신들을 모두 제거하고

권력을 장악한 후에 1455년까지 영의정과 병조판서를 비롯한 여러 관직을 독식하며 겸직하였음.


수양대군은 권력을 장악하고 영의정과 병조판서를 겸직하면서 병권(군사권)까지 장악했기 때문에, 이를 이용해서 조카인

단종의 주변 인물들을 하나하나 제거하는 등 단종이 자신에게 양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끔 단종을 압박하고 있었음.


결국 이를 견디지 못한 단종은 수양대군에게 양위를 선언했고, 수양대군은 어떠한 형식적인 거절 절차도 밟지 않은채,

조카인 단종이 내주는 어보를 그대로 넙죽 받아먹고 왕위에 올랐음.


훗날 성종대에 수양대군의 선례를 경계한 성종 및 대신들은 수양대군의 선례가 또다시 발생할 것을 우려하여

국왕의 직계 왕족들은 어떠한 관직도 맡지 못하도록 막아놓았고, 더불어 과거 시험도 ㅂㅈ 못하도록 철저하게 막아놓았음.


그래서 먼 훗날에 고종의 섭정을 맡았던 아버지인 흥선대원군 조차도 공식적으로는 아무런 관직도 없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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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첫 중전의 사후에도 국왕이 곧바로 새 중전을 맞아들이는 것을 적극 추진


수양대군의 일으킨 계유정난은 단종의 친할머니인 소헌왕후, 단종의 친어머니인 현덕왕후 등 왕실 웃어른들의 사망으로 인한

부재로 인하여 이 틈새와 맹점을 파고 든 수양대군이 일으킨 명분 없는 쿠데타였고 훗날에 이를 이용한 찬탈까지 이어졌기 때문에,


조상인 수양대군의 쿠데타였던 계유정난을 제대로 반면교사로 삼은 후대의 조선 왕실에서는 설령 중전인 왕후가 죽더라도 국왕이

곧바로 새 중전을 간택하여 만약에 있을 왕실 웃어른의 부재로 인한 쿠데타를 항상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음.




정리를 하자면, 수양대군이 괜히 조선 전반기의 시스템을 무너뜨렸다는 평가를 받았던게 아님. 게다가 수양대군이

정통성이 빵빵했던 조카인 단종의 보위를 찬탈했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런 평가를 받을만 했고.


훗날 수양대군의 후손들로 이루어진 조선 왕실에서는 수양대군이 역적이라고 칭했던 김종서와 사육신 등을 충신으로 예우해주고

복권시켜 준 것만 봐도, 아무리 자신의 직계 조상이지만 수양대군이 한 짓이 얼마나 정통성이 없고 명분이 없는 짓이었는지를 방증하지.


게다가 성종 때부터 조선 왕실은 수양대군이 일으켰던 계유정난 및 보위 찬탈과 같은 사례들이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도록

대대적으로 시스템을 손봤다는 점에서, 수양대군 자신이 왕위에 대한 욕심 때문에 발생했던 악영향과 파장은 그만큼 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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