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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나이퍼.. | 23/03/31 00:17 | 추천 24 | 조회 1000

어머니가 퇴사하신다고 합니다. +456 [16]

보배드림 원문링크 https://m.bobaedream.co.kr/board/bbs_view/best/617238

어머니가 퇴사하신다고 하네요 ㅋㅋ 거창하지만 ...

정확하게는 작은 식당을 15년넘게 하셨는데 내일까지만 영업하신다고 합니다.

 

수십년을 가족들 뒷바라지 하면서 주부로만 살아오셨던 엄마

아버지가 퇴직후 사업을 하시면서 근처 자주다니던 식당자리가 공실이 나서 우연히 시작하게 되었지요.

그게 벌써 15년이 넘었나 봅니다.

 

처음엔 살림만 하던 엄마가 어떻게 장사를 하냐.. 말이 되나 가족들은 말렸지만 당신의 일을 갖고 싶으셨던것 같습니다.

우연히 시작한 그자리에서 건물주가 식당자리에 다른것을 한다고 2년만인가 그만두게 되었죠.

 

그래 이참에 그만하길 내심 바랬지만 엄마는 계속 식당을 하길 바라셨고 결국 그 근처에 다시 개업을 하셨습니다.

 

포스코 광양사업소에서 하동쪽으로 넘어가다 보면 그 경계 언저리에 있는 마을입구의 작은 가게였습니다. 대중교통도 불편하고 온통 논밭인데다 마을도 작은데 누가 여기에 밥먹으러 오겠냐 생각하며 참 답답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벌써 15년이나 되었습니다.

 

주변에 식당들이 하나 둘 문을 닫아도 엄마는 계속 장사를 하셨습니다.

사람이 많이오면 많이 오는대로, 없으면 없는대로 돈을 번다기 보다는 그냥 사람들에게 맛있는 밥 차려준다는 그 마음이..

엄마에겐 컸던것 같습니다. 방송작가가 출연해달라고 해도 남사스럽다고 얼굴팔리기 싫다며 한사코 거절하신 엄마.

(이런데 글쓰는거 알면 대노 하실거임...;;)

 

동네 할아버지가 하루에 두번 오셔서 3천원 주고 글라스에 깡소주만 드시고 가시는데 늘 작은 안주도 만들어 주셨고..

주변에 외지인이 와서 가게에 주차를 해도 뭐라고 안하셨고,, 공사장 인부들이 오면 늘 새벽부터 아침장사를 준비하셨고..

잘은 모르지만 제가 느끼기엔 그래도 꽤 진심이었던것 같습니다.

 

주말에는 주변 공장이나 회사가 쉬니까 주로 휴무가 많았는데 밥먹겠다고 문열고 오는 일꾼들을 그냥 돌려보내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라면이라도 끓여서 상을 냈다고,,, 쉬는날 왜 일하냐며 그걸로 아빠랑도 가끔 다투시고..ㅋㅋ

 

주변 업계 특성상 기업체에서 장부 달아놓고 밥먹는 일이 많았는데 중간정산이 늦어지고 안되도 엄마는 계속 밥을 해주셨다 합니다. 장부에 천만원이나 미수가 달려있던 회사가 있었는데 정산이 안되도 일꾼들 밥굶으면 어찌 일하냐며 그냥 해줬는데 결국 회사가 부도가 나서 밥값도 못받았단 사실을 나중에 알기도 했습니다.

 

처음엔 마뜩치 않았던 작은 식당이 이제는 추억이 되었습니다.

아버지도 하시던 사업을 접고 은퇴하신 후 가게 일을 돕고 주변 소일거리를 하시며 두분이서 지내셨죠

그 긴시간동안 저와 동생들은 직장인이 되었고 결혼도 했고 아이도 낳았습니다. 가끔 시골에 내려가면 아이들과 편하게 쉬고 놀다 오는 그런 고향집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내려가도 그곳에 갈 수 없음에 먹먹한 마음이 드네요.

 

유명한 맛집도 아니고 큰 돈을 번것도 아니었지만 살림집 보다 가게에서 숙식하던 날이 더 많았던 부모님 

그만큼 열심히 하셨는데 이제는 그만 하시려나 봅니다.. 가게 일하시는 아주머니도 오래 함께 하셨는데 아쉽겠네요.

코로나 타격도 당연히 조금은 있었던것 같고 요즘엔 식자재값도 많이 올라서인지 안팎으로 어려운점도 있었던것 같습니다.

 

3월말까지만 한다고 들은게 몇달전인데 처음엔 그냥 그러려니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이제 내일이 마지막 영업이라 하니

마음이 많이 섭섭하고 아쉬운 생각이 드네요. 엄마 당신은 아마 더 하시겠지요. 어떻게 보면 오랜시간 제2의 인생을 바치셨는데 그만하고 일이 없으면 또 괜찮으실지 괜히 걱정도 됩니다. 15년을 하시면서 많이 늙으신것 같아요...

 

오랜시간 고생하셨는데 아들로서 크게 해드린것도 없고 그만 하신다니 뭘 해드릴수도 없는 무력한 마음이 무겁게 느껴지는 시간입니다..뭘 해드려야 할까... 고민하다가 매일 눈팅하는 보배에 일기처럼 끄적여 봅니다.

보배 형님 동생 분들!! 고생하신 저희 엄마에게 그냥 마음속으로 응원의 박수한번 부탁드립니다! ㅋㅋ

어려움 속에서도 오랜시간 묵묵히 가족들과 또 당신을 위해 일해주신 엄마, 감사합니다. 그리고 고생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젠 편하게 사시길!! 내일은 전화한통 드려야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저희 엄마 가게를 찾아주셨던 많은 분들 감사드립니다. 혹시 불편한게 있으셨 분들도 죄송하게 생각하며 너그러히 이해해 주세요. 


그냥 아쉬운마음에 넋두리나 하려던게 글이 너무 길어졌네요. 죄송하고 읽어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보배 님들 모두 행복한 봄날 되세요!!!

 

그 오랜시간 장사를 하셨는데 제가 찍어놓은 메뉴들이 하나도 없네요;; 몇년전에 손님이 블로그에 올린거 퍼와서 한장 남깁니다. 주메뉴는 애호박 국밥 이라고 서울엔 찾기 힘든 메뉴인데 가끔 먹으면 맛이 괜찮습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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