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게 실시간 커뮤니티 인기글
오늘의유머 (342331)  썸네일on   다크모드 on
복날은간.. | 17/09/25 01:07 | 추천 50 | 조회 2175

[단편] 악당과 악당의 거래 +313 [9]

오늘의유머 원문링크 https://m.todayhumor.co.kr/view.php?table=bestofbest&no=364407

도둑 장인은 흔치 않다.

죄다 경찰에 잡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무사고 15년인 그는 장인이라고 할만했다.
그는 어제 이름만 대면 알만한 재벌가를 털었다. 그 도둑질을 끝내면서 그는 은퇴를 결심했다.

한데 하필 마지막에 덜미를 붙잡힐 줄이야?
오늘 그를 찾아온 형사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 도둑질 솜씨가 정말 훌륭하더군. 아마 내가 아니라면 그 누구도 널 잡을 수 없었을 거야. "

그는 절망했다. 역시 악당에게 좋은 은퇴란 없는 것일까.
한데?

" 교도소를 피할 방법이 있는데, 어때? "
" 예? 그게 무슨.. "
" 네가 어제 훔쳐간 모든 것을 내놓고, 어떻게 훔쳤는지 모든 과정을 상세하게 적어줘. 그러면 내가 다른 사람이 저지른 것으로 해주지. "
" 예에?! "

형사는 선심 쓰는 듯이 말했지만, 그는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왜? 왜 그런 짓을 해주지?

" 어째서...? "
" 아무런 조건이 없어. 그냥 너도 좋고 나도 좋은 거라는 것만 알면 돼. "

그는 긴장하며 집중했다. 아마추어같이 쉽게 넘어가선 안 된다. 혹시 증거가 없어서 떠보는 것일 수도 있었다.

" 제가 왜 형사님 말씀을 들어야 하죠? "
" 뭐라? 허 참! 그럼 잡혀갈 건가? "
" 증거는 있으세요? "
" 당연히 있지! 지금 이 집을 수색만 해도 수두룩하게 나올 텐데? "
" 글쎄요? 여기 있을까요? 영장은요? "

그는 잔뜩 경계하며 형사의 말에 하나하나 따지고 들었다.
그러자 조금 화가 오른 듯한 형사는 크게 한숨을 내쉬고, 목소리를 낮췄다.

" 좋아, 내 솔직하게 얘기하지. 내가 원하는 건 자네의 알리바이야. "
" ...뭔 소리예요? "
" 이름을 밝힐 수 없는 누군가가 어젯밤 살인을 저질렀어. "
" ?! "
" 경찰 수사가 들어간다면 아마도 그는 잡힐 거야. 하지만 말이야, 만약 그가 어젯밤에 누군가의 집을 털고 있었다면? "
" 아! "
" 그는 자네에게서 받은 장물을 들고 오늘 자수할 거야. 그렇게 되면 그는 '어젯밤'에는 완벽한 알리바이가 생기는 거야. 살인할 시간이 없지! 살인보다는 도둑질이 낫잖아? 게다가 양심의 가책을 들먹이며 자수한다면 도둑질도 어느 정도는 정상참작이 될 거야. 어때? 이제 이해하겠나? 내가 왜 자네를 도와주려고 하는지? "
" 허 "

그는 감탄했다. 확실히 그럴듯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경계를 완전히 풀 순 없었다.

" 그 누군가가 누군데요? "
" 그건 말해줄 수 없어. 다만, 내가 이 정도까지 해야 할 정도의 집안이라고만 알아 둬. "
" ...죽은 사람은요? "
" ...이래도 될 정도인 집안의 여자. "

그는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 햐. 돈이란 게 정말 대단하긴 대단하네요. 있는집안 인간들은 사람을 죽여도 빠져나갈 길이 있군요. 죽은 여자만 불쌍하게 됐네. "
"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내 말대로 할 거지?! "

그는 고민했다. 형사의 말이 사실이라고 치면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아무나 15년 무사고의 도둑 장인이 되는 건 아니었다. 그는 정말 뜻밖의 말을 꺼냈다.

" 그냥은 안 돼요. 돈을 주면 내 도둑질을 팔게요. "
" 뭐라고?? "

형사는 황당한 얼굴로 그를 보았다가 분노했다.

" 미친! 지금 네가 그런 말을 할 처지라고 생각하나?! "
" 마음대로 하세요. 저는 왠지 그 누군가가 지금 굉장히 급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안 그래요?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급하게 저를 찾아와서 매달리실까. "
" 미친...! "

형사의 얼굴이 처참하게 일그러졌지만, 그의 얼굴은 느긋했다.
그 얼굴을 노려보던 형사는 곧 포기하는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 거참! 도둑질을 팔겠다는 건 살다 살다 처음 듣네. 좋아! 얼마를 원하나? "

그는 씩 웃으며 말했다.

" 형사님까지 움직여서 이럴 정도면 정말 대단한 집안의 분이시겠죠? "
" 이봐! "
" 그렇다고 너무 큰 돈을 요구했다가는 형사님께 죄송하니까... 제가 훔친 장물에서 골드바만 가질게요. "
" 뭣?! 그건 안 돼! 장물이 있어야 자수를 하지! "
" 골드바 몇십 개 정도는 그쪽에서 만들 수도 있잖아요? "
" 그건...! "
" 그 정도는 되는 집안일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사람을 죽이고도 이렇게 피해가지. "
" ... "

형사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더니, 상의를 해야겠다며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잠시 뒤,

" 좋아. 골드바는 모두 가져. 나머지 장물을 모두 넘기고, 도둑질을 어떻게 했는지 아주 상세하게 모든 과정을 적어 줘. 조금도 틀림이 있어선 안 돼! 알리바이로 써야 하니까. "

그는 환하게 웃으며 악수를 청했다.

" 걱정하지 마세요! 저의 어젯밤을 통째로 들어내 드릴 테니까! "

.
.
.

재산을 정리한 그는 밀항선을 타고 해외로 빠져나가는 중이었다. 어차피 그날 밤 은퇴를 결심하면서 정해진 일정이었다.

그의 손에 들린 스마트폰에서는 지금 떠들썩한 사건에 대해 사회자들이 토론하고 있었다.

[ 이번 사건이 참 논란입니다. 일의 순서가 정확히 어떻게 되는 거죠? ]
[ 예 그러니까 일의 순서로 보자면, 'ㅁㅁ기업'의 차남 최무정 씨가 경찰에 자수했습니다. 술에 취해 자산가 '김 모 씨'의 집을 털었다는 얘기였는데요, 경찰 조사결과 모든 증거와 상황이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경찰은 다음날 바로 자수를 한 점과 몹시 반성하고 있는 점을 들어 정상참작을 해주려고 했습니다. 문제는, 자산가 '김 모 씨'의 방 침대 밑에서 '김 모 씨'의 사체가 발견되었다는 겁니다. 사망추정 시각을 생각해보면 최무정 씨가 도둑질 도중 들켜서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른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최무정 씨는 강력하게 부인하고 있지만, 증거와 알리바이는 모두 최무정 씨를 가리키고-. . . ]
[신고하기]

댓글(11)

이전글 목록 다음글

12 3 4 5
    
제목 내용