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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aaba | 16/01/13 11:16 | 추천 70 | 조회 4511

체육대회와 변절자 이야기. +323 [10]

오늘의유머 원문링크 https://m.todayhumor.co.kr/view.php?table=bestofbest&no=228058


대학에 다니던 시절, 우리과를 비롯해 여러 과의 학생들이 같은 건물에서 수업을 들었다.

평소에는 서로를 신경쓰지 않고 지냈다. 하지만 특정기간이 되면 다른 과 학생들 사이에서 신경전이 벌어지는 경우가 생겼는데
그건 바로 체육대회였다. 학부로 묶어서 체육대회를 하는데 체육대회 성적에 따라 상품도 있었고 과의 위신이 걸려있다고 생각해서인지
체육대회가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각 과들 사이에는 묘한 기류가 흘렀다. 그 신경전이 극에 달하는 시기가 바로 체육대회 직전 학부회의 때였다.

회의를 하기위해 각 과의 회장과 부회장들이 하나 둘 씩 모이고 있었다. 부회장이었던 친구가 집에 올라가는 바람에 나는 얼떨결에 친구 대신
회의에 참석하게 되었다. 회의실 내부의 사뭇 진지한 분위기에 나는 꿀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에 회의가 시작되었다.
체육대회 전이라 그런지 안건들은 거의 대부분이 체육대회에 관한 내용들이었다. 제일 처음 나온 안건은 체육대회 당일 운동장에 각 과의 자리는
어떻게 배치할 것인가에 대한 내용이었다. 하지만 의견은 쉽게 조율되지 않았다. 다들 목에 핏대를 세우며 조금이라도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다투기 시작했다. 쉴새없이 오가는 대화들을 들으며 나는 정신이 아득해지기 시작했다. 여기가 엘론드인가.. 체육대회날
사우론이 부활하기라도 하는걸까... 그냥 엉덩이만 내려놓을 자리만 있으면 위치야 어디든 무슨상관일까.. 지금이라도 벌떡 일어나서 내가 가겠어요!
라고 소리라도 질러볼까 라고 고민하는 사이에 결국 제비뽑기로 자리를 정했다. 다음 안건이 나왔지만 역시나 이번에도 사람들 사이에선 자기주장과
그 주장에 대한 반박이 오가기 시작했다. 회의 내용은 아무 상관 없었다. 회의는 허울일 뿐 체육대회 전 서로에 대한 기선제압을 위한 자리임이 분명했다.

회의가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회의에 대한 내용보단 서로에 대한 비방과 인신공격을 내뱉기 시작했다. 여의도에 온 기분이었다.
그 중 가장 질이 나쁜건 부끄럽게도 우리형이었다. 처음엔 좋게 좋게 얘기하던 우리과 회장형도 한계에 도달했는지 어느 순간부터 싸움닭이 되어
모두까기를 시전하기 시작했다.

"그쪽과는 작년에도 좋은 자리에 앉았잖아요! 이번에는 좀 양보하시죠?"

"맞아요. 맞아."

"옳소!"

영문과 회장이 언제 그랬냐는듯이 모두를 선동하기 시작했다. 평소엔 우리과 회장 형과 개인적으로 친한 사이였지만 그 순간만큼은
남보다 못한 사이였다. 하지만 우리 회장 역시 만만치 않았다.

"이거 왜이러십니까. 공평하게 제비뽑기 한 거 아닙니까? 여러분 언제까지 저 미제 앞잡이의 말에 놀아날겁니까!"

다시금 상황은 역전되어 이번엔 우리 회장이 영문과 회장을 몰아붙히기 시작했다. 중간에 끼어든 불문과 회장에게
넌 닥쳐 바게뜨라고 말하지만 않았더라도 완벽하게 회의실의 분위기를 제압할 수 있었겠지만 그 한 마디 때문에 회의는 다시 진흙탕 싸움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결국 서로에게 상처만을 남긴채 회의는 종료되었다.

체육대회 당일, 우리과 회장은 영문과에게 만큼은 무슨일이 있어도 이겨야 한다며 전의를 불태웠다. 다른과보다 남자가 모자란 탓에
평소엔 귀찮은 걸 싫어하는 나도 경기에 참가해야 했다. 내가 참가하기로 한 종목은 맥주 빨리 마시기였다. 내 신체부위중 가장 운동신경이
뛰어난 부위가 식도였기 때문이었다.

오후가 되고 체육대회는 점점 열기를 더해갔지만 진즉에 예선탈락 해버린 나는 운동장 주위를 어슬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 곳은 영문과 천막이었다. 교양수업 때 같이 조별과제를 하다 친해진 영문과 친구가
날 발견한 것이었다. 심심하던 차에 잘됐다 싶어 나는 그 쪽으로 향했다.

"넌 뭐 안하냐?"

"나도 농구 했다가 아까 끝났어. 뭐하냐?"

"그냥 돌아다니고 있었지."

"앉아. 뭣 좀 먹고 가라."

출출했던 차에 잘됐다 싶어 나는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근데 나 여기 있는거 우리과 학회장 형이 알면 죽을지도 모르는데."

"안그래도 우리과 학회장도 지금 난리야. 니네과는 죽어도 이겨야 된다고."

난 그 때 회의실에서 내가 본 광경을 이야기 해주었다.

"애들도 아니고.. 잠깐 이거라도 먹고있어. 가서 전이라도 부쳐올 테니까."

"웬 떡? 니들은 체육대회 때 떡도 하냐?"

"우리과 행사할 때마다 돌리잖아. 잠깐 있어봐 금방 가지고 올게."

나는 혼자 앉아서 떡을 집어먹기 시작했다. 떡을 먹으면서 축구구경을 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나를 보는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그 시선이 향하는 곳을 바라보니 그곳에선 영문과 회장이 날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아차싶어 고개를 숙였지만 이미 그는 내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혹시... 그 때 뵌 그.. 부회장?"

난 뒤늦게 어색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예? 아.. 네.. 안녕하세..."

"도둑이야!"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 형이 소리를 질렀다.

"아니. 그.. 그게 아니고.. 친구가.."

당황한 나는 친구를 찾아 주변을 둘러봤지만 어디갔는지 친구는 보이지 않았다. 여전히 그 형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도둑이야! 떡도둑이다!!!"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로 모아졌다. 졸지에 나는 다른과에서 떡을 훔쳐먹으로 온 파렴치한 인간. 인절미제라블속 주인공 떡발장,
학과번호 투포씩스오원으로 낙인찍혔다. 그리고 나는 볼모로 붙잡혀서 우리과대 영문과의 축구경기에서 영문과를 응원해야 했다.
그 사이에서 날 발견한 우리과 회장형은 부인의 외도를 발견한 남편과 같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영문과 학회장의 거짓선전에 넘어가
나는 한동안 우리과에서 떡 한입에 동기와 선배들을 져버린 변절자로 낙인찍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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